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은빛 비 -아사다 지로-

송삿갓 2024. 11. 2. 20:52

은빛 비 -아사다 지로-

 

소녀의 흰 얼굴이, 분홍 스웨터가, 남색 스커트가, 안고 있는 꽃과 함께 범벅이 된다. 모두가 하나의 큰 꽃묶음 같다. 어지럽다. 그러나, 내리지 않으리라. 자랑스러웠다. 이것만은 소녀가 흉내 내지 못할, 자기 혼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인 것이다. -황순원의 소나기 중에서-

 

중학교시절의 국어교과서에 있었던 황순원의 [소나기]. 나무위키에서는 이 소설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어느 가을날 한 줄기 소나기처럼 너무나 짧게 끝나버린 소년과 소녀의 안타깝고도 순수한 사랑을 그린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꼭 순정만화(순정만화(純情漫畵)는 대한민국에서 널리 쓰이는 한국 만화 장르의 명칭이다. '순정만화'의 명칭은 1950년대에 등장하였다. 대체로 주 작가층이 여성이다. 일본에서는 비슷한 뜻으로 '소녀만화(少女漫画 쇼조망가)'라는 표현이 사용된다.) 같다고나 할까?

 

아사다 지로의 [은빛 비] 또한 순정만화 같은 소설이다. 단 소나기는 중학생정도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면 은빛 비는 대상이 어른이라는 게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엄마 뭐 해?

방학이라서 엄마를 독점살 수 있으리라 믿었는데 놀아주지 않고 일한답시고 책만 붙들고 있는 내게 초등학교 4학년 딸아이가 물었다.

-이거 [은빛 비]라는 소설책이야.

운빛 비라는 어감이 좋았는지 이야기해달라고 조른다.

숙제도 못 봐주고 혼자만 놀게 하는 게 미안해서 읽고 있던 [달빛 방울](책에 있는 단편 소설 중 하나)의 줄거리를 딸아이에게 대충 이야기해줬다.

말끝마다 꼬치꼬치 따지기 좋아하는 딸이 조용해서 자나 보다 했는데 울고 있다.

엄마 그만해, 너무 슬퍼.

뭐가 그렇게 슬퍼?

딸의 의외의 반응에 의아해서 물었더니 그냥 슬프고 그 아저씨가 불쌍하단다. -역자의 후기 [맑고 순수한 사람들의 이야기] 중에서-

 

그리고 역자는 이 책을 어른들의 메르헨(동화)라는 표현을 썼다. 물론 어른들의 동화니 어린이들의 동화와는 다르게 19금 같은 내용이 빠질 수 없는 그런 소설들로 엮인 책이다.

 

8개의 단편으로 엮인 이 책을 읽으면서 눈물까지 흘리지는 않았지만 부대끼며 살아오면서 사회로부터, 혹은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또 혹은 내 스스로 만들어진 마음의 상처를 쓰다듬었다고나 할까.

 

이 책을 일고 여운을 음미하는 데 사랑이라는 단어가 맴돌았다. 이 단어를 떠 올리면 가장 먼저 아버지와 어머님이 생각난다. 아버지 살아생전에 사랑한다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지금생각하며 쑥스러워 그랬다고 변명 하고픈데 예전에는 굳이 입으로 할 필요가 있어? 마음으로 전달하면 되는 거지.’라며 얼버무렸던 것 같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한참 뒤 표현을 하는 게 좋겠다는 걸 깨달았다. 용기를 내서 어머님께 처음으로 표현했던 날

어머님 사랑해요.”

그래, 그놈의 사랑이 뭔지...”

어머님은 사랑한다는 표현이 없어도 행동과 마음으로 보이면 된다고 했던 것 같다.

 

반복해서

어머님 사랑해요.”라고 했을 때 보였던 반응이

그래 나도.”

어머님은 여전히 사랑이라는 표현을 하기에 쑥스러우신 거다.

 

그리고 또 반복해서

어머님 사랑해요.”라니

그래, 감사하다.”

어머님이 쑥스러워 자신의 방식으로 한 표현이 감사였고 며칠 전에도 그러셨다.

 

책 후기를 정리하며 어머님과 사랑, ‘왠 뜬금없는 거냐?‘ 할 수 있겠지만 나이가 들면서 깊이 감춰진 순정만화 같은 순수한 마음을 더욱 더 되살리고 싶은 간절함 때문이다. 지금의 나이에 엄마사랑은 나에게 순정만화 같음이다.

 

책의 뒤표지에 있는 소개 글로 후기를 마친다.

영혼을 뒤흔드는 소리 없는 기적, 가슴을 울리는 시린 감동, 사랑의 순수로 빚어낸 눈물 한 방울!’

 

November 2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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