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인간의 조건 -앙드레 말로-

송삿갓 2015. 7. 3. 02:02

인간의 조건

-앙드레 말로-

 

저기요, 앙드레 말로에 대해 이야기 해 줄 수 있어요?”

앙드레 말로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한 길벗에게 부탁하였다.

인간의 조건 읽어 봤어요?”

“????”

사실 나는 앙드레 말로나 인간의 조건에 대해 거의 모른다.

? 인간의 조건은 대학시절 필독서인데?”

“?????”

 

대학시절 나의 독서에 대한 일침이 되었다.

그런데 앙드레 말로에 대해 알고 싶다.

최근에 유럽 작가의 책들을 읽으면서

미국의 현대 작가와는 다른 깊이와 지식의 넓이에 흠뻑 빠져 들었기에

그리고 길벗과 조금 더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물었던 것인데

대학시절의 필독서, 청소년 권장도서라는 일격에 KO 당한 꼴이 되었다.

 

나의 탐구열과 오기에 불을 지핀 것이다.

인간의 조건을 읽고 나면 앙드레 말로에 대해 설명하죠라는 말도 있었기에

개미가 길을 찾듯 더듬이를 가동시켜 두 권의 책을 샀다.

바로 인간의 조건앙드레 말로 평전이다.

그리고 길벗에게 자랑스럽게 너스레를 떨었다.

나 인간의 족건 샀는데요

누가 번역 한 거예요?”

“????”

 

아차! 거기까지 판단하지 못하고 가장 최근에 번역한 것을 골랐는데

누가 번역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가장 최근에 번역한 거예요.”

그럼 아마 잘 골랐을 거예요.

나중에 번역하는 사람은 앞에 번역한 것을 참고하기도 하니까

그리곤 누가 번역한 것이 좋은데 라고 말했는데 잊어버렸다.

그 책을 다시 살 일도 없고 어차피 책 읽는 수준으론 다 이해 할 거니까?

그게 내 자만이요 만용이었다.

그렇게 이 인간의 조건을 맞이하게 되었다.

 

1927321, 030,

소설의 시작이다,

첸은 살인을 하기위해 한 방에 침입해

모기장을 쳐들고 찌를까 아니면 모기장 위로 찌를까를 고민한다,

그리고 결국 사람을 죽인다.

소설에서는 첸의 살인에 대해서 이렇게 전개하였다.

 

첸은 살인의 세계로 뛰어 들어갔다.

이제는 거기서 빠져나올 수는 없으리라.

필사적인 열정으로,

마치 감옥에 들어가듯이 테러리스트의 생활 속으로 뛰어 들어간 것이다.

10년도 못 가서 그는 붙들려 고문을 당하든지 사형을 당할 것이다.

그때까지 첸은 결단과 죽음의 세계 속에서

집요하고도 단호하게 살아갈 것이다.

지금까지는 그가 숭배한 사상 때문에 살아왔지만

이번에는 바로 그 사상 때문에 죽게 될 것이다.

 

소설의 주 무대는 상하이에서 국민당과 공산당, 이른바 국·공 합작으로

군벌과 맞서기 위해 혁명을 하는 과정의 이야기다.

노동자연맹군 소속의 첸과 기요는 혁명군의 무장을 위해서

무기상을 살해하고 그 계약서를 빼앗아

배 위에 있는 무기를 탈취하는 과정이 이야기의 시작이다.

 

결국 무기를 탈취하고 상하이 내부에 군벌을 거의 소멸 시켰을 무렵

장제스의 국민당은 노동자연맹군에 무기를 넘겨 달라 요청하지만

무기를 넘기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을 굳힌

첸은 장을 살해하겠다며 폭탄을 들고 장의 차에 뛰어 들어 죽는다.

하지만 장은 죽지 않고 막강한 군사력과 경제력으로

공산당 소속의 극진세력을 숙청하기 시작하여

기요, 카토프 등 주요 인물들을 체포한다.

 

체포한 노동자연맹군을 한 명씩 끌어 내

증기기관차의 화덕에 넣어 불태워 죽이는 과정에서

기요는 가지고 있던 청산가리를 먹고 자살한다.

하지만 카토프는 죽음의 차례를 기다리며 두려워하는 다른 동료

둘에게 자신의 청산가리를 넘겨주고 자신은 기관차 화덕에 화형으로 죽는다,

 

앙드레 말로는 이 소설을 통해 인간의 조건을 어떻게 정의하려 했을까?

첸이 장을 테러하려 했던 첫 시도에서 실패 후

다음 기회를 노리며 동지 에멜리크를 찾아 숨겨 줄 것을 요청하지만

아픈 아이를 핑계로 거부하며 돌려보낸다.

그리곤 이를 내내 후회하는 사이 카토프가 찾아와 첸의 행방을 물으며

대화하는 과정에서 에멜리크는

가장 뼈저린 고통은 거기에 따르는 고독감 속에 있다.’고 한다.

 

또한 기요가 체포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아버지 지조르는

페랄을 찾아가 기요의 구명을 요청할 때 이런 대화를 나눈다.

,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한갓 관념을 위해 바친다는 것은

인간의 독특한 어리석음이라고 생각치 않으세요?“라는 페랄의 물음에

지조르는 이렇게 대답한다.

사람이, 글쎄 뭐라고 할까요?

··· 사람이 인간으로서의 조건을 참을 수 있기란

쉽지 않은 일일 테죠···.“

그리고 지조르는 자기 아들 기요가 품고 있는 사상을 생각한다.

 

이해타산을 초월해 그것을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칠 수 있는

모든 사상은 인간의 조건을 토대로 존엄성 위에 세움으로써

그것을 정당화 하려는 욕구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정말이지 알듯 말듯 하면서 생각을 멈출 수가 없다.

첸은 자기 목숨을 내걸고 장제스를 해치우겠다고 다짐을 한 것에

첸이 하는 말을 듣고 이런 생각과 대화를 한다.

 

친구가 이렇게 죽음에 홀린 듯이 끌려들어 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지금 어둠 속에서 거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첸은

정신 나간 사람처럼 건성으로 얘길 하고 있었다.

마치 그 말소리는 그 자신의 고뇌와 다름없는 어둠의 힘으로써,

안타까움과 침묵과 피로의 더없이 강렬한 융합으로 끌려 나오는 소리 같았다.

그 일을 생각할 때 자네···, 불안한게 아닌가?”

아니, ···.” 그는 망설였다.

환희라는 말보다 더 강렬한 말을 쓰고 싶어.

뭐라고 해야 할지 적절한 말이 없군.

중국말에도 없어. ··· 완전한 안정이랄까 ···

일종의 ··· 뭐랄까? 모르겠다. 그보다 더 깊은 것은 하나밖에 없지.

인간에게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더욱 그것에 가까워지는···,

자넨 아편 경험이 있나?“

거의 없어.”

그럼 설명하기가 어려운 걸, 이를테면 ···

황홀경이라는 것에 더 가깝지.

그래, 하지만 더 짙고 깊은 거야. 가벼운 건 아냐.

아래로 아래로 잦아들어 가는 황홀경, 바로 그런 거야.“

어떤 하나의 관념이 그런 경지를 준단 말이지?“

그렇지, 나 자신의 죽음이 말이야

 

이렇게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살인과 죽음이라는 것에 대한 설명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고 불안해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기요가 체포되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죽음의 순서를 기다리다

청산가리를 손에 들고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 마음에서 불안을 느낀다.

그 부분을 소설에서는 이렇게 표현하였다.

그것은 죽음이 자기의식을 다시는 돌아올 수 없도록

반석처럼 짓눌려 버리는 그 순간에 대한 불안이었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첸, 기요, 카토프 모두 죽고나서

기요의 아내 메이는 투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지조르를 만나러 고베에 간다.

여전히 아편에 의지해 살고 있는 지조르와 메이가 이런 대화를 한다.

 

너도 알고 있겠지. '한 사람을 만들려면 아홉 달이 필요하지만

죽이는 데는 단 하루로 족하다하는 말을.

우리는 그걸 서로 뼈저리게 깨달은 셈이다.

그러나 메이, 한 인간을 완성하는 데는 아홉 달이 아니라

60년의 긴 세월이 필요한 거다.

60년간의 갖가지 희생과 의지와···

그 밖에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여러 가지가,

그런데 그 인간이 다 만들어졌을 때,

이미 유년기도 청년기도 다 지나가 버리고

정말로 그가 한 인간이 되었을 때,

그때는 이미 죽는 것밖에 남지 않는 거란다,“

 

둘은 짧은 만남 후 이별을 고하며

지조르가 두 손으로 메이의 두 빰을 잡고 키스를 한다.

그리고 소설은 끝을 맺는다.

 

결국 인간의 조건은 삶에 고통과 번뇌, 그리고 죽음에 대한

이해의 폭과 넓이와 관계가 있다는 것일까?

아니면 인간의 본성에 대한 사람의 자세 또는 인식에 근거한 것일까?

저자의 의도에 대해서는 많은 생각을 남기면서

읽는 것을 마치는 순간 나는 큰 부끄러움이 먼저 달려들었다.

책을 다 읽고도 이해하지 못가고 있는 내가,

책을 읽고 후기를 쓴다며 달려들었던 내가,

몇 권의 책을 읽고 글을 쓰겠다며 몇 자 끄적거렸던 내가,

누군가 나에게 글 참 잘 쓴다는 칭찬에 우쭐해 했던 내가,

습작에도 안 되는 어린 애들 장난 같은 행위였다는 것에

부끄러움에 고개가 절로 땅으로 떨어졌다.

 

소설의 첫 부분에 첸이 칼로 사람을 찔러 죽이는 장면을 회상해 본다.

첫 살인으로 사람을 찔렀을 때 죽어가는 사람의 삶과 죽음 경계에서

마지막으로 부르짖는 근육의 경련이 칼을 통해 첸의 팔에 전달되고

그 여운이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떨림이라는 것에 사로잡히며

고통과 번뇌를 거듭한다.

 

내가 이 책을 읽고 이해한 것을 반이라 이야기해도 지나친 것이며

살인 과정에서 느껴오는 것과 그 이후에

지식과 사람의 사고에 대한 방대하고 디테일하고 무한 한 것

그것을 글로 표현한 것에 대해

반도 이해하지 못한 내 육체와 사고에 주는 전율,

그 떨림의 여운이 지금까지 내가 경험했던, 아니 경험했었던 척 했던

그 어떤 것보다 강렬하고 나를 혼란과 부끄러움이라는

영원히 헤어 나올 수 없는 소용돌이 속에 가둬버렸다.

 

정신을 차려보려 빈 하늘을 바라보며 한 참이나 멍하게 있어야 했고

그것도 부족하여 현실의 소리를 들으며 우당탕거리며 설거지도 하였다.

그리곤 희망을 가졌다.

내가 범접할 수 없는 그래서 이룰 수 없을 것 같은 경지,

그것을 향해 달려보리라.

내 스스로도 만족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이 졸작이라고 비난해도

쉬지 않고 노력하며 글을 써 보리라.

바로 내가 다다라야할 목표가 설정된 것이다.

이 책보다 부족하다 할지라도 가다보면 비슷한 길을 갈 수는 있겠지.

 

내가 누구인가?

죽을 고비에서도 살아남지 않았던가?

이 같은 생각이 무모한 도전이라고 하더라도

나는 해 보리라는 다짐을 가져본다.

 

June 28,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