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박완서

송삿갓 2024. 9. 28. 21:33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박완서

 

이 책에는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라는 장편 외에도 저자가 세태소설이라고 한 장편 [서울사람들], 그리고 단편 [저문 날의 삽화(2)] 등 세 편의 소설이 있다.

 

저자 박완서는 책 뒤에 이렇게 썼다.

이건 대단한 이야기도 아닙니다. 한 평범한 여자가 꿈에서 깨어나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아직도 꿈을 못 버린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끊임없이 꿈으로부터 배반당하면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꿈을 창출해내는 게 어찌 여자들만의 일이겠습니까. 인간의 운명이지요. -책 뒤에, 에서-

 

이렇듯 여자의 이야기인데 여자들만의 일이겠습니까. 인간의 운명이지요.’라고 쓴 이유는 아마도 여자도 남자와 동등한 여자이기를 바라는 강력한 주장의 소설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건 단순한 내 생각일 따름인 게 저자의 의도를 정확하게 내가 알 수 없음이기도 하다. 박완서는 산문집 [호미]에서 자신의 소설 [엄마의 말뚝]이 불어로 번역된 것을 반갑고 고마워하면서도 말뚝을 피켓으로 번역한 것을 아쉬워했다. 사람들은 말뚝의 의미를 무어라고 생각할까? 전문번역가가 [엄마의 피켓]으로 번역한 것에 불어로 그 책을 대한 사람들은 어떤 의미로 해석할까? 해서 내 어설픈 실력으로 저자의 의도를 해석한다는 게 두렵다며, 극도로 조심스럽게 이 책의 후기를 남긴다.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에서 그대는 여자인지 남자인지 모른다(저자의 에필로그인 책 뒤에한 평범한 여자가 꿈에서 깨어나는 이야기이기도라는 글로 보아 저자는 그대를 여자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어쩌면 크게 어긋난 것일지 모르지만 나는 그대=남자로 바라보았다. 가부장적사회에서의 남성우월주의나 남존여비는 거의 남자들의 입장에서 그렇지만 남아선호는 여자도 그럴 수 있다는 걸 소설을 통해서도 다시금 느꼈다. 어떤 책에서인가 현존하는 인류인 호모사피엔스가 다른 동물에 비해 우월했던 것 중의 하나가 가부장적사회를 꼽기도 하는 데 만일 그렇다면 남성우월주의는 호모사피엔스의 운명과 같을 거라고 인식해도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 세상에 인간으로 입문하는 조건을 100점 만점이라고 칠 때 남자로 태어나면 기본 점 50점은 따고 들어가는 거라구. 그러니까 여자로 태어난다는 건 50점 감점인 셈이지. 대학입시에서 만일 제 자식이 까닭 없이 1, 2점만 감점을 당해도 사생결단하고 덤비지 않을 엄마 없을 걸, 50점의 불이익이 분하고 억울해서 우는 건 당연해.

 

소설에서 여자에게 남매를 둔 친구가 조언하는 내용으로 남자와 여자가 태어나는 순간 50점 차이가 난다는 이야기인데 그 차이가 절반이라면 더 크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 소설은 35살 동갑내기의 이혼녀와 딸을 하나 둔 사별한 남자의 이야기로 시작이 된다. 왜 그런 인물을 설정했는지 잘 느끼지 못하다 마지막까지 읽고 참 구성이 기가 막히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생각하는 이 소설의 기막힌 터닝 포인트는 남자가 여자에게 보낸 이 편지가 아닐까 한다.

 

차문경 여사

여사가 본인의 아이를 낳았다구요?

여사의 말 귀를 못 알아듣겠음을 영서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여사로부터 그와 같은 협박을 당한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걸 본인이 기억하고 있음을 상기시켜드리고자 합니다. 앞으로 다시 이런 허무맹랑한 협박으로 본인의 신성한 가정의 평화가 위협을 받을 시는 여사의 정신상태를 의심할 것이며 본인도 응분의 조치를 취할 것임을 경고합니다.

 

XXX일 김혁주 -본문 중에서-

 

차문경과 김혁주는 위에서 서술한 서른다섯 살의 이혼녀와 사별한 남자로 소설에서는 편지 다음 글에서 끄트머리 성명삼자까지 타이핑을 했으면서도 무슨 생각에선지 지름 다음에도 인주빛깔도 선명하게 날인을 하고 있었다.’라고 되어있다. 편지의 내용이나 서명보다도 강한 남자의 의지를 담은 것이라 했다. 나는 이를 남성우월주의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여자가 미혼모로 아이를 키워야 하는 건 경제적으로 어렵지만 그 보다 더 어려운 건 사회의 인식이었다. 여자는 그로 인해 직업을 잃었지만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의지로 시작한 일이 ,<할미새둥지><장모님 솜씨>. 둘의 업종은 상상에 맡기겠다.

 

 

여자가 그렇게 투쟁하듯 살아가는 동안 남자는 경제적 능력이 뛰어나고 미모를 겸비한 어린 여자를 만나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아 부족한 것 없이 행복하게 산다. 나는 총량의 법칙을 믿는다. 사람의 일생에 행복이나 불행 등의 총량은 누구나 똑같다는 의미로 나와 옆에 있는 사람의 행복과 불행의 총량이 같다는 의미다. 소설에서의 남자도 모든 게 행복한 것 같지만 하나 부족한 게 아들이라는 씨앗의 대물림이다. 능력 있는 아내가 수술로 자궁상실이라는 상황을 당했을 때 자신의 아들을 낳았지만 버려 잊고 살았던 여자를 생각한다. 물론 그의 어머니도 씨앗에 대한 강한 집착을 들어낸다.

 

그 여자가 어렸을 적 저녁나절이면 한꺼번에 피어나는 분꽃이 신기해서 아떻게 오무려졌던 게 벌어지나 그 신비를 잡으려고 꽃봉오리 하나를 지목해서 지키고 있으면 딴 꽃은 다 피는데 지키고 있는 꽃만 안 필 적이 있었다. 그러면 어머니는 웃으면서 말했었다. "그건 꽃을 예뻐하는 게 아니란다. 눈독이지. 꽃은 눈독 손독을 싫어하니까 네가 꽃을 정말 예뻐하려거든 잠시 눈을 떼고 딴 데를 보렴." -본문 중에서-

 

여자가 남자의 집에 가서 자신의 아들을 찾으러 갔을 때 나오는 글인데 이 부분을 읽으면서 ! 어떻게 이러한 글로 상황을 잘 묘사하지? 정말 대단하다.’며 전율을 느꼈다. 남자에게 아들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여자의 강한 의지를 이렇게 토해냈다.

 

그 애에게 거는 저의 가장 찬란한 꿈이 뭔 줄 아세요? 남자로 태어났으면 마땅히 여자를 이용하고 짓밟고 능멸해도 된다는 그 전부의 권리로부터 자유로운 신종 남자로 키우는 거죠. 그 꿈을 위해서도 그 애는 제가 키우고 싶어요. -본문 중에서-

 

가부장, 남성우월, 남아선호, 남존여비에 항거하는 엄마의, 자신의 아이를 자신이 지켜야 하는 강한 의지로서는 최고가 아닐까? 통쾌했다.

 

이 책에서의 두 번째 소설이 [서울 사람들]이다. 평범한 회사원 만나 남편의 박봉에서도 조금씩 저축해 월세에서 전세로, 전세에서 자가로, 작은 집에서 큰 집으로 늘려가는 서울 사람, 평범함이 싫어 잘 가꾸어 재벌과 결혼해 신분의 급상승을 기대하는 서울 사람, 개 같이 번 부모의 돈으로 열쇠 세 개를 준비해 똘똘한 남편 만나 포장된 신분으로 사는 서울 사람 등을 그려낸 이야기다.

 

이 나라를 크게 도시와 시골로 구분 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 여러모로 뚜렷하게 대립되니까. 도시는 소비적이고 시골은 생산적이고, 한쪽은 편리하고 한쪽은 불편하고, 한쪽은 인공적이고 한쪽은 자연적이고······, 상반되는 건 그밖에도 얼마든지 있지. -본문 중에서

 

월급쟁이를 만나 한 단계씩 늘려가는 삶을 사는 언니와 한 방에 좋은 사람 만나 신분상승을 꿈꾸는 동생이 뚜쟁이가 신랑감들을 만남의 자리를 주선했던 넓은 농장에서 버림받듯 나온 후 둘의 대화 중 언니가 동생에게 한 말이다. 서울 사람들 중에서도 시골과 도시의 격차보다 더 큰 삶을 살아야 하는 그런 이야기다. 이 소설의 뒷 맛은 씁쓸하면서도 다행이라는 위안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