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oad [코맥 막카시, 정영목 옮김] Msrch 28, 2000
쿨럭쿨럭
마른기침이 난다.
공기가 너무 건조해 폐의 융털을 마르게 한 건지
아님 요즘 유행하는 꽃가루 알러지 때문에 미세한 가루가 폐의 융털에 안자
간지럽혀 그런 건지 잔 기침이 나다 쉬기를 반복하며 숨쉬는 걸 방해한다.
이 책 [The Road]를 읽는 내내 그랬다.
내가 읽다 중단한 책은 몇 권 되지를 않는다.
재미없거나 어려워도 일단 읽기 시작하면 어떻게든 끝을 맺는데
이 소설도 그럴 위기를 몇 번 넘기다 마지막 장 플러스 옮긴이의 말까지
오늘에서야 마쳤다.
오늘 이전에 멈춘 게 3~4주는 족히 되었는데 어두침침하고 잔기침이 자꾸 나와
멈췄던 건데 읽던 책을 서재가 아닌 침대의 머리맡에 둔 것은
꼭 마무리하고픈, 아니 어쩌면 마무리해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이었는지도 모르다.
사하라 여행을 했었다.
달리고 달려도 돌과 메마른 산뿐이라 답답했지만
간간이 보이는 사람 사는 움막들이 보였고
물을 길어 하염없이 걷는 사람들이 보였기에 신기했고
얼굴을 뒤집어쓰는 불편함에도 어쩌다 만나는 오아시스에 목을 축이고 쉴 수 있음에
며칠이면 끝난다는 확실함이 있었기에 즐겨보다는 다짐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소설은 그런 게 없다.
세상 전체가 타고 약탈을 당해 먹을 것이니 쉴 곳이 거의 없는 극한의 황량함
누가 적인지 모르지만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함
그리고 철없이 칭얼거리는 아들을 달래는 아버지,
그렇다고 뚜렷한 답을 찾지 못하는 답답함의 반복이다.
수시로 비가 내리는 데 먹기 어렵고 그렇다고 씻는 것도 참 어렵다.
상상을 하면 더럽고 쾌쾌한 냄새 때문에 절로 숨이 막히면서
읽던 책을 던져버리고 싶기도 했다.
실제 덮고 며칠을 기다리다 다시 읽기를 반복했다.
그럼에도 왜 이 책을 끝까지 읽었을까?
아버지와 아들이 향하는 바다에 대한 희망의 결과가 궁금해서?
아님 읽다 중단한 책을 한권 더 늘리기 싫은 의무감에서?
솔직히 잘 모르겠다.
20대 초반에, 그러니까 40여 년 전 제목 때문에 호기심을 봤던 영화
[영자의 전성시대]
어렴풋한 기억으론 한 젊은이가 고래사냥을 꿈꿨다.
불가능할 것 같은 그 꿈을 친구에게 미친 듯이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실제 불가능한 허황된 꿈을 쫒는데
이 소설을 읽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삶이란 순탄하지 않은데
어찌할 수 없는 잔기침이 쿨럭쿨럭 나오는 데
그래도 살아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삶
세상을 등지고 싶은 생각이 있지만 죽음에 대한 두려움
그러다
따스한 손길이 있으면 그를 잡고 기대보는 삶
내가 숙제 앞에서 많이 나에게 주입시키는 말
‘사람이 하는 일인데 풀리지 않겠어?’
이 책은 그런 결말은 없다.
하지만 쓴 여운을 길게 남긴다.
옮긴이의 말에 저자는 그랬단다.
누군가 편안함의 제안을 거절하고 굶주리는 삶을 택했다고
역시 20대에 읽었던 작가 이외수의 삶처럼 말이다.
우린 죽나요?
언젠가는 죽지. 지금은 아니지만.
계속 남쪽으로 가나요?
응.
따뜻한 곳으로요?
응.
알았어요.
뭘 알았어?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알았다고요.
자라.
알았어요.
불 끌게. 괜찮니?
네. 괜찮아요.
한참 뒤 어둠 속에서 뭣 좀 물어봐도 돼요?
그럼. 되고말고.
제가 죽으면 어떡하실 거예요?
네가 죽으면 나도 죽고 싶어.
나하고 함께 있고 싶어서요?
응. 너하고 함께 있고 싶어서.
알았어요.
March 28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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