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박완서(소설로 그린 자화상2·성년의 나날들)

송삿갓 2024. 9. 13. 05:59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박완서(소설로 그린 자화상성년의 나날들)

 

밭머리나 논두렁이나 가리지 않고 냉이가 질펀하게 돋아나고 있었다. 가끔 시골 처녀의 머리채처럼 나스스르하고도 청청하게 돋아난 달래가 눈에 뛸 적도 있었다.

 

박완서의 소설을 읽다보면 어떻게 글로 이런 표현을 하지?’라는 감탄을 하는 경우가 너무도 많은 데 화자가 북으로 피난(?)을 가던 중 냉이를 보고 표현한 글이다. 이런 글을 보면서 어찌 감탄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오빠가 인민군으로 끌려갔다가 총알을 맞고 치료하다 죽는 과정과 저자가 가장으로서 미군부대 PX에서 일을 하게 된 이야기, 그리고 먼 친척과의 연애감정을 가지고 만나던(그 남자네 집과 오버랩이 된다.) 이야기, 그리고 결혼에 이르기까지의 20대를 그린 책이다.

 

오빠는 끌려갔던 인민군에서 탈출해 가족들과 다시 만났지만 그 과정은 이야기하지 않고 예전에 어른스러웠던 어린가장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게 된 것에 화자는 옆에서 보고 느끼는 감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오빠가 넘어온 이데올로기의 전선은 나로서는 처음부터 상상을 초월한 것이긴 했지만 이런 오빠를 보고 있으면 그 선의 잔인하고 음흉한 파괴력에 몸서리가 처지곤 했다. 오빠 같은 한낱 나약한 이상주의자가 함부로 넘나들 수 있는 선이 아니었다.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변할 수가 있을까. 오빠가 얼굴을 잃고 돌아왔다 해도 지금의 오빠보다는 유사성을 발견하기 쉬울 것 같았다. 허구한 날 오빠는 다시 꿈꾸지 않기를 꿈꾸고, 엄마는 오냐오냐 맞장구를 쳐 대며 즐거워했지만, 엄마의 태도도 서른 살 먹은 아들의 포부를 듣는 태도라기보다는 세 살 먹은 어린애의 재롱을 보는 태도에 가까웠다.

 

 

그럼 엄마는 왜 시시각각 변하는 아들을 세 살 먹은 어린애의 재롱으로 보는 태도였을까? 아마도 병에 결린 남편을 제대로 치료하기 보다는 박수무당을 말만 믿고 굿을 했지만 죽기에 이르도록 방치했던 시어머니에 대한 서운함과 증오의 탄식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전쟁 통에 부상을 당해 고통스러워하는 아들을 어찌할 도리가 없는 엄마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그렸다.

 

"모든 병은 나을 때가 돼야 낫는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한숨 섞인 엄마의 이런 탄식은 아들에게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엄마의 자책과 시간의 치유력에 대한 절절한 기도가 담겨 있을 뿐이다.

 

오빠가 죽고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지 가족전체가 난감할 때 화자는 서울대학생이라는 것 하나로 미군 PX의 한국사업자 회사에 취업을 해서 집안의 가장 노릇을 한다. 사장이 PX내 지입한국매장 이곳저곳 데리고 다니면서 새로 들어온 직원인데 서울대학생이라고 소개를 한다. 본인은 학벌이 낮지만 서울대학생을 직원으로 쓰고 있다는 Show up도 포함 된 건데 사장 입장에서는 처음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쓸모가 많지 않다고 판단이 되었을 때 미군들에게 초상화를 그려주는 매장으로 좌천(?)을 시키게 된다. 처음에는 얼떨떨하다 자리가 잡히면서 곤두박질치던 초상화파트가 그녀의 노력으로 매출이 오르게 되면서 몸에 힘이 들어간다. 그럴 때 나타나는 꼰대기질 지적질을 하는 데 그 과정에서 이런 내용이 있다.

 

한참 들여다보고(초상화를) 있는 사이에 무슨 각성처럼 이건 모조리 돼먹지 않은 그림이란 생각이 퍼뜩 들었다. 안 닮게 그렸다는 뜻은 아니다. 사진의 얼굴들은 예쁜 얼굴, 덜 예쁜 얼굴, 날카로운 얼굴, 뚱뚱한 얼굴, 늙은 얼굴, 젊은 얼굴, 어린 얼굴 등 제각각이었지만 그들 서양 여자들의 표정엔 뚜렷한 공통점이 있었다. 그건 인생고의 그늘이 전혀 안 보이는 거였다. 인간의 얼굴이 어떻게 저렇게 찌든 구석이라고는 없을 수가 있을까. 우리들한테는 갓난아기면 면하면 벌써 생기는 산산하고 고달픈 생활의 그늘이 그들에겐 늙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당시에 미군부대에서 일을 한다면 흔히 판단하는 양공주라는 인식 때문에 떳떳이 직업을 밝히지도 못한다. 자존심 강한 화자의 엄마는 적지 않은 월급을 받아오는 딸이 대견스러우면서도 어디서 일하는 지 밝히지 않는다. 화자는 그러한 굴레에서 속히 벗어나기를 갈망하지만 어디가도 그 만큼의 수입이 보장되기 어렵고 가장의 무게나 책임을 다하기 위해 참는다.

 

잘 난 척 할 수 없으면 우리 엄마가 아니다. 우리 집안에 엄마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이 굴욕을 벗어나야만 한다. 그러나 이 굴욕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좀 더 이 굴욕의 시간을 견디어 내야 할 것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늘 붙어 다니고 청소 시간이 안 맞으면 기다렸다가 라도 같이 가는 단짝 친구를 한두 명씩 가지고 있고, 만역 거기서 소외되면 상처 받는 게 여학교 때 으레 경험하는 교우 관곈데, 나는 혼자 다니는 데 더 익숙했다. 등굣길이나 하굣길에 별로 친하지 않은 친구가 앞에 가고 있으면 일부러 걸음을 늦춰서라도 같이 가기를 피했다. 구속되기 싫었다. 남을 의식한다는 게 나에게는 일종의 구속감이었다. 남한테 신경 쓰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지독한 이기주의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기로는 유년기에 이미 형성된 버릇이었다.

 

위 글의 화자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했다는 데 나도 비슷했다. 특히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는 단짝이 거의 없었다. 물론 같은 반 학생들이 가면 걸음을 늦춰 말조차 걸어오는 걸 피했다. 화자는 구속감이 싫다고 했지만 나는 그냥 혼자 있는 게 좋아서만은 아니고 자존감의 부족 때문이었던 걸로 나중에 성인이 되어서야 알았다. 싸움을 해도 늘 지고 구슬 따먹기를 해도 지는 경우가 많고 다른 아이들은 군것질을 하거나 TV가게나 만화방을 다니고는 했지만 나에게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 같아 어울리지 못했던 거다. 2~3년 전에 어머님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할 때

아들, 나는 너한테 미안하게 많아.”

뭐가요?”

다른 아이들처럼 용돈이란 걸 줘봤니, 아님 맛있는 걸 사주기라도 해줬니?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남들은 다 하는 걸 너에게는 못해주었으니 미안하지.”

뭘요. 그 때 먹고 사느라고 얼마나 힘드셨어요. 저는 괜찮았어요.”

내가 속상하니 분풀이로 너를 때리기도 많이 때렸다. 네 동생은 도망가거나 내 손을 잡고 꼼짝 못하게 그랬는데 너는 그걸 꾹 참고 맞았잖아.”

제가 도망갔으면 어머님이 얼마나 속상했겠어요. 그러니 참아야 했지요.”

그렇다. 나는 장남이라 더 참아야 했기에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혼자 숨어서 울고 그런 모습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으려 더 꼭꼭 숨었다. 그런 성장 속에서 자존감을 갖는 건 상상도 못할 때였던 것 같았다. 자라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어쩔 수 없이 누군가와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때로는 리더로 살아야 했으니 낮았던 자존감은 숨기고 서서히 내 스스로를 훈련시키면서 자존감을 만들어야 했다.

 

이 책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를 읽으면서 내가 겪은 전쟁통에서의 삶은 아니지만 내가 살았던 삶과 비교해가며 한숨을 쉬었고 탄식도 토해냈다. 어머니 생각도 많이 하면서 눈물도 났고 나도 이런 소설을 쓴다면 어떨까하는 생각도 했다. 그리고는 예전의 그러함을 잘 살아낸 내 자신에 참 다행이다.’라며 마음을 어루만졌다.

 

September 12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