책을 읽고

돌아온 외규장각 의궤와 외교관 이야기

송삿갓 2014. 4. 8. 11:31

돌아온 외규장각 의궤와 외교관 이야기- 유복렬

 

투철한 직업의식, 아니면 불문학 박사의 집념, 그것도 아니면 대한민국 외교관으로서의 자부심? 모두가 옳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5천년 대한민국 역사를 이끌어 온 가장 큰 원동력이었던 엄마의 힘과 끈기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 가지 일에 20년 동안 꾸준한 신념과 열정을 가지고 원하는 결과를 얻어낸 것에 대해 충분한 설명이 될 수 없다.

 

20144월의 첫 월요일, 애틀랜타의 새벽은 쏟아지는 봄비로 길이 흥건히 적셔져 달리는 차가 일으키는 물보라가 흡사 수상스키를 타는 모습과 별 다를바 없었다. 밤새 괴롭힌 두통과 매스꺼리는 속이 내 발목을 집에 붙잡아 두었다. 참아보려 애를 써 보기도 하고 약의 도움을 받아보려 하였지만 빈속에 들어간 약은 약으로 약해진 내 위를 들쑤시면 나를 더욱 괴롭혔다. 해서 찾은 방법이 친구가 잃어보라고 건네 줬던 책 [돌아온 외규장각 의궤와 외교관 이야기](유복렬 지음).

 

실은 몇 년 전 뉴스를 통해 외규장각 의궤가 145년 만에 프랑스에서 한국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알고있었다. 하지만 '5년씩 연장하는 영구임대'형식의 반환에 뭐 이런 웃기는 형태도 있나?’하는 생각을 하며 대한민국의 외교가 이정도 밖에 되지 않나?‘라며 가볍게 치부하였다. ’영구 임대하니까 한국에서 저소득층에게 내 집 마련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명목의 영구 임대 아파트가 떠올랐고 그 뒤에 따라 붙었던 부정과 부패가 연동으로 생각이 나서 더욱 가볍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이 책도 뭔가 감동적인 스토리나 깊이를 생각하기보다는 건강 때문에 발목이 묶인 내 몸과 마음을 가볍게 달래 주기를 기대하는 따스한 한 잔의 차 정도로 생각하고 읽기를 시작하였다.

 

박병선 박사가 어렵게 찾아낸 외규장각 의궤, 그것을 돌려받기 위한 협상에만 꼬박 20년이 걸렸다. 많은 사람들이 이일에 매달렸다가 좌절했다. 하지만 그리도 복잡하게 꼬여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었던 난제도 결국 해결되었다. 고진감래라는 말은 바로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니겠는가. 나는 진심으로 이 일에 전념했고, 소신 하나로 우리를 도운 귀인들도 만났다. 그들은 외규장각 의궤 귀환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고, 내 인생의 아주 중요한 판 페이지도 차지했다.” 저자가 쓴 이 책의 마무리 부분이다.

 

외규장각 의궤의 반환협상 동안 대한민국은 4명의 대통령이 거쳐 갔고 협상 도중 외무부 장관이었던 반기문 장관은 유엔 사무총장이 되었다. 하지만 그 20년 동안 변하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 한국 측에서는 책의 저자인 유복렬, 프랑스 측에서는 자클린 상송으로 둘 다 여자다. 반환의 협상 내내 상송은 갑의 위치에서 주도권을 쥐고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고 유복렬은 을의 위치에서 답답한 마음을 안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임했다. 이 야야기의 끝은 외규장각을 눈물로 보내야 했던 상송과 기쁜 마음으로 그리고 홀가분한 짐을 벗어던진 이 책의 저자 유복렬, 아주 상반된 그래서 희비가 엇갈린 듯하지만 여성으로 어머니로서(상송이 어머니인지 모르지만) 열정과 끈기를 보여준 것에 대해 천에 천을 더한 박수로 찬사를 보내도 부족할 것이다.

 

저자 유복렬은 불문학 박사로 외교관이었고 대한민국과 프랑스사이에 정상회담은 물론 많은 외교현장에서 통역을 하였다. 저자는 책에 통역에 대해 이야기 한곳이 많은데 양국 정상 간이나 협상 등에서 좋은 외교의 결과가 있더라도 통역을 잘 해서 성공했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하였다. 하지만 통역은 대화하는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오해나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많은 준비와 표현력은 물론 순발력도 발휘해야 한다고 서술하고 있다. 외규장각 의궤의 반환과정에서도 역사는 대한민국 대통령 누가(첫 반환 당시인 2011413일 대한민국은 이명박 대통령이었음) 145년을 유랑하던 대한민국의 보물을 프랑스로부터 반환을 받았다라고 기록될 것이다. 20년 동안 줄곧 반환의 일을 주도하고 협상테이블에 같이 하였던 유복렬은 크게 기록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어머니의 힘이라는 표현의 피에 유복렬씨가 20젼 동안 쏟아 부었던 정렬과 신념이 흐를 것을 확신한다.

 

책의 마지막 줄을 읽고 책장을 덮는 순간 아침에 있었던 두통과 매쓰꺼움은 사라졌다. 그리고 그 사이 비도 멈췄고 흥건히 도로를 적시던 빗물도 사라져 촉촉함만이 남았다.

저자는 이렇게 에필로그의 끝을 마무리 하였다.

이 여정의 끝은 어디일까. 숨차게 달려온 호흡을 고르면서 자문해본다. 새로운 곳에 짐을 풀고 낯선 문화를 접하며 아직은 어리둥절하고 두근거리고 긴장되기도 한 날들이다. 과거 부임지의 기억으로 접어두기에는 가슴속에 너무나 깊이 각인된 프랑스와의 기나긴 줄다리기, 혼신의 힘을 다해 잡아당겼던 그 줄을 이제 놓으려 한다. 그리고 내 앞에 펼쳐진 또 다른 세상 속으로 걸음을 재촉해본다.’

 

책을 읽고 찾아온 여운의 촉촉함에 외교관 유복렬의 앞으로의 여정을 위해 기도를 한다. 매일매일 무지 좋은 하루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무지 좋은 하루......

 

Apr 7,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