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께
선생님, 나는 혼자 사니까
가슴이 답답해서 눈물이 나요.
아침에 일어나면 말 할 사람이 없어서 외로워요.
공부를 잘하고 싶은데 누구에게 물어보고 싶어도
물어볼 사람이 없어서 답답해요.
그래서 몸이 아파서 누워 있고 싶다가도
학교에 가서 친구들 보고,
선생님 보며 힘을 내요.
계속 공부하고 싶어요···
“애비야! 내 글이 책에 나왔다“
지난 한국 방문 때
구청에서 운영하는 노인대학을 다니시는 어머님께서
학교에서 만든 글 모음집에 당신의 글이 있다며,
툭~ 하고 조금은 자랑스럽게 던져주신 책에 있는
어머님이 선생님께 쓰신 편지다.
어머님의 자랑스러워하시는 모습에
더 큰 격려를 드리고 싶은 마음에
조금은 장난기까지 섞어
“어머니 대단하시네요”라며 받아 읽었다.
하지만 첫 줄을 대하는 순간 장난기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며
0.1초도 지나지 않아 가슴이 매어지며 눈물이 앞을 가린다.
어머님께 눈물을 들키지 않으려 책을 들고 화장실로 뛰어간다.
그리곤 화장실 안에서 소리죽여 흐느껴 울며 몇 번을 읽었다.
“혼자 살면서 느끼는 외로움과 허전함이 이런 거구나”하면서
내가 예상 했던 것 보다 훨씬 더 외롭고 허전함과 투쟁을 하신다는 생각을 하였다.
어머님과 전화 통화를 할 때
“애비야! 한글을 깨우치니 좋다. 은행에 가서 내 이름도 쓰고 하니 좋다”
“애비야! 쌍 받침 들어가는 한글이 너무 어렵다”
“애비야! 공부를 해도 자꾸 잊어버린다. 나이 들어 그런가 보다”
“애비야! 왜 진작 공부를 못했는지 부모님이 원망스럽고 후회가 된다”
“애비야! 자네 아버지가 돌아가니 물어볼 사람이 없어 답답할 때가 많다”
“애비야! 숙제가 너무 많다”
“애비야! 소풍을 간다고 하는데 가기 싫다”
“애비야! 수학하고 영어는 더 어렵다”
“애비야! 학교 빠지기 싫은데 둘째가 자꾸 오라고 한다”
라는 말씀을 많이 하신다.
그러면 나는
“어머님! 좋으시겠어요”
“어머님! 젊은 사람들도 자주 잊어버려요”
“어머님! 너무 힘들게 하지 마시고 편안히 하세요”
“어머님! 숙제 힘들면 하지 마세요. 그냥 연속극 보면서 쉬세요”
“어머님! 어머님 젊으세요. 지금이라도 공부하시니 좋으시잖아요”
“어머님! 모르면 답답해 하지마시고 내일 선생님께 물어보세요”
“어머님! 학교 빠지면 어때요. 동생이 오라면 가세요”
“어머님! 수학하고 영어가 어려우면 하지 않으셔도 되요”
라는 말로 대답을 한다.
그런데 어머님은
모르는 것이 있어 물어 볼 사람도 없고
모르는 상태에서 학교에 가는 것이 걱정을 하면서도
혼자 있는 것이 외로워서 학교를 가고
친구들과 선생님을 보고 힘을 얻는다 하신다.
열 줄 되는 편지 속에
어머님 삶의 어려움과 회한과 즐거움이 모두 담겨져 있다.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에 대한 원망도 없고
함께 살지 않는 아들들에 대한 원망도 없고
당신이 혼자 받아들이고 삭이면서
즐거움과 행복을 찾아 생을 살아가신다.
방학이 다가오는 요즈음
어머님과 통화를 하면서 “언제부터 방학이예요?”라고 자주 묻곤 한다.
아침에 일어나도 갈 곳이 줄어
학교 갈 준비도 없어지고
숙제도 없고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져
대화할 상대도 줄어 들어
외로움과 쓸쓸함이 더해 질 것이기 때문이다.
뭔가 대안이나, 소일거리가 없으려나?
답답한 마음에
어머님 편지를
읽고 또 읽는다.
June 10,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