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메의 컬럼과 글

2022년 5월 12일

송삿갓 2022. 6. 4. 20:58

2022512,

강화의 날씨는 참 맑다.

햇살이 좋고 구름 한 점 없는 하지만 어렴풋이 느껴지는 바람이 쌀쌀 한 듯 선선 한 듯,

봄이라기엔 조금 늦고 여름이라기엔 이른 좋은 날씨다.

낮에 잠시 나갔는데 아카시아 꽃이 많이 피었더구나.

 

어제 밤

나와 동생 둘, 그리고 제수씨

네 엄마이자 내 막내 이모와 네 이모이자 내 엄마

그동안 한 번도 없었던 조합의 가족모임, 계획 없이 만나 앉아 떠들고 웃고

어쩌다 심각함도 있었지만 그 또한 끈끈함을 즐기는 모임이었다.

그야말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새벽까지 놀았다.

늦게까지 있었음에도 고단한 줄 모르게 즐겼으니 참 행복한 모임이었다.

처음이고 오랜만의 만남이었지만 늘 그래왔던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네가 많이 고맙다.

 

새벽녘에 모임을 파한 후 늦잠을 자고 일어났을 때

그렇게 즐거웠던 지난밤이 몇 시간 전인데

한 참 지난 오래 된 추억 같고

어쩜 꿈을 꾸었던 것처럼 벙벙했지만

너로부터 카톡 메시지를 받고는 하늘을 보며 사색에 빠진 것으로 보아

현실이었던 게 분명하더구나.

네게 또 고마워하며 긴 여운을 음미했다.

 

내 엄마, 네 엄마이자 내 막내이모의

이종사촌 중 한 가정이 미국으로 갔다.

김정옥, 김종대, 김정애와 그리고 김종석 등 네 남매

물론 그들이 미국 가시기 전에 이종사촌 간임에도 친 형제들처럼 사이가 좋았다.

나와 내 동생들 또한 그 분들과 왕래가 많았는데

촌수로는 오촌이지만 호칭이 애매해서 그냥 아저씨 아줌마라 불렀단다.

좋은 관계를 부러워하며 묻는 다른 사람들에게 아저씨, 아줌마라 호칭하면

살면서 사이가 좋아진 이웃의 아저씨 아줌마 정도로 이해하기에

외숙부, 외숙모로 호칭하면 고개를 끄떡이곤 한단다.

내 아들과 딸이 너를 고모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하듯 말이다.

만일 나나 내 동생들이 네 두 아들을 만나면

너 역시 관계 설명이나 호칭을 정리할 때 복잡할 거고

아마 너도 외삼촌정도로 알려주겠지만

그들도 이해하는 데 한 참 걸릴지도 모를 거다.

 

1999년 내가 미국으로 가서는

내 아들 진얼이와 내 딸 샛별이가

그분들을 만났을 때

나와 관계 설명을 한 참했음에도 이해를 못하고는

그냥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되었고

20년을 훌쩍 넘긴 지금도 내 아이들은

촌수 관계없이 그대로 할아버지·할머니다.

 

암튼

내 엄마이자 너의 이모, 그 미국 이종사촌의 큰아들은

나와 현화 정도,

네 엄마이자 내 막내이모와 그 미국 이종사촌의 큰아들은

너와 나 정도의 터울일 게다.

그리고 네 엄마는 그 미국 이종사촌의 막내아들인 김종석과는

서로 많이 좋아하는 친 형제·친한 친구처럼 지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몇 년 전 그분이 돌아가시기 직전 내가 자주 찾아가 말동무를 할 때

내 엄마보다 네 엄마와의 추억을 이야기하면서 엄청 많이 보고 싶어 하셨다.

우리 어제 저녁과 비슷한 어쩜 그보다 더한 추억이었을 이야기였는데

나는 모두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어제밤 우리와 같은 추억이었을 게다.

 

그 집안의 큰 아들이 지금도 살아계시고 나를 당신의 아들처럼 믿고 의지하시는 데

(나는 그분의 기대만큼 해드리지 못해 늘 미안한 마음이다.)

옛 추억을 더듬을 때면 네 엄마인 내 막내이모를

영님이라 호칭하면서 그야말로 귀여운 막내 여동생처럼 이야기하신다.

내가 네 볼을 꼬집어주고픈 여동생으로 표현하며 말이다.

 

이번 한국 여행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가 그 분을 만나

어제저녁 우리 만남의 이야기를 하면

아마도 옛 추억을 끊이지 않고 쏟아 낼게 분명하다.

파킨슨병을 앓아 모든 추억을 기억 못해도

기억나는 것만으로도

어눌하고 새는 발음으로

밤을 지새우자고 달려들지도 모른다.

아마도 내가 입을 열 기회조차 주지 않으실 게다.

 

내 엄마와 네 엄마인 막내이모의 이종사촌 관계를

주변의 다른 사람들에게서는 들은 적이 없었는데

어제 우리가 그런 것으로 보아

돈독한 이종사촌의 특별한 피가 흐르는 것 같다.

그러니 너도 나중에 내 아들 딸 혹은 네 아들이나 며느리와

이야기하는 모습이 그려지기도 한다.

 

내가 아홉 살, 초등학교(예전의 초등학교) 2학년을 마치고 3학년 올라갈 무렵

다락골에 살다가 서울로 이사하는 날

네 엄마이자 내 이모는 전의역까지 우리를 배웅했다.

걸어서....

나는 서울로 이사 간다는 설렘이었는지 아님 아버지와 살게 되었다는 것 때문이었는지

깡충깡충 뛰면서 길을 걷는 동안 이모는 아쉬움에

조금은 질질 끄고 도로를 갈지자로 걷고는 하다가

역에 거의 도착할 무렵 내게 했던 말이

방학 때 놀러 올 거지?”라며 울먹였던 기억이 생생하다.

 

네 엄마이자 내 막내이모는

이모였지만 나를 공부 가르치던 선생님 이었고

내가 기대고 싶을 때 어깨를 내 준 누이 같았고

지금도 변함없는 내 이상형으로 그렸던 내 연인 같았고

내가 하염없이 푸념 늘어놓을 수 있는 여사친이다.

 

막내이모가 내 고집이 내 엄마를 닮았다며 가끔 더듬는 추억

나와 내 동생이 여름방학에 다락골을 방문했다가

무슨 일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야단치며 나와 내 동생보고 가라했더니

둘이 떠났고

막내이모는 나중에 그 사실을 아신 외할아버지께 야단을 듣고 놀라서 찾았더니

내가 동생이 집으로 간다며 마산모퉁이를 걷고 있었더란 것,

나는 그랬었던 것 같은 어렴풋함만 남았을 뿐

전부 기억나지 않지만 내 엄마이자 네 이모의 고집을 닮았다는 추억 중 하나다.

 

막내이모가

, 아기 때

너무 예뻐 엎고 혀를 물고 달리다 넘어져

혀가 갈라졌다는 이야기를 하며

갈라진 혀를 내밀어 보일 때면

나중에 어떻게든 보상하겠다는 다짐을 하곤 했었다.

물론 지금까지 그 다짐을 지키지 못해 미안하지만 말이다.

 

예전에 내가 한국에 살 때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혹은 힘든 일이 있어

남몰래 펑펑 울고 싶으면

훌쩍 떠나

내가 입학한 달성국민학교가 있는 동네의 전방(문방구이자 구멍가게)에서

소주 한 병과 작은 플라스틱 잔 한 개

오징어 한 마리와 담배 한 갑을 사서

다락골의 부엉골에 있는 외할머니 산소에 자리 잡아

소주 한 잔 따르고 담뱃불 붙여 꼽고는

흐느끼며 펑펑 울다 벌러덩 누워 하늘을 보고 있노라면

몸과 마음이 후련해지곤 하는 내 한 푸는 곳인데

미국으로 가신

내 엄마와 네 엄마이자 막내이모의 이종사촌 중 막내인

김종석 아저씨도 한국에 올 때면

나와 비슷하게 했다는 추억을 듣곤 한 곳이기도 하다.

 

네 엄마이며 내 막내이모,

그리고 내 엄마의 친정이자 고향인 다락골은

그 이종사촌 또한 몸·마음의 고향이기도 한 거지.

 

미국 살면서 한국을 향한 그리움엔

내 어머니와 내 막내이모가 살고 있기 때문이란 게 가장 크게 차지한다.

해서 한국에 온다는 건 내 엄마를 만나고 내 막내이모를 만나러 오는 거란다.

 

너였나, 아님 막내이모가 그랬었나,

한국에 들어 와 살 생각은 없냐?”.

물음표의 긴 꼬리 끝에 아니라고 대답할 가능성이 높다.

지하철에 이런 광고카피가 있더구나.

함께 한 30, 함께 할 100.’

그 문구를 보며 뜬금없이 엄마와 막내이모랑

얼마나 함께할 수 있을까란 생각에 빠졌었다.

나 태어난 곳과 네 엄마이자 내 막내이모가 태어난 곳이 같아.

막내이모와 난 벌써 60년 넘게 함께했다는 의미고

이제 함께할 수 있는 날은 20년이나 되려나?

내일 무슨 일이 있을지, 얼마나 살 수 있을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내 엄마와 막내이모가 없다면 그 허전함이 너무 커서 힘들어 할 것 같다.

그 때 만일 두 분이 없다면 한국을 찾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서 멈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20년 뒤

내가 네 이모이자 내 엄마 나이가 되고

네가 네 엄마이자 내 막내이모의 나이가 되었을 때

네 말을 잘 들어주는 며느리와

오늘의 추억을 이야기하는 자리에

내가 끼어 맞장구를 치고 있을지도 모르는 여지는 충분히 있겠지......

 

해서

어제 밤

네 엄마이자 내 막내이모,

내 엄마이자 네 이모

내 동생들이자 네 이종사촌 오빠들

그리고 너와 나의 만남은

너의 희망대로 20년 뒤 이야기할 수 있는 아름답고 행복한 추억이자

내가 한국에 돌아와 머물게 될지도 모르는

여지가 있다는 이야기란다.

 

네가 귀엽다며

볼을 꼬집는 날을 기대하는

그 날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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