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향기에 실려 온 이야기 - 캐런 정 -

송삿갓 2014. 4. 14. 08:51

“아범아 미안하다.

“왜요 어머님?

“책을 읽다가 자네 초등학교 다닐 때 용돈 벌겠다고 동생 데리고 아이스께끼 장사하러

다녀왔을 때 너를 마구 때린 생각이 나더구나. 그때 용돈도 주지 못하던 엄마였는데

왜 때렸는지... 눈물을 쏟아져 혼났다“. 출근하면서 한국에 계신 어머님과 통화를 하면서 들었던 40년도 지난이야기다. 그랬다. 초등학교 4학년 여름방학에 가난으로 용돈이라는 것을 받아 보지 못하던 그시절 군것질도 하고 싶고 저녁에 TV가게에서 TV보던 동네 친구들이 부러워 용기를 내어 아이스케이크 장사를 시도하였다. 동생을 데리고 간 것은 혼자 할 용기가 나지 않아 용기 도우미로 데리고 간 것이 화근이었다. 장사를 끝내고 어찌어찌 남은 돈으로 연탄 한 장, 10g짜리 미원 한 봉지는 엄마의 몫으로 나머지는 동생과 내가 쓰기로 하면서 동생에게는 절대 비밀로 할 것을 맹세하였지만 군것질을 한 동생의 자랑스러운 발설로 엄마에게 들키고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엉뚱한 일을 한다며 무자비하게 난타를 당했던 이야기다.

 

그렇게 시작한 하루 CBMC 사랑방 점심 모임에 공부할 내용을 다시 한 번 읽고 모임에 참석하였다. 모임 시간이 조금 지나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아침 겸 점심을 먹었기에 같이 점심을 할 수 없는데 그래도 참석해도 좋겠느냐?“는 전화였다. 물론 참석이 가능하다는 대답 후 식사 도중에 그분이 모임에 합류하였다. 점심 식사 후 공부를 마치고 나자 그분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낸다. 부끄럽지만 수필집을 냈는데... 하며 책을 꺼내신다. 제목이 “향기에 실려 온 이야기”

 

그분을 처음 만난 것이 언제인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첫 느낌은 정확하게 생각난다. 중학교 3학년 국어교과서에 있었던 황순원의 소나기 중 서울에서 전학 온 맑은 피부의 소녀 같았다. 왜 그 소설의 소녀 같은 느낌이 들었는지 모르지만 무슨 이야기를 하던 수줍음과 함께 조용조용 하는 모습이며 미소가 그런 느낌을 가지게 한 것

같다. 오늘도 역시 마찬가지다. 부끄러움 그리고 수줍음, 하지만 자신이 표현해야 할것은 다 하고야 마는 그런 분이 자신의 세 번째 책이라며 주신 수필집이 “향기에 실려온 이야”기다.

 

요즘 내 개인적으로는 마음이 복잡하다. 그래서 편안히 앉아서 책 읽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때문에 책을 받고서도 언제 읽을 수 있을까 하다가 마음을 요동치게 하는 상쾌하지 않은 메일 한 통을 받고 일정을 수정하였다. 운동하러 가려는 계획에서 책을 잡기로 한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십 오년 전 “그린 파파야의 향기”라는 영화를 보러갔을 때 극장 안에서 퍼지던 파파야의 향기처럼 책을 읽을 수록 소용돌이치던 내 마음을 평온하게 하는 향기에 빠져 헤어 나오지를 못하였다.

 

“애틀란타에 눈이 내렸다”라는 제목의 글 중에 눈발 사이에 스쳐간 사슴에 대해 이런 부분이 있다. ‘불빛 때문인지 한 마리가 주춤주춤 고개 돌린다. 순간 나도 모르게 탄성이 튀어 나온다. 아기 꽃사슴의 아름다운 모습을 어디다 담을 것인가. 기억의 창고에 저장하기에는 너무 아쉽다.

 

! 하는 감탄사가 나왔다. 어떻게 이런 표현을 하지. 정말 맑은 소녀에게서나 나올 수 있는 표현이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봄의 서곡”이라는 글에서는 ‘클레식과 함께하는 오후의 차 한 잔은 맑은 영혼이 되어 자연과 은밀한 속삭임을 나눈다.’에서는 전율을 느끼며 눈물이 왈칵 쏟아지고 말았다. 대학시절 국어 시간에 “하루”라는 제목으로 단편을 쓰라는 숙제가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한 참 뒤 우연히 내가 쓴 글을 보며 “조잡하다. 하지만 참 순수하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 추억을 생각하며 읽은 이 책의 “하루를 보내며”라는 제목의 글에 이런 부분이 있다.

‘과거라는 거울을 때로 들여다보며 가슴앓이도 하고 자시의 발자취에서 후회도 해볼 때 좀 더 긍정적으로 성숙해지고 잘못된 것은 가능한 한 반복하지 않고 미리 지향적인 삶도 계획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것을 돌이켜 보며 잘 했던 것에 격려하고 잘못된 것을 반복하지 않도록 학습해야 한다는 지론을 가진 내가 충분히 공감하는 글이다. 저자는 진정한 친구를 ‘서로가 허물을 닦아주고 눈물을 씻어주는 손수건 같은 만남을 가질 수 있는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다. 내 개인적인 혼란을 겪고 있는 지금 진정한 친구가 누구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글이다. 그리곤 ‘그런 친구가 참 많다’라는 어렵지 않은 결론에 도달하면서 내 사정을 알던 모르던 격려하며 함께하는 친구들에게 감사하는 시간도 잠시 가지게 되었다.

 

‘삶은 좋고 나쁜 일들이 과정인 듯하다. 아무리 어두운 골짜기에 섰더라도 받아드려야 한다면 가슴 따스했던 일로 덮어야 한다.‘ 그동안 내가 겼었던 여러 가지 어려웠던 일들 그리고 지금도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이겨내야 하는 일에 대해 가장 적절하고 알맞은 격려의 글이 되었다. 그렇게 책을 잡고 한 자리에 앉아 쉬지 않고 순식간에 다 읽어 벼렸다. 오랫동안 생각하고 꼼꼼히 메모하고 긴 시간동안 어렵게 글을 쓴 작가에게 너무 순식간에 잃어 성

의가 없는 것은 아닌가 할 정도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마음이 복잡하거나 어려움이 있을 때 유행가 가사가 내 이야기 인 듯 이 책이 나를 위로하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었기에 멈출 수가 없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고 진한 향의 커피가 그리웠고 여행을 하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그리곤 책의 내용에 나왔던 Amelia 해변에서 진한 커피 한잔을 들고 일출을 보는 감상에 빠졌다. 평온해 지는 마음에 감사와 행복의 눈물이 흐른다.

 

이 책의 저자 캐런 정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맑고 밝은 소녀의 감성으로 쓴 글을 읽으며 나 자신에 큰 위안과 행복을 가져 왔기 때문이다. 저자는 “세월의 빠름”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빠른 세월 누가 잡을 수 있으며 가지 말라고 누군들 붙들 수 있을 것인가. 주어진 일에 열심히 살며 좋아하는 책읽기, 글쓰기 등 자기개발의 취미활동

도 즐겁게 해야겠다.’라고 하였다. 나 역시 그래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향기에 실려 온 이야기”를 음미해 본다.

! 행복하고 즐겁다.

 

Nov 15,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