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몇 년 만에 이리 술을 마셨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정말 오랜만에 많이 마셨다. 많이 라고 해 봐야 와인 4잔? 그래 그만이라도 마신 기억이 지난 10년 이래 한 번도 없었다. 몸이 안 좋아 피했고 크리스천이라고 피했고 또 뭐였더라? 기회가 있었어도 그놈의 절제라는 것 때문에 거절하고 피해왔었다.
그런데 오늘은 주는 대로 거절하지 않고 마셨지? 나도 잘 모른다. 기분이 좋아서는 아니고 오늘의 몸과 마음 상태로는 한 잔의 와인도 버거웠을 텐데 마지막 한두 번을 제외하고는 그냥 주는 대로 홀짝홀짝 마셨다.
나는 나를 참 잘 억누르며 산다. '나 답게' 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이미 인식되고 각인 되어 버린 나처럼 살기위해 절제하고 참고 억누르며 살았다. 분노를 일으켜 화를 내야 하는 순간에도 참았고 슬프고 괴로워서 울어야 하는 순간에도 참았다. 막내 이모가 “화를 내고 싶으면 불같이 화를 내고 슬픔이 밀려오면 통곡을 하듯이 울어라. 그렇지 않으면 마음의 병이 되고 오히려 건강을 해칠수가 있다.”는 충고를 하였음에도 그러지 못했다.
‘내가 뭘 잘 했다고? 내가 무슨 자격으로?’하면서 Guilty의식에 젖어 나를 억누르고 참았다. 마음의 바닥부터 분노와 슬픔으로 서서히 차오르는 것을 느끼면서도 겉으로는 들어 내지 않기 위해 내 자신을 채찍질하고 억눌렀다. 그래야 하는 것이 나 다운 거라는 생각에 그리고 그래야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래야 아이들에게 덜 미안하고 혹 나중에라도 뭔가 설명할 수 있을 것으로 같았다.
매일 아침 ‘나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를 만드는 하루를 되게 하소서’라며 시작하는 기도도 정말 나를 그렇게 하려는 시도나 노력보다는 그런 마음이 들기를 바라는 위안의 마음으로 기도를 하였는지 모른다. 때로는 하기 싫은 운동을 억지로 할 때 나는 이렇게 운동을 해야 나를 지킬 수 있는데 다른 사람은 규칙적으로 운동하지 않고도 건강을 잘 유지 한다는 생각에 그만 두고 싶은 충동의 마음에도 나다워야 하니까 라는 외부로 인식된 나를 지키기 위해 고고한 척 운동을 하며 나를 지키려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한 가지 일이라도 하게 되면 나도 모르게 그 일에 집중하며 광풍이 몰아치듯 하는 것도 바닥부터 차곡차곡 쌓아 오르던 분노와 슬픔을 쏟아내는 도구로 활용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게 결국은 나 자신을 속이고 세상을 속이는 것이라는 자책도 가끔은 하지만 ‘나다워야 한다.’는 웃기지도 않는 논리에 나를 가두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용감하고 당당한 척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어느 순간부터 나를 연애하다 헌신짝 버리듯 버리고 싶은 충동이 있을 때도 있다. 구렁텅이에 빠지는 한이 있어도 정신줄 놓고 될대로 되라 하고 싶은 충동이 꿈틀거리기도 한다. 분노로 땅을 뒹굴고 몸부림치며 하늘이 노래지고 어질어질할 정도로 통곡을 하고 싶은 마음이, 모든 것을 벗어던진 나체의 몸으로 있는 힘을 다해 숲을 달려 몸이 잔가지에 걸려 찢기고 터지는 그래서 온 몸에 상처투성이가 되어 헐떡거리며 하늘을 향해 누워 울고 싶도록 나를 내 던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꿈틀거림이나 충동은 잠시뿐 나를 누르고 감추며 마음속의 깊은 상처를 더해 왔는지도 모른다. 그게 나다운 것이고 그래야 한다는 틀로 나룰 가두고 만다.
오늘 술을 마시며 나를 놓고 싶었던 것 같다. 나다운 것을 버리고 인간의 본능에 충실하며 세상을 향해 아니면 하늘을 향해 'Why me? What's wrong?'하며 대들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누군가에게 소리치며 지금까지 보였던 나는 내가 아니고 원래 나는 이런 것이다 내지는 나를 봐 달라고 울고불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멈추고 말았다. 그놈의 ‘나 다운 것’이라는 갇힌 틀에서 벗어나지를 못했다. ‘나다운 것’이라는 놈에게 또 무릎을 꿇고 항복을 하고 말았다. 억울할 것도 없고 슬플 것도 없다. 그리고 두려울 것도 없다. 50평생을 그렇게 살아 왔으니까 말이다.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하고 행복하게 하는 것을 배우고 실천하기 위해 참고 또 길을 떠나련다. ‘기도하며 살다보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해결해 주시겠지.’하며 말이다. 그게 '나다운 것이니까'하는 자위와 함께 말이다······
12시를 막 넘겨 9월의 마지막 날을 시작한 시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