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의 추억

도시락

송삿갓 2010. 9. 21. 22:52

35년이란 세월이 많은 것을 바꿔 놓았네.

우리 때는 PC는 물론 휴대혼도 없었고

왕따라는 단어도 없었네.

 

우리 중학시절 도시락 생각나나?

지금은 흔치 않은 한쪽 구석에 반찬을 담을 수 있는 구조의

노란 알루미늄 사각 도시락을 가지고 다녔지.

 

어떤 학생은 밥 위에

약간의 기름기 흐르는 계란 후라이 살짝 얹어 왔고

어떤 학생은 반찬국물이 흘러 밥 색깔을 바꿔 놓았고

때론 가방에 그 국물이 흘러 냄새가 나는 것은 물론

책 끝을 붉게 물들이기도 했었지 않나.

 

아니면 사정이 좋았는지

어머니 정성이었는지 모르지만

김치를 작은 병에 담아 라면 봉지에 싸온 친구도 있었지.

 

그런데 말이야!!

그 때 도시락 검사 생각들 나나?

바로 혼식장려를 위한 선생님들의 도시락 검사였지 않나?

점심시간 되기 전에 이미 도시락을 먹은 친구도 많았는데

뚜껑을 열고 도시락 검사를 하곤 했었지......

지금은 건강을 위해서도 억지로 잡곡밥을 해 먹곤 하는데 말이야.

 

두 번째 장려사항이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도 생각 나나?

먹을 것은 없는데 아이들 많이 낳으니까

인구 줄이자고 90년대까지 쉬지 않고 했던 장려사항 이었지.

그 덕분이 우리네들 결혼해서 하나만 낳은 가족이 얼마나 많은가?

아마 우리 들 중 둘이 넘는 자녀를 갖은 친구는 매우 드물거네.

그게 다 그 시절 쇠뇌교육 받은 덕분이지.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출생 인구 줄어들고 고령인구 많아지니까

여기저기서 걱정하면서 많이 낳자고 난리 아닌가?

 

또 하나의 깊은 추억이 바로 반공이었지.

초등학교 때부터 5월이면 벌써

6.25 포스터에 표어 지어서 잘 지은 사람 상도 주곤 했었지.

대부분의 포스터에 김일성의 얼굴은 빨갛게

그리고 목 뒤에는 머리 반 만한 혹을 그려 넣고

자극적이고 파괴적인 단어로 강렬한 인상의 그려 넣었지.

그 열기를 달아오르게 한 것이 웅변대회였는데

반 별로 대표를 뽑아 연습을 시키고

운동장 뜨거운 햇볓에 앉아 학교 웅변대회를 하곤 했었지.

 

빡빡 깍은 머리의 학생이 단상에 올라가

목에 핏대를 세우고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우리가 살 길은 오직 저 괴뢰도당 김일성을

이 손으로 찍어 죽이자는 것이 이 연사의 강렬한 외침입니다!!!!“

라고 외쳤는데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린 나이에

과격한 표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한다네.

 

우리들 1학년 때인가 아님 2학년 때인가

선배 한 사람이 웅변을 잘해서 서울시 웅변대회에 나가고

우리는 경복여고 강당에 응원을 갔던 일도 생각 난다네.

 

그런데 지금은 우리의 주적이 북한이 아니라는 주장이 있고

통일세까지 거론하고 있는 상황이니

35년이라는 세월이 많은 것을 바꿨다고 생각하네.

 

하기사 단발머리 사춘기 소녀가,

빡빡머리 사춘기 소년이었던 우리 나이가

우리 중학시절 선생님들보다도 나이가 많아진 것은 물론

결혼해서 아이들 낳고 또 그들이 적령기가 되어

머지않아 우리들의 손자 손녀들이 학교에 간다고 할 만큼

세월이 흘렀으니 격세지감이지 않나?

 

그래도 말이야

마음에 있던 여학생이 지나가면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흘낏 바라보던 설레임의 마음

그게 아련하지만 가슴 깊숙한 곳에 한 자리 하고 있다는 사실......

 

눈을 감고 그려 본다네

그 때의 그 소녀를

 

그립네 친구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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