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양귀자
진지하고 우호적인 형태이든, 혹은 거칠고 과격한 형태이든 간에 미리 유포되는 전문 독자들의 독후감은 소설에 대한 선입견을 조장한다. 그런 선입견은 자칫 작가에게는 소망을, 독자에게는 감동을, 소설 그 자체에서는 완성의 기회를 앗아가는 적이 될 수도 있다. -작가 노트 중에서-
이 책 [모순]의 본문을 모두 잃고 뜸을 들이다가 ‘작가 노트’를 읽었다. ‘작가 노트’를 책을 읽기 전에 읽었더라면 더욱 좋았을 것을‘이라는 되 뇌임을 하면서 읽고 또 읽고, 또 읽으면서 반성했다. 작가는 ’소설 뒤나 앞에서 반드시 쓰여지거나 쓰여졌어야 하는 문장들이 저 혼자 뚜벅뚜벅 머릿 속을 걸어다는 일이 벌어지고는 한다. 그럴 때 결단코 그 문장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메모 노트를 하는 데 글씨들이 몹시 난삽하다는 표현을 썼다.
어떤 문장이 떠오르면 ‘아! 이거 참 좋다. 잘 기억했다가 나중에 써야지.’라고 뒤로 미루면 나중에 그게 무엇인지 기억이 나지 않아 머리를 쥐어뜯듯이 하는 경우가 많다. 작가 또한 그걸 되찾기까지 도저히 일을 할 수 없고 찾다 찾다 못해 울어버린 경우도 있다고 했는데 격하게 공감한다. 대부분의 메모들은 소설에 들어가야 할 내용들이지만 소설 바깥을 내다보는 메모들이 몇 개 있다는 내용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위에 쓴 글이다. 작가는 소설의 완성은 독자가 읽는 것이라고 썼다. 그런 면에서 작가의 소설 외적인 메모의 첫 번째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읽어 주었으면’이란다. 내가 ‘작가 노트를 책을 읽기 전에 읽었더라면······.’이라고 아쉬워했던 문장이다. 그 반성의 의미로 ‘작가 노트’를 반복해 읽은 것 같다. 그러함에도 나는 내 완성을 위해 후기를 시작한다.
옛날, 창과 방패를 만들어 파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자랑했다.
이 창은 모든 방패를 뚫는다.
그리고 그는 또 말했다.
이 방패는 모든 창을 막아 낸다.
그러자 자람들이 물었다.
그 창으로 그 방패를 찌르면 어떻게 되는가.
창과 방패를 파는 사람은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본문 ‘모순’ 중에서-
이 외에도 본문에서 모순된 삶에 대한 문장이 많다.
사람들은 작은 상처는 오래 간직하고 큰 은혜는 얼른 망각해 버린다. 상처는 꼭 받아야 할 빚이라고 생각하고 은혜는 꼭 돌려주지 않아도 될 빚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의 장부책 계산을 그렇게 한다. -본문 ‘오래 전, 그 십 분의 의미’ 중에서-
인생이란 때때로 우리로 하여금 기꺼이 악을 선택하게 만들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모순과 손잡으며 살아야 한다는 사실. -본문 ‘착한 주리’ 중에서-
세상은 네가 해석 하는 것처럼 옳거니 나쁜 것만 있는 게 아니야. 옳으면서도 나쁘고, 나쁘면서도 옳은 것이 더 많은 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야. -본문 ‘착한 주리’ 중에서-
우리들은 남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자기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언제나 납득할 수 없어 한다. -본문 ‘생의 외침’ 중에서-
작가는 삶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모든 것이 모순투성이라고 ‘작가 노트’썼다. 진실의 방향도 원래 의미의 진실과 마음의 진실이 언제나 같은 방향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며, 세상의 일들이란 모순으로 짜여져 있고, 그 모순을 이해할 때 조금 더 삶의 본질 가까이로 다가갈 수 있다고도 했다며 해서 이 책의 제목이 모순이라고 했단다.
내가 이 책을 읽는 동안 미국에서는 대통령 선거가 있었고 트럼프가 다시 선출되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투표를 독려하면서 ‘나는 이 사람이 싫어 저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으면 한다.’는 주장을 했다. ‘한 후보의 정책이나 방향이 옳아서가 아니라 다른 후보가 싫어서’라니 얼마나 모순적인 태도인가? 그러고는 선출되면 정치를 잘 못한다고 탓 한다. 그게 작가가 이야기한 모순으로 짜여진 세상의 일들 중 하나일 게다.
스포일이 될 것 같지만 책의 등장인물 중 쌍둥이 자매가 있다. 같은 날에 태어났는데 그 부모는 둘을 같은 날에 결혼시킨다. 하지만 삶은 너무도 상반된다. 작가는 ‘삶의 이면에 불행이 있고, 불행의 이면에 삶이 있다. 마찬가지다. 풍요의 뒷면을 들추면 반드시 빈곤이 있고, 빈곤의 뒷면에는 우리자 찾지 못하는 풍요가 숨어있다.’며 때문에 쌍둥이를 등장시켰다는 내용이 ‘작가 노트’에 있다.
괴변 같지만 나는 ‘총량의 법칙’을 믿는다. 사람이 살면서 누리는 행복은 ‘행복 총량의 법칙’에 따라 누구나 같고 다가오는 불행 또한 ‘불행 총량의 법칙’에 의해 모두가 같아서 결국 ‘인생의 총량의 법칙’에 따라 누구나 다 똑 같다고 믿는 거다. 물론 커다란 모순이 있음을 안다. 태어나 얼마 지나지 않아 죽는 사람과 천수를 누린 사람과 삶의 길이가 다른데 어떻게 인생 총량의 법칙을 주장할 수 있는가 하는 모순 말이다. 거기에도 괴변은 있다. 길이를 재는 자가 있는데 30센티미터의 짧은 자가 있고 2미터의 긴 자가 있지만 ‘자는 자다.’는 괴변이다. 작가가 그러지 않았나? 세상의 일들이란 모순으로 짜여져 있다고······.
본문에 이런 글이 있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 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본문 ‘모순’ 중에서-
내 괴변도 살아오면서 탐구한 것 중의 하나고 앞으로 살아가면서 이어지는 탐구로 또 다른 괴변이 나올 수도 있다. 실수가 있고 되풀이 될 수도 있지만 말이다. 인생은 그렇다 치고 이 책을 읽으면서 나를 매료시킨 강한 인상의 문장이 있어 소개한다.
수채화 붓질하듯 씨익 웃는 모습, 여운이 길게 남는다.
여기저기 속삭임은 감미로웠고 나지막한 웃음소리들은 물방울 터지는 소리 같았다.
다른 책을 읽은 후기에서도 소개했던 것 같은데 어린 시절 산골마을 외갓집 사랑채에 살 때 아이들과 한참 놀다가 많지 않은 마을의 집들에서 연기가 나고 놀던 아이들이 하나 둘씩 집으로 들어가는 시간이 있다. 저녁을 먹을 시간이고 엄마들이 부르는 소리에 하나둘씩 떠나고 동생과 나만 남는 날이 있었다. 장사를 나간 엄마가 돌아오지 않아 집으로 가봐야 어두컴컴한 방에서 이웃집 혹은 외갓집 안채의 음식냄새가 싫어 집으로 가지 못할 때다. 물론 집으로 가면 외할머니나 이모가 건너와 밥 먹으라는 이야기를 하겠지만 “절대 안채를 기웃거리지 마라.” 엄마의 엄명 또한 집으로 발걸음을 못하는 이유였다.
해질 녘에는 절대 낯선 길에서 헤매면 안 돼. 그러다 하늘 저켠부터 푸른색으로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가슴이 아프거든 가슴만 아픈 게 아냐. 왜 그렇게 눈물이 쏟아지는지 몰라. ~중략~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닌 그 시간, 주위는 푸른 어둠에 물들고, 쌉사름한 집 냄새는 어디선가 풍겨오고 그러면 그만 견딜 수 없을 만큼 돌아오고 싶어지거든. 거기가 어디든 달리고 달려서 마구 돌아오고 싶어지거든. 나는 끝내 지고 마는 거야·······. -본문 ‘슬픈 일몰의 아버지’ 중에서-
어린 시절 엄마가 오지 않아 나와 동생만 남겨졌던 그 시간, 어스름한 저녁의 그 시간을 우리말로 ‘땅거미가 진다.’하고 프랑스에서는 ‘개와 늑대의 시간(L'heure entre chien et loup)’이라고 한단다. 집에 있음에도 갈 곳이 없어 발길을 어디로 둘지 몰라 서성이던 그 시간, 무섭고 참 싫었다. 한 번은 마을입구의 둥구나무 아래서 어머님을 기다렸지만 캄캄한 밤이 되어서도 엄마는 오지 않았다. 그런데 엄마가 찾는 소리가 들렸다. “권식아! 권식아! 밥 먹어~.” 반가우면서도 갑자기 들린 엄마의 목소리가 무서웠다. 환청일까 봐서. 그럼에도 동생 손을 잡고 빠른 걸음으로 집으로 향했더니 분명 엄마였다. 울먹이며 집에 들어서는 데 엄마가 등짝을 때리며 “이놈아, 저녁이 되면 집으로 와야지 어디 갖다 오는 겨~.” 아팠지만 좋았다. 나도 밥을 먹는 시간이 있구나하며······. 엄마는 마을 입구 말고 앞산의 샛길을 통해 집으로 온 거였다. 다음부터는 엄마가 어느 길로 집에 올지 몰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날들이 많았고 “권식아! 밤 먹어. 어디갔다 이제 오는 겨~.”라는 소리가 들려지기를 기다려지기도 했다. 어른이 되어서도 땅거미 지는 시간, 혹은 개와 늑대의 시간에 유난히 쓸쓸함을 많이 탔다. 30대 후반에 장사익의 ‘삼식이’를 들으며 어머님을 그리워하기도 했다. 그 시간을 싫어하면서 조급한 마음이 되고는 한다.
노래의 가사에서 대체적으로 후렴부는 반복이다. 되새김이다. 이제는 없는 줄 알았다. 소설을 읽고 거기서 헤어 나오지 못해 어쩔 줄 몰라 하는 걸 말이다. 그래서 최근에 소설을 대 놓고 읽었는데 내가 방심한 거였다. 내 스스로 빠져 들며 그걸 즐기는 것인지 모르지만 이번 소설은 나를 또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만들었다. 가슴 저린 어린시절에 엄마까지 생각하며 크나큰 공허함에 빠졌다.
이 책 [모순]을 읽고 난 내감정이 잘 표현된 본문의 내용으로 내 후기를 마무리한다.
걸음은 자꾸 허방을 디뎠고, 눈길은 쓸쓸하게 텅 빈 허공을 헤매었다. 마음자리 어딘가에 커다란 구멍이 하나 생겨서 거기로 가을 창바람이 쉭쉭 드나들고 있었다. -본문 ‘선운사 도솔암 가는 길에’ 중에서-
November 9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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