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작은 모임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 날의 주인공은 한인 정신과 의사로 문학을 좋아하고 음악과 여행을 좋아하는 분이셨다. 다른 지역에 사시는데 애틀랜타에 잠시 방문하셔서 음악과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 10여명이 함께 모임을 가졌다. 물론 주인공은 그 정신과 의사이셨고 다른 사람들은 주로 그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궁금한 것은 묻고 답하는 형식이었다.
이야기하는 도중 “나는 크리스천이지만 십일조를 나한테 한다. 그 십일조로 주로 여행을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함께 한 사람들이 일순간 술렁였다. 일부는 격렬히 반대하고 싶은 눈빛으로 일부는 동조하는 말로 대응한다. 그 중 전직(?)이 목사님이신 한 분이 이렇게 설명한다.
“십일조는 세금이 없던 구약시대에 세금을 겸한 헌금을 의미하는 것이었는데 지금은 별도로 세금을 내지 않느냐? 따라서 십일조를 강요하는 것은 구약으로의 회귀를 뜻하는 것으로 신약시대를 사는 우리는 그를 따를 필요가 없다. 또한 십일조를 요구하는 교회가 헌금을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라는 원래의 뜻대로 하지 않기 때문에 십일조를 하지 않아도 된다. 단지 마음이 가는 만큼만 헌금하면 된다. 마음이 가는 것 이상의 헌금은 위선이며 자기 과시다.”
그 설명에도 고개를 주억거리며 동조를 하는 사람도 있지만 표정이나 모양새는 적극적인 동조는 하지 않거나 망설이고 있듯이 보이는 사람도 있다. 강렬한 눈으로 반대를 하던 사람은 그 자리에서는 억지로 참고 있었지만 나중에 이런 설명을 한다.
“아버지가 십일조를 망설이는 모습을 본 어린 아들이 아버지에게 식당에 가서 팁을 얼마 주느냐는 질문에 15%~20%라고 대답을 하자 식당에서도 그렇게 많은 팁을 주면서 하나님께 십일조 하는 것에 망설이며 인색하냐는 예를 들어가며 십일조는 당연히 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였다.”
십일조를 자신에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 날의 주인공의 이야기에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그 분의 아내 왈 “저 분(남편)이 말씀은 저렇게 이야기 하지만 본인 자신이 많은 구제사역과 헌금을 한다.”며 역성을 든다. 이런 경우를 두고 ‘내가 복음’이라는 표현을 쓰며 그러면 안 된다는 잘 못되었다는 부정적인 설명을 하는 분도 있다.
누구의 말이 옳고 그름을 떠나 자신을 위해 십일조 한다는 분의 이야기를 나는 이렇게 이해하였다. 자신을 위해 십일조를 하고 그 돈으로 여행을 하여 마음의 여유와 충전을 해서 몸과 마음을 다해 교회를 위해 봉사를 한다면 그 또한 다른 방식의 십일조라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구제나 선교센터로 헌금하는 것은 절차나 방식에서 조금 다를 뿐 이해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어떤 크리스천은 위와 같은 의견에 절대 동조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반대해야 한다고 요청할 지도 모른다. 목회자는 아니지만 크리스천인 내가 이 문제에 대해 깊이 논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 분명하다. 혹여나 내가 십일조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에 대한 당위성을 주장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을 생각해 보기도 하였다. 마음 한 구석에 그런 맘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나를 정당화 시키려는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밝힌다.
이 논쟁의 기본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위해 얼마나 투자하고 자기의 행복을 위해서 얼마나 노력하느냐? 하는 문제로 국한시키고 싶다. 한 예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 정기적으로 운동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하는 사람은 훨씬 적다는 것이다. 자기도 사랑하지 못하고 행복하지 못하게 하는 사람이 자기 가족 등 주변은 물론 교회나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고 행복하게 하겠느냐는 것이다.
자신을 위해서 십일조를 하신다는 분은 적어도 자기를 위해서 헌신하고 투자해서 행복을 찾겠다는 것이 기본일 것이다. 그렇게 갖게 된 사랑과 누리는 행복으로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것에는 반론의 여지가 아주 작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물론 자신을 희생하고 남을 위해서 봉사하고 허신하는 것이 더 아름답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 조차도 자신을 사랑하는 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내 주병이 한 사람은 자신이 먹는 것에 대해 낭비를 한다 할 정도로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먹는 것을 보며 짓는 표정과 찬사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행복해 보인다. 그 모습을 보면 나 자진도 덩달아 행복하고 삶의 만족을 느낀다. 만일 그 사람이 자신은 먹지 않고 나 에게 그것을 먹으라 한다면 내 맘이 불편할 것이다.
위에서 자신을 위해 십일조 한다는 분이 여행이야기를 즐겁게 하였다. 어떤 사람이 어디가 인상 깊었느냐고 물으니 파푸아뉴기니아와 아마존을 설명하는데 80에 가까운 나이답지 않게 활기차고 행복하게 설명한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나 자신도 파푸아뉴기니아와 아마존에 있는 착각이 들고 지루하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자신에게 했던 십일조로 인해서 함께한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과 즐거움을 전파하고 있는 것이었다.
십일조라는 것, 성경에서 나온 이야기 이기는 하지만 결국은 그로 인해 누군가는 교회를 통해(물론 크리스천은 하나님이라 표현 하겠지만) 행복과 즐거움을 얻을 것이다. 오늘 주인공의 방법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러면 목사님이나 신앙이 깊은 크리스천은 좋아 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암튼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만남이었다.
Carpe Diem!!
Oct 11,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