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미(산문집) - 박완서
매일 천일여행기를 써서 그런지 아님 세상을 살면서 완숙해져 그런지 어떤 날은 한 단어를 떠올린 것만으로도 그 단어를 제목 삼아 혹은 글의 핵심으로 앉아 타이핑을 하면 한 페이지 정도는 너끈히 글이 쓰여 질 때가 있다. 그렇게 쓰여 진 글이 내 마음에 잘 표현되었다며 꼭 들어 하는 경우가 있는 반면 때로는 ‘이건 아니다. 뭐 이런 글을...’하고 씁쓸할 때도 있다. 억지로 ‘글을 써야지’하는 것 보다 편안하고 경륜이 있는 것 같아 ‘어 너 제법이야.’라고 하는 글을 모으면 그게 산문 아닐까?
'해가 바뀐다든가 몸이 곤곤할 때면 머릿속으로 이것만은 지켜야지, 이것만은 하지 말아야지 심각하게 다짐을 하는 버릇이 있다. 방학하는 날 계획표 같은걸 벽에 써붙여 놓아야 안심하고 씩씩하게 나가 놀던 어릴 적 버릇인 듯싶다.' -좋은 일 하기의 어려움 중에서-
내가 이것만은 지켜야지 했던 것 중의 하나가 천일동안 거르지 않고 일기를 써보자는 것이었다. 내가 지은 제목은 ‘천일여행’ 이었는데 지금까지 9년을 넘게 지키고 있으니 내 자신이 대견하다며 자부심을 갖고 나도 산문을 쓸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긴 것 같다.
요즘 혼자 지내면서 ‘오늘은 뭘 먹지?’라는 게 일상 중의 가장 큰 고민거리다. 하지만 그 고민 또한 하나의 일상이고 즐거움으로 받아들인다. 요즘에는 하루에 한 끼를 만들어 차려 먹는 데, 그래서 인지 대충 넘기지 않으려는 노력을 한다. 내가 예전부터 ‘차리는 밥상에 적어도 한 가지는 새로 만들어 먹자.‘는 다짐을 했었는데 이제 그게 습관이 되었고 상을 차리는 데 귀찮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어머님이 내 식사를 걱정하실 때 해 “먹는 게 하나도 귀찮거나 대충먹지 않는다.“고 하면 ”에이, 그럴 리가 있니? 여자인 나도 귀찮아 찬물에 물 말아 김치 한 가지로 먹을 때가 있는데.. 안 보니 알 수가 있나?“며 걱정을 하시는 데 나는 정말 그런데....
'내가 혼자 살게 된 후부터 남들이 가장 궁금해 하고 걱정해주는 건 식사문제인 것 같다. 혼자 사세요? 그럼 식사는요? 누구든지 이렇게 묻는다.
~중략~ p189 내 입엔 내 손맛이 가장 잘 맞는다. 행사나 모임이 겹쳐 내리 며칠을 외식만 할 적이면 마치 과로할 때 휴식을 갈망하듯이 어서 집에 가서 구수하고 간소한 식사를 하고 싶어진다.' -음식이야기 중에서-
'싱싱한 호박잎을 잎맥의 까실한 줄기를 벗기고 깨끗이 씻어서 뜸들 무렵의 밥 위에 얹어 부드럽고 말랑하게 쪄내는 한편 뚝배기에 강된장을 지진다. 된장이 맛있어야 된다. 된장을 떠다가 거르지 말고 그대로 뚝배기에 넣고 참기름 한 방울 떨어뜨리고 마늘 다진 것, 대파 숭덩숭덩 썬 것과 함께 고루 버무리고 나서 쌀뜨물 받아 붓고 보글보글 끓이다가 풋고추 썬 것을 거의 된장과 같은 양으로 듬뿍 넣고 또 한소끔 끓이면 되직해진다. 다만 예전보다 간사스러워진 혀끝을 위해 된장을 양념할 때 멸치를 좀 부숴 넣어도 좋고, 호박잎을 밥솥 대신 찜통에다 쪄도 상관없다. 쌈 싸먹는 강된장은 슴슴하고도 되직해야 하기 때문에 집 된장이 좀 짠 듯하면 양파와 표고버섯을 잘게 썰어 넣으면 되직해지고 맛도 더 좋아지지만 이 간된장에서 가장 중요한 건 풋고추이다. 풋고추의 독특한 향기는 강하되 매운 맛은 너무 독하지도 밍밍하지도 않은, 생으로 아작 깨물고 싶게 싱싱한 풋고추를 된장 반 풋고추 반이 되도록 넣어야 한다. 새로 지은 밥을 강된장과 함께 부드럽게 찐 호박잎에 싸먹으면 밥이 마냥 들어간다. 그리고 마침내 그리움의 끝에 도달한 것처럼 흐뭇하고 나른해진다. 그까짓 맛이라는 것, 고작 혀끝에 불과한 것이 이리도 집요한 그리움을 지니고 있을 줄이야. 그 맛은 반세기도 어머 전의 고향의 소박한 밥상뿐 아니라 뭐든지 넝쿨 달린 것들은 기를 쓰고 기어 올라가서 울타리와 텃밭과 장독대뿐만 아니라 마침내 고향에 당도했을 때의 피곤한 안도감까지 선연하게 떠오르게 만든다.' -음식이야기의 강된장과 호박잎쌈 중에서-
무언가 만들어 먹고 싶으면 요리책에 있는 레시피를 찾고는 했지만 요즘은 인터넷, 아니 굳이 컴퓨터를 켜기 않고 전화기만으로도 레시피를 쉽게 찾고 그 대로 만들면 크게 실패하지도 않기에 종종 찾아서 만들고는 한다. 그러다 ‘이 레시피 또한 누군가의 레시피를 토대로 요리를 하면서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했겠지?’라는 생각을 하는 데 ‘그 원천은 어디서 온 걸까?‘라는 궁금증이 생긴 적도 있었다. 어쩌면 이 책의 음식이야기에 있는 ’강된장과 호박잎쌈‘ 같은 게 그 원천이 아니었을까? 나도 다음에 만들어 봐야겠다.
얼마 전 내 짝이 “자기는 언제가 제일 행복해?”라고 물은 적이 있다. “응, 지금 이 순간.”이라는 대답을 어렵지 않게 뱉어냈다. 몇 해 전부터 그렇게 생각하고 살았기 때문이었고 그게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 삶은 지금의 짝을 만나기 전과 후로 나뉘는 데 이전의 삶은 치열하게 투쟁하며 살다보니 행복이라는 걸 갖지 못했다. 물론 순간순간 행복했던 적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나와 세상의 치열함, 나와 가족의 갈등, 나와 내 내면과 갈등이 물과 기름처럼 산 기간이 더 많았다. 허나 지금의 짝을 만난 이후의 삶은 물이 또 다른 물을 만난 것처럼 갈등이 거의 없었다. 어쩌면 만난 물로 인해 기름 같은 내 마음이 희석되었을지도 모르고 그걸 깨우친 내 내면이 나를 아우르고 달래면서 더 물과 같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음에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
'이 나이까지 살아오면서 행복했던 순간들도 남들 못지않게 많았고, 심장이 터질 듯이 격렬하게 행복했던 순간들은 지금도 가끔 곱씹으면서 지루해지려는 삶을 추스를 수 있는 활력소로 삼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크고 작은 행복감의 공통점은 꼭 아름다운 유리그릇처럼 언제 깨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섞여 있다는 것이다.
자연의 질서를 긍정하고, 거기 순응하는 행복감에는 그런 불안감이 없다. 아무리 4월에 눈보라가 쳐도 몸이 안 올 거라고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 변덕도 자연 질서의 일부일 뿐 원칙을 깨는 법은 없다. 우리가 죽는 날까지 배우는 마음을 놓지 말아야 할 것은, 사물과 인간의 자연 질서대로 지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가 아닐까.' -돌이켜보니 자연이 한 일은 다 옳았다 중에서-
'나는 왜 흘러간 시간은 절대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공간은 고정돼 있는 것처럼 여겨 왔을까.' -냉동고구마 중에서-
나는 살면서 집안의 어른 누군가로부터 지극한 사랑을 받은 기억이 적다. 아니 많았는데 치열한 삶과 아픔으로 인해 가려지거나 잊혀 졌는지도 모른다. 아니 사랑을 듬뿍 주셨는데 내가 그 사랑을 못 알아차렸을 지도 모른다. 그게 내 잘난 맛에 살아 그랬을 수도 있다는 막연한 반성도 한 적이 있다. 내 할머니, 내 아버지 어머니로부터 가장 많이들은 말은 “너는 종손이니, 장남이니... 이래야 한다.“였는데 그러한 말이 훈계가 아니고 사랑이었을 지도 모른다. ‘아버지와의 좋은 추억’이란 것에 두 가지 확실한 게 있다. 오금동에 살았던 초등학교 4학년 즈음 벼가 누렇게 익어 고개를 숙인 들판을 가로질러 거여동에 있는 약수터를 다녀 온 것, 같은 해 눈이 엄청 내린 겨울 아침 추워서 숨을 들이킬 때마다 코 안의 코가 살짝 어는 것 같은 느낌으로 잔뜩 몸을 움츠리고 학교를 가고 있는데 집으로 오시는 아버지가 ”권식아!“하고 부르더니 버스타고 가라며 버스요금을 주었던 것이고, 아버지에 대한 아련함은 대학에 입학하기 전 등록금을 내러 같이 학교로 갈 때 버스의 자리에 앉은 아버지를 볼 때 흰 머리카락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였다.
'측은지심(惻隱之心: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이른다))과 수오지심(羞惡之: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착하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을 이른다)을 사람다움의 근본적으로 강조하신 거나, 내가 싫은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마라, 잦칫집이나 손님으로 가서 윗자리에 앉지 마라, 일꾼이 게으르게 굴었다고 품싻 까지 마라 등등 집안에서 흔히 듣던 할아버지의 훈계' -그는 누구인가 중에서-
'할아버지는 당신 상에나 올릴 것 같은 특별한 별식이 있을 때만 일부러 손녀를 불러 겸상을 명하셨지만 나는 그런 특혜를 좋아했던 것 같지는 않다. 특히 수염이 빠졌다 나온 고기 국물을 남겨주시는 건 질색이다.' -음식이야기 중에서-
최근 몇 년 동안 어머님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내 어린 시절 나에게 제대로 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일이 많다. 내 가슴에 맺히듯 기억하는 것도 있고 아련한 기억은 있지만 아프지 않은 것이 있는 반면 어떤 것은 기억도 없는 것에 눈물을 그렁거리며 다독이듯 풀어내는 것도 있다. 때문인지 한 번이라도 더 어머님을 뵈어야 한다는 마음에 서울을 찾고는 한다. 그런데 그렇게 찾아 갔을 때 “다음에 또 언제 올래?”하는 말씀에 꿈틀거리는 마음이 일고는 하면서 “어머님 저 이제 막 왔어요. 미국에서 한국이 이웃 동네도 아니고..”라며 투정부리듯 토해내기도 하는 데.... 그래 맞아 그러면 안 되는 것을 그랬다....
그러다 내가 내 아들과 딸에게 했던 서운한 게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기도 한다. 미국으로 막 이민 왔을 때 학교를 다녀온 진얼이가 “나 한국으로 돌아갈래요.”라며 눈물로 호소한 일이 있었다. 학교에서 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수업에 답답했는데 누군가로부터 무시하는 말을 들었다는 게 이유였는데 내 마음이 갈기갈기 찢겨 한국을 떠나면서 다시는 한국에 발을 들이지 않겠다며 왔던 길을 돌아가자니 화가 치밀어 마시던 패트병을 진얼이에게 던졌다. 내 기억으론 그게 내가 진얼이에게 손 최초의 일이었다. 그 생각을 하면 어린 그를 다독여주지 못하고 상처를 준 게 내게 있는 가장 큰 미안함이다. 그는 그걸 기억하고 있을까? 어쩌면 내가 기억 못하는 더 큰 상처가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 또한 미안함이다.
'어젠 집에 잘 들어갔느냐. 네 운전경력이 20연 가까운데도 나는 네가 차를 몰고 다니는 게 늘 불안하다. 특히 친정에 왔다 갈 때면 운전조심하라고 타이르고 나서도 집에 도착할 시간까지 내내 기도하는 심정이 되곤 한다.
~중략~
속도를 무시무시한 그 기나긴 강변북로를 생각하면 나는 지레 아찔하고 차라기 네가 친정에 자주 오지 말기를 바라게 된다. 말로는 그러면서도 일주일에 서너 번은 만나는 습관이 되어, 네가 오면 시킬 일, 부탁할 일, 의논할 말을 늘 마음속에 준비하고 있느니 딱한 어미로구나. ~중략~
다 너 잘되기보다는 동생들이 본뜨고 뒤따를 테니까 잘해야 된다는 식으로 가르쳤으니 어려서부터 나는 너에게 너무 큰 짐을 지워왔구나.
~중략
늘 뭔가를 시키고 부탁만 해서 미안하지만 한 가지만 더 하겠다. 만약 엄마가 더 늙어 살짝 노망이 든 후에도 알량한 명예욕을 버리지 못하고 괴발개발 되지 않은 글을 쓰고 싶어한다면 그건 사회적인 노망이 될 테니 그 지경까지 가지 않도록 미리 네가 모질게 제재해주기를 바란다. 엄마가 말년을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다오.' -딸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
이러한 걸 미리 알아서 그랬을까? 내 유언장에 아이들에게 당부한 게 있다.
연명치료를 하지마라
죽으면 내 몸을 기증해라
그들이 다 쓰고 난 후 돌려받으면 화장해서 뿌려라. 절대 묘지 같은 걸 만들지 마라
September 19,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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