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메 이야기

미국 촌놈

송삿갓 2014. 5. 20. 01:01

 한국을 다녀온 요즘 내가 가장 많이 듣는 인사가 서울물 먹고 오더니 얼굴 좋아졌네요.”. 예전에 한국에 살 때 미국 다녀온 사람보고 미국에서 빠다를 먹고 오더니 얼굴 번지르르 해졌고 혀가 꼬불어 졌다.”라는 인사를 많이 했었고 어릴 적 시골에서 살 때 서울 다녀온 사람에게 서울물(수돗물) 먹고 오더니 얼굴이 뽀예졌다.”라는 인사도 있었지만 세월이 흘러 요즘에는 미국에 있는 교포끼리 한국에 다녀오면 하는 인사가 서울물 먹고 오더니..”라는 인사로 바뀌었다. 어디를 다녀 온 사람에게 그냥 인사치례로 하는 말 일수도 있으나 그 안에는 많은 것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안다.

 

 거의 6년 만의 이번 한국방문에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내가 이방인같았다는 것이다. 태어나 학교를 다니고 사회생활을 하며 40년을 살았던 조국이고 같은 언어를 쓰는데 이방인? 하면 이상하게 들릴 수 있으나 정말 그렇다. TV나 사람들의 이야기 모두가 한국말인데 이해가 잘되지 않는 말이 참 많았다. 태어나서 가장 많이 쓰던 한국말이기에 들리기는 하는데 꼭 집어 이것이다 하기는 쉽지 않지만 머릿속에서 해석해야 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골프장이나, 상호 등 많은 경우에 영어가 섞여 있는데 그것마저도 생소할 뿐 아니라 조금만 넉 놓고 있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잡음처럼 들리는 경우가 참 많았다. 한국을 떠나 온지 20년도 안 된 내가 이럴진대 더 오래된 사람들은 더욱 심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고 미국에 살면서 늘 영어만 쓰는 것도 아니고 영어를 잘하는 것도 아니다. TV에서 뉴스라도 볼라치면 모르는 단어가 대부분이고 때로는 무슨 말인지 도대체 알아들을 수가 없어 멍 때리는 경우가 많고 관공서나 은행 등에 가면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고개를 끄떡 거리거나 “Yes, yes"하며 얼버무리는 경우가 태반이다. 긍정인지 또는 부정을 요구하는 것인지 전체적인 흐름이나 몸짓 표정 등으로 짐작해서 답하는 경우가 더 많고 회사에서는 조리 있고 자세하게 설명하고 싶은데 짧은 영어 때문에 답답해하고 내 생각에 나는 똑똑한데 무식한 놈이 못 알아듣는 다는 듯이 울화통이 터지려 하는 경우도 다반사로 매일 써도 늘지 않는 게 영어이기에 한국말 보다 영어를 잘한다고 할 수도 없다.

 

 미국에 사는 교포끼리 미국 촌놈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한국의 경제가 발달되고 문화가 발달하면서 많은 것을 앞서가는 한국에 비해 쉽지 않은 이민 생활에 문화생활을 많이 하지 못하는 것을 빗대어 하는 말로 추정된다. 이번 한국 방문에서 어머님과 함께 영화를 보려 극장엘 갔는데 티켓을 판매하는 여러 창구 중 한 자리에 사람이 떠나기에 거기에 가서 표를 구입하려 하자, “번호표 뽑으셨어요?” 하는 것이 아닌가. 은행도 아니고 사람도 별로 없는데 하며 주변을 돌아보니 사람들의 눈짓이 예사롭지가 않다. 결국 번호표 뽑는 곳을 찾아 뽑고 차례를 기다리는데 뒤쪽의 기계에서 빠르게 구입할 수 있다는 문구를 보았다. 다가서서 이것저것 시도해 보았지만 결국은 자기 이름의 핸드폰이 없으면 인증을 받을 수가 없어 불가능 하다는 것을 알고 물러서야 했다. 은행에서 번호표를 뽑는 것도 예전에는 숨차 침을 흘리는 개의 혀처럼 살짝 나온 종이를 뽑으면 되었는데 무슨 일로 왔는지 먼저 선택을 해야 번호표를 뽑을 수 있는 것은 물론 지하철 표를 사려 해도 한 참을 공부해야 살 수 있으니 이게 촌놈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어머님이 사는 동네에 개천을 따라 사람들이 걸으며 운동 할 수 있도록 무릎을 보호하기 위해 우레탄 같은 것으로 포장해 놓은 곳은 물론 미국에서 보기 힘든 다양한 운동기구들을 설치하여 남녀노소의 개개인이 혹은 부부, 친지, 가족 등 삼삼오오 모여 운동을 할 수 있는 곳도 참 많이 볼 수 있었다. 미국에서는 사람이 스쳐 지나가면 눈길을 주며 눈인사는 물론 적어도 하이정도의 인사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한국은 운동을 하다가 혹은 지하철 안에서도 누군가와 눈을 마주치면 고개를 아래로 숙이거나 돌리는 것이 다반사이고 때로는 넌 뭔 놈이냐?’라는 듯이 노려보는 경우가 많아 아예 눈을 아래로 깔고 다녀야 하는 것에 이것이 미국 촌놈 이구나하며 내 자신이 위축되기도 하였다.

 한국 방문 2주를 조금 더 지내다 미국으로 돌아왔다. 애틀랜타 공항에 도착하여 비행기에서 내리니 훅 들어오는 몸에 익숙한 공기가 마음을 평안하게 한다. 집으로 가는 지하철, 청바지를 내려 벨트라인이 엉덩이에 걸치고 귀에는 이어피스를 끼고 길게 늘어진 줄 끝에 달린 스마트폰을 한 손에 들고 좌우로 몸을 흔들며 건들거리는 검은 피부의 젊은이가 탄다. 예전에는 무슨 냄새라도 나는 양 외면하고 한심하다는 생각을 하고 했었는데 그 모습을 보니 내가 사는 곳으로 돌아 왔다는 안도의 한숨을 몰아쉰다. 한국에서는 지하철을 타면 대부분의 한국인데 내가 한국인이 아닌 것 같은 착각을 하면서 이방인 느낌이 들었는데 여기서 여러 인종이 섞여 있는 지하철 안에서 조금은 특이한 동양인인 내가 이방인이 아니라 함께 사는 친구들 이라는 포근한 생각에 잠긴다. 아니 어쩌면 한국에 가도 이방인 여기에 살면서도 이방인 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이곳이 점점 익숙해지고 한국이 점점 불편해 질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반응 속도가 느려지면서 눈은 잘 보이지 않을 것이고 빠르게 변하는 한국을 따라 잡을 수 없어 점점 촌스러워 지는 미국 촌놈이 될 것이다. 에궁, 미국 촌놈이 고생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