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돌아온 외교장각 의궤와 외교관 이야기-유복렬

송삿갓 2025. 9. 10. 16:04

돌아온 외교장각 의궤와 외교관 이야기-유복렬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서 역사는 '만약에'라는 가정을 통해 인간의 자유의지와 선택이 역사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며, 특히 로마 역사의 여러 순간에 닥쳤던 결정적인 선택들이 어떻게 다른 결과를 가져왔을지를 질문하고 있습니다. -로마인의 이야기 소개 중에서-

 

하지만 역사에 '만약에'라는 가정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어떠한 의미를 둔다는 것에는 재미, 혹은 흥미적 관심거리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때 그렇게 했기에 지금 이런 결과를 가져왔다.'는 어떠한 원인이 있었는지 살펴보는 역사는 좋은 학습의 된다는 의견이다.

 

박병선 박사가 외규장각 의궤를 처음 발견했을 당시, 프랑스국립도서관은 이 물건들의 출처를 모른 채 중국도서로 분류해놓고 있었다. -본문 한 명의 위인중에서-

 

국립중앙박물관의 의궤전시실에는 펼쳐져 있어 내용을 직접 볼 수 있는 의궤가 있는가하면 표지를 볼 수 있는 곳도 있다. 표지의 전면부에 프랑스에서 붙였던 것으로 확실시 되는 두 장의 스티커가 있는데 누렇게 변색된 조그만 스티커에는 중국이라는 글자와 숫자가, 앞의 것보다는 조금 큰 타원형의 하얀색 스티커에는 한국이라는 글자와 숫자가 있다. 이는 도서의 분류와 관리번호로 보여 지는데 박병선 박사가 처음 발견했을 당시 중국도서로 분류되었던 게 누렇게 변한 중국이라는 글자가 들어간 스티커였고 타원형의 큰 것은 박병선 박사 발견 이후 한국도서로 분류되면서 붙인 것으로 추측이 된다. 이는 [돌아온 위규장각 의궤와 외교관 이야기]에서 조선 기록 분화의 상징, 의궤148(현종경릉산릉도감의궤())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이 스티커의 바뀌는 시점이 의궤가 한국으로 돌아오는 출발점으로 보여 진다.

 

박병선 박사가 베르사유 별관창고에서 한자로 쓰인 고서를 찾아냈기에 중국이라는 분류에서 한국이라는 스티커가 붙여질 수 있었고 그것을 시발점이 원인이 되어 결국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의 중요한 원인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 의궤가 한국으로 돌아오는 과정이 20년 걸렸다. 그 사이 한국이나 프랑스가 대통령이 바뀌고 관료들이 바뀌었는데 한국에서는 한 사람만이 그 20년을 바뀌지 않고 협상과 타협은 물론 프랑스에서 의궤가 떠나는 과정까지를 만들어낸 역사적 사실이 영원히 한국으로 돌아온 원인이 되었다는 것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시실이나 어느 국가기관의 설명에 그 주역의 이름이 표시된 것은 거의 없다. 물론 내가 알지 못하는 더 중요한 문서나 기록에 있을 수는 있지만 대체적으로는 당시의 대통령이나 한시적으로 관여를 했던 고위관료는 쉽게 알려져 있지만 20년 동안 어떠한 과정이 있었는지 어떠한 것 때문에 20년이나 걸려야 했는지, 왜 영구반환이 아니고 5년 자동갱신의 대여형식인지 알려주는 자료는 많지 않다. 그런 의미이서 이 책 [돌아온 위규장각 의궤와 외교관 이야기]는 협상과 타협이 어려울 수밖에 없는 이유와 어떻게 극복했는지 알려주는 중요한 역사적 사료이며 협상의 기술에 한 획을 그은 교과서이기도 하다.

 

이 협상의 가장 핵심적인 걸림 문제는 프랑스가 가지고 있는 [문화재 불가양 원칙]임을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약탈해간 문화재를 돌려주는 건 너무도 당연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많지만 그건 빼앗기 쪽에서의 일방적인 메아리 없는 주장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만일 그렇게 된다면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이나 영국의 대영박물관은 물론 세계 강국의 많은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문화재들이 대량 빠져나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문화재를 가지고 있는 나라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버티거나 무시하면 대책에 없는 현실이다.

 

본문에서도 한국을 지지하는 지한파(知韓派) 인사들까지도 이런 주장을 했다고 한다.

프랑스에서 문화재 반환이라는 문제는 국가의 사활을 건 중대 사안이며, 문화계 종사자들에게는 존재의 이유다. 한국 측의 정서적 접근은 이해하지난 그것은 프랑스의 국내 현실을 간과한 순진한 사고방식이다. -본문 돌파구를 찾아서 중에서-

 

제 아무리 인류공영이나 보편적가치 같은 이상주의를 주창하는 사람이라도 자국의 이익과 국내법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것은 모순이다. 그럴 프랑스인은 극히 드물 것이다. -본문 돌파구를 찾아서 중에서-

 

19994월 첫 번째 협상이 한국에서 열렸다고 한다. 당연히 한국과 프랑스가 협상테이블에 앉았다. 김영삼 대통령과 미테랑 대통령이 1993년 합의했던 교류와 대여라는 대전제의 출발과 등가등량의 교환해결방안을 이라는 협상의 언어는 영어였다. 하지만 첫 번째 협상의 끝은 프랑스 협상단의 대표인 살루아 의원의 불어로 불만을 토해내는 장면을 묘사했다. 그리고 저자는 한 참 뒤 협상의 중요성 중 하나는 언어로서 칼자루를 쥐고 있는 주제국의 언어를 사용하는 게 옳다며 프랑스어로 소통했다는 서술이 있다.

 

협상에 있어 상대국의 언어를 사용한다는 게 굴욕적일수도 있지만 내가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서는 3보 전진을 위한 2보 후퇴가 필요하다는 판단은 극적인 터닝 포인트가 되었을 것으로 이해가 되었다.

 

나는 이 책 [돌아온 외규장각 의궤와 외교관 이야기]를 출판 이듬해의 봄에 처음 접해 읽었다. 그리고 얼마 뒤 마음을 열고 세상으로 나아가다.’라는 저자가 서문을 썼던 도시의 애틀랜타여성문학인협회가 주최하는 출판기념회에서 저자를 처음 만난 그 날 또 한 번 읽었다. 이후 두 번을 더 읽었고 이번까지 다섯 번을 접했다. 이번은 송도국제기구도서관에서 [G 349.04 45]으로 분류된 책을 대출해서 읽었다. 굳이 분류번호를 기록하는 것은 박병선 박사가 프랑스에서 책을 찾았을 때 중국이었고 이어 한국으로 분류된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이 책을 읽고는 강화의 외규장각에 있는 의궤가 프랑스로 가서 어떤 과정을 통해 145년만에 다시 한국으로 오게 되었는지의 역사적 사실과 그를 위해 끈기 있게 20년 동안의 협상기술, 그리고 마지막으로 화려한 것으로만 보아왔던 외교관의 수고를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 모든 과정을 기록한 중요한 역사물로서도 이 책과 저자에 찬사를 보낸다.

 

September 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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