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메 이야기

내 맘이 내 몸을 사랑하는 날

송삿갓 2014. 5. 19. 10:25

 아침에 눈을 뜨면서 몸이 참 무겁다는 느낌을 갖는다. ‘왜 이렇지? 잠자리기 불편했나?’ 하면서 창밖의 도로를 보니 촉촉이 젖어 있고 하늘이 잔뜩 흐려있다. 그때서야 오늘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빗줄기는 점점 굵어지고 도로에는 물이 고이기 시작한다.

오늘 골프 토너먼트 마지막 날인데? 이런 상태라면 취소되지 않을까? 하는 조금은 게을러지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3일 연속으로 예정되어 있는 토너먼트가 취소될 리가 없다는 생각과 함께 어제 2일차가 끝나고 점수와 마지막 날 paring의 이메일에 비가 올 예정이니 준비를 하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도 생각해 낸다.

 

 주섬주섬 준비를 끝내고 집을 나서지만 왠지 토너먼트가 취소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기우는 것이 몸이 쉬고 싶다는 사인을 보내는 것 같다. 골프장으로 향하는 Highway에 들어서자 비 때문인지 한산한 도로는 물을 흠뻑 머금고 있다. 뭐가 그리 급한지 차 한 대가 쏜살같이 지나친다. 요즘처럼 전기다리미가 없고 프라이팬 모양의 손화로에 숯을 넣은 다리미를 사용하던 시절 어머님이 입에 찬물을 머금고 있다가 다리미질 할 천위에 품어 내듯이 달리는 차바퀴는 물보라를 일으키고 예전의 아이들이 입을 벌리며 쫒던 방역차가 소독약을 뿜어내듯 달리는 자동차는 물안개를 토해내며 줄행랑을 친다.

 

 

 다른 때 같으면 고고한 척 클래식 음악을 들었지만 오늘은 조금 다른 음악을 듣고 싶은 충동이 인다. 스치는 생각대로 몸이 원하는 음악을 들려주자고 고른 음악이 제법 큰 도시를 왕복하던 시외버스에서 많이 들을 수 있었던 비음을 잔뜩 넣어 구성진 가락을 토해내던 여자 가수의 뽕짝메들리를 고른다. 제법 큰 도시의 [무슨 카바레]라는 간판이 내 걸리고 안에 들어서면 빨간 조명 아래 반짝거리는 드레스를 입은 여자와 2:8 가름마에 하얀 와시셔츠를 입은 아저씨들이 뒤엉켜 퇴폐적이고 끈적거리는 춤추던 댄스홀로 마음이 몸을 이끈다.

 

 오늘은 체면이나 점잔을 모두 걷어내고 몸이 원하는 대로 마음은 따라만 가볼까? 쵀백호의 낭만에 대하여에서의 가사와 같이 몸이 원하면 원하는 대로 마음으로 응원해 보고자 하는 다짐은 해 본다.

 

궂은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도라지위스키한잔에다

짙은 섹스폰 소릴 들어 보렴

 

샛빨간 립스틱에

나름대로 멋을 부린 마담에게

실없이 던지는 농담사이로

짙은 섹스폰 소릴 들어 보렴

 

이제와새삼이나이에

실연의 달콤함이야 있겠냐마는

왠지 한곳이 비어있는

내 가슴이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밤늦은 항구에서

그야말로 연락선 선창가에서

돌아올 사람은 없을지라도

슬픈 뱃고동 소리를 들어 보렴

첫사랑 그 소녀는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갈까

가버린 세월이 서글퍼지는

슬픈 뱃고동 소릴 들어 보렴

 

 조금은 구슬픈 뽕짝을 토해내는 여자 가수는 송창식의 우리는이나 조용필의 'Q‘까지도 조금은 뇌쇄적인 노래로 기계에서 국수가 줄줄 나오듯 뽕짝으로 꺽어 낸다. 그렇게 시작한 하루 평상시 몸이 원해도 건강에 좋지 않다며 밀어내던 돼지갈비에 달짝지근한 아이스크림도 듬뿍 준다.

 

 “몸아 너 힘들지? 오늘은 네가 원하는 대로 해 줄게, 고기를 원하면 고기를 기름지고 맛 나는 음식을 원하면 그것을 줄게. 오늘은 네가 원하는 대로 너를 사랑해 주마

 백미러를 보니 달리는 내 차도 물안개를 일으킨다. 시련과 고통, 아픔까지도 그 물보라에 실어 토해 내려는 듯 속도를 조금 더 올리니 더욱 짙은 물보라가 일고 굴곡진 도로에서 출렁일 때 불규칙하게 뛰는 부정맥에 심장도 덩달아 출렁이지만 그것조차도 오늘은 즐거움을 받아들인다. 오늘은 그렇게 내 맘이 내 몸을 사랑하기로 하였다. 하루쯤 맘대로 하면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