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 안녕하십니까?
아틀란타는 어제 비가 오더니 밤사이 조금 더 내리고
아침에는 잔뜩 흐려 있습니다.
벌써 시작 되어야 하는 꽃가루 엘러지가
자주 내리는 비 때문에 조금 늦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공고를 다녔는데
2학년 초 어느 날 집에 가서 책가방정리를 하는데
편지 한 통이 발견되었습니다.
연애편지 인가 하고 확인을 하니
같은 반 한 친구가 넣어준 편지 였습니다.
내용이 전부 기억나지는 않지만
눈 여겨 봤는데 좋은 친구 같다는 내용과 함께
청소년기의 방황과 그것을 헤어날 수 있는
친구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 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까지 깊이 생각도 안 했던 것이고
글씨체가 좋지 않아 글쓰기를 좋아하지 않았기에
누군가 하고 편지를 주고받는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멋있는 시도 내가 쓰면
개발새발로 쓰기 때문에 분위기를 망쳐버렸기 때문입니다.
암튼 그런 상황에서 편지를 받았고
생각을 많이 하게 되면서 못 쓰는 글로 답장을 시작한게
내가 글을 쓰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물론 중학교 다닐 때 좋아하는 여학생이 있어
글을 쓰기는 하였지만 메모 수준이고 주로 받는 입장이었지요.
그 덕분에 그 친구를 비롯한 6명이 친해졌고
의형제를 맺는 의식까지 하고 영원히 변치말자며 六松이라 이름도 지었고
그들과 정말 형제처럼 지내며
사회적 삶의 본질에 대해 자연스레 깨우쳐 가고
더 많은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책은 당시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군 장교로 근무하던 삼촌의 영향으로 좋은 책을 많이 접할 수 있었죠.
읽은 책을 수첩에 기록하여 소지하고 있다가
담임선생님의 가방검사에서
“사비에라”라고 하는 성인용 책을 읽었다 하여 경고를 받기도 했답니다.
대학 때 연애하면서 졸필로 연애편지를 쓰기도 하였지만
내용에 비해서 너무 졸필이다 보니 감동을 많이 못 줬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아느냐구요?
그 편지들 상대가 지금의 아내이고 지금도 보관하고 있거든요.
졸필을 벗어나기 위해
타자를 배웠고 그 덕분에 타이핑 실력 늘어 글을 더 많이 썼었고
컴퓨터를 전공했던 나에게
컴퓨터는 내 졸필을 감추기에는 환상이었습니다.
원래 글쓰기 보다는 책읽기를 좋아합니다.
연애할 때 지금의 아내에게 이야기 하였던 것이 생각납니다.
“40이 넘으면 집을 떠나 조그만 암자에서 책을 읽으며 살아갈 거다.”
조금 우습죠? 그만큼 책을 좋아하였고
혼자 있기를 좋아 하였다는 것입니다.
아내가 내 청혼을 받아들일 때 조건이
“40이 넘으면 집 떠난다는 것을 취소하라“였습니다.
그런다고 했었지만 요새는 농반진반으로
“가출한다”고 하면 그러라고 합니다.
지금은 조금 덜 하지만 한 때는 정말 책 많이 사고 읽었습니다.
지금 소장하고 있는 책 중에서 반은 읽고 반은 아낍니다.
아마도 송가의 특성이 엿보이는 대목입니다.
조금 길어졌네요.
오늘은 여기까지 하렵니다.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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