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메 이야기

중학교 졸업

송삿갓 2010. 3. 31. 22:24

아틀란타는 조금 늦은 감이 있게 봄 꽃이 만발하고 있습니다.

노랗게 핀 개나리에 벚꽃이 밝은 햇살과 어우러져

온 세상이 꽃으로 느껴질 정도로 화사합니다.

 

간간이 솔바람에 실려 오는 꽃 냄새가

약간은 역겨운 것도 있지만 그래도 꽃향기라 생각하니 견딜만 하구요.

 

중학교 입학해서 1학년 때 물상 선생님이 담임 이셨는데

제가 지금도 생활 철학의 문구

“남도 나같이, 끝도 처음같이”라는 급훈을 매년 쓰시는 분이었습니다.

3월 이맘 때 반장을 비롯한 반 학생 몇 명과 함께

지금의 구리시 어디쯤에 진달래 꽃을 따러 갔었습니다.

매년 진달래를 따서 술을 담가 드셨던 것으로 생각 되는데

한양대학교가 바라보이던 산동네 중간에 있는 집에 갔던 기억이

선생님 댁을 방문한 최초의 기억입니다.

 

중학교 졸업식 날 졸업식을 일찍 끝내고

저는 늘 일상대로 철가방을 들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오랜 동안 중국식당 주방에서 일을 하시다

초등학교 5학년 여름 무렵에 학교 근처에 식당을 내시고

방학 때나 바쁜 날은 가게에서 일을 하며

철가방을 들고 배달을 하였답니다.

 

나와 밑으로 동생 둘까지는

입학식과 졸업식 날 매우 바쁩니다.

그런거 있잖아요.

예전에 졸업식과 입학식 때 특별 음식으로 자장면 먹는거......

그 날이 가게가 매우 바쁜 날로 일손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우리 형제들은 중학생만 되면 도와야 했고 내 중학교 졸업식 날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졸업식에 간단하게 참여하고 바쁜 일손을 돕느라

주방과 배달을 번갈아 하였습니다.

조금 늦은 시간 배달했던 그릇들을 찾아 돌아오는데

길 건너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던 수학선생님이 불렀습니다.

“야! 송 짱, 이리와바”

부모님의 중화요리집 덕분이 우리 형제 모두는 별명이 “송 짱”이었습니다.

요새는 “짱”이라는 게 싸움 잘하는 대장이라고 불린다는데

그 때 우리가 불리던 짱은 자장면 집의 짱이었습니다.

 

선생님이 불러 그 쪽을 보는데

여학생 두 명과 같이 저를 불렀습니다.

그 중 한 여학생은 같은 동네에 사는 학생으로

얼굴이 하얗고 예쁘장하게 생겨 남학생들에게 인기가 좋았고

같은 동네이기에 집에 자주 놀러가서 어울렸고

성인이 되어서도 좋은 친구로 연락을 하던 문희라는 학생이었고

 

다른 한 여학생은 나에게 최초로 쪽지를 보내

공부를 열심히 하라던 여학생 이었습니다.

그녀가 수학을 잘 하고파서 선생님께 자주 갔었는데

수학에 재능을 보였던 나에게 물으라며 소개를 해 줬던 학생입니다.

물론 성인들 같은 연애는 아니었지만

책을 빌려 주면 모서리에 메모를 하여 돌려주어

그것을 읽고 또 읽고 하며 가슴에 새겨 두었던 학생으로

누군가 나에게 첫 사랑이 누구냐고 물으면

그녀가 떠오르는 옥영이라는 학생입니다.

 

철가방을 들고 선생님 앞으로 갔더니

“송짱! 너 문희가 좋아 옥영이가 좋아?”

수학을 잘 해 평상시 나를 귀엽게 생각하던 선생님이

나와 그녀들과의 관계를 아는 선생님의 짖굳은 질문이었죠.

그러면서 하시는 말

“너희들 어른이 되어서도 친하게 지내라”

 

그렇지만 그러지 못하고 있습니다.

문희라는 같은 동네에 살던 친구는 성인이 되어서도

가끔은 연락하고 살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연락이 끊겼고

옥영이라는 여학생은 고등학교 3학년 크리스마스 때 카드가 왔었습니다.

공부는 잘 하고 있느냐? 그리고 대학은 어디로 갈거냐?

자기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 바로 대학은 못 갈 것 같고

동생들의 학업을 위해서 일을 해야 할 것 같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렇게 중학교를 마치고 고등학교 진학을 하게 되었는데

제가 왜 공업고등학교, 그것도 야간을 갔어야 했는지는 의문이 많습니다.

나는 인문계 고등학교 가기를 원했고

그래서 평범하게 대학가기를 바랬는데

3학년 담임선생님과 아버지의 합작에 의해 원서는 공고 야간으로 확정하였습니다.

 

담임선생님은 영어 선생님 이셨는데

영어를 비롯한 언어 과목을 못하던 내가

대학을 가기에 무리였다고 생각 하였는지

아니면 어느 학교로 진학하던 진학률에 따라

선생님의 능력으로 평가되던 상황의 피해자였는지 모릅니다.

 

설에 의하면 중학교 3학년 때 집단 수업거부 사태가 있었는데

그 당시 주모자들의 언저리에서 얼쩡거리던 내가

처벌을 받지 않은 댓가의 암묵이었다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확인은 할 수 없었답니다.

 

그렇게 해서 진학한 곳이

야간 공업고등학교 전자과였고

남들이 수업 끝나고 집으로 가는 시간에 학교에 가는

그야말로 “야간학생”이 되었습니다.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첫 등교를 하던 날 살벌 그 자체였습니다.

항상 2번을 하던 제가 3학년 끝날 무렵에 하루가 다르게 커거

반에 중간 정도의 키가 되었지만

마음속에는 항상 작은 키의 학생이라 자각 되었던 내가

5살도 더 많고 이미 사회 물을 먹어 어른스러운 학생들과의 만남은 충격 이었습니다.

공간과 시간이 되면 담배를 피우고

술 이야기와 여자이야기 등은 나에게는 생소하면서도 충격이었습니다.

 

그렇게 고등학교 생활을 시작하였답니다.

오늘도 여기서 줄여야 하겠네요.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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