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빛 비 -아사다 지로-
소녀의 흰 얼굴이, 분홍 스웨터가, 남색 스커트가, 안고 있는 꽃과 함께 범벅이 된다. 모두가 하나의 큰 꽃묶음 같다. 어지럽다. 그러나, 내리지 않으리라. 자랑스러웠다. 이것만은 소녀가 흉내 내지 못할, 자기 혼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인 것이다. -황순원의 소나기 중에서-
중학교시절의 국어교과서에 있었던 황순원의 [소나기]다. 나무위키에서는 이 소설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어느 가을날 한 줄기 소나기처럼 너무나 짧게 끝나버린 소년과 소녀의 안타깝고도 순수한 사랑을 그린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꼭 순정만화(순정만화(純情漫畵)는 대한민국에서 널리 쓰이는 한국 만화 장르의 명칭이다. '순정만화'의 명칭은 1950년대에 등장하였다. 대체로 주 작가층이 여성이다. 일본에서는 비슷한 뜻으로 '소녀만화(少女漫画 쇼조망가)'라는 표현이 사용된다.) 같다고나 할까?
아사다 지로의 [은빛 비] 또한 순정만화 같은 소설이다. 단 소나기는 중학생정도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면 은빛 비는 대상이 어른이라는 게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엄마 뭐 해?
방학이라서 엄마를 독점살 수 있으리라 믿었는데 놀아주지 않고 일한답시고 책만 붙들고 있는 내게 초등학교 4학년 딸아이가 물었다.
응-이거 [은빛 비]라는 소설책이야.
‘운빛 비’라는 어감이 좋았는지 이야기해달라고 조른다.
숙제도 못 봐주고 혼자만 놀게 하는 게 미안해서 읽고 있던 [달빛 방울](책에 있는 단편 소설 중 하나)의 줄거리를 딸아이에게 대충 이야기해줬다.
말끝마다 꼬치꼬치 따지기 좋아하는 딸이 조용해서 자나 보다 했는데 울고 있다.
엄마 그만해, 너무 슬퍼.
뭐가 그렇게 슬퍼?
딸의 의외의 반응에 의아해서 물었더니 그냥 슬프고 그 아저씨가 불쌍하단다. -역자의 후기 [맑고 순수한 사람들의 이야기] 중에서-
그리고 역자는 이 책을 어른들의 메르헨(동화)라는 표현을 썼다. 물론 어른들의 동화니 어린이들의 동화와는 다르게 19금 같은 내용이 빠질 수 없는 그런 소설들로 엮인 책이다.
8개의 단편으로 엮인 이 책을 읽으면서 눈물까지 흘리지는 않았지만 부대끼며 살아오면서 사회로부터, 혹은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또 혹은 내 스스로 만들어진 마음의 상처를 쓰다듬었다고나 할까.
이 책을 일고 여운을 음미하는 데 ‘사랑’이라는 단어가 맴돌았다. 이 단어를 떠 올리면 가장 먼저 아버지와 어머님이 생각난다. 아버지 살아생전에 ‘사랑한다’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지금생각하며 쑥스러워 그랬다고 변명 하고픈데 예전에는 ‘굳이 입으로 할 필요가 있어? 마음으로 전달하면 되는 거지.’라며 얼버무렸던 것 같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한참 뒤 표현을 하는 게 좋겠다는 걸 깨달았다. 용기를 내서 어머님께 처음으로 표현했던 날
“어머님 사랑해요.”
“그래, 그놈의 사랑이 뭔지...”
어머님은 사랑한다는 표현이 없어도 행동과 마음으로 보이면 된다고 했던 것 같다.
반복해서
“어머님 사랑해요.”라고 했을 때 보였던 반응이
“그래 나도.”
어머님은 여전히 사랑이라는 표현을 하기에 쑥스러우신 거다.
그리고 또 반복해서
“어머님 사랑해요.”라니
“그래, 감사하다.”
어머님이 쑥스러워 자신의 방식으로 한 표현이 감사였고 며칠 전에도 그러셨다.
책 후기를 정리하며 어머님과 사랑, ‘왠 뜬금없는 거냐?‘ 할 수 있겠지만 나이가 들면서 깊이 감춰진 순정만화 같은 순수한 마음을 더욱 더 되살리고 싶은 간절함 때문이다. 지금의 나이에 ’엄마‘와 ’사랑‘은 나에게 순정만화 같음이다.
책의 뒤표지에 있는 소개 글로 후기를 마친다.
‘영혼을 뒤흔드는 소리 없는 기적, 가슴을 울리는 시린 감동, 사랑의 순수로 빚어낸 눈물 한 방울!’
November 2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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