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송삿갓 2015. 7. 22. 20:26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이 소설은 나로 지칭되는 토니 웹스터의 이야기로

1부와 2부로 나뉘어 1부는 과거를 회상하는 글이고

2부는 나이가 들어 현재의 벌어지는 상황을 그리는 것으로

과거에 어떤 행동가 말, 그리고 글이 관련된 사람들의 삶이

어떤 영향을 받고 어떤 결과를 갖게 되었는지 풀어가는 이야기다.

소설의 첫 머리에


‘기억하게 되는 것은, 실제로 본 것과 똑같지는 않은 법이다’라며

자신이 현재 이전 그러니까 예전의 기억이

꼭 실제인 것만은 아니라는 문제점이 있음을 예고한다.

토니 웹스터, 앨릭스, 콜린스는

런던의 중심부에 있는 같은 학교에 다니면서

동지 의식에 시계의 앞면을 안쪽으로 찬다.

학교성적이 그렇고 그런 기존의 3인방과는 다른

에이드리언 핀이 전학을 와서 합류한다.

이 네 친구는 과학반 동급생인 롭슨의 자살로

죽음과 이성 관계에 대한 뭔가가 있음을 예고한다.


이 네 친구의 마지막 역사시간에 조 헌트 선생이 질문한다.

“역사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콜린스는,

“역사는 승자들의 거짓말입니다.”라도 대답한다.

왜냐고 묻는 선생의 질문에

“죽자고 반복하니까요.

우리는 역사가 트림하는 것으로 보고 도 보았고,

올해에도 또 보고 있습니다.”

여기에 가장 넷 중 똑똑한 에이드리언은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입니다.” 하는

파트리크 라그랑주의 말로 대답한다.

역사는 일부 누군가의 부정확한 기억과 충분하지 않은

기록을 근거로 확신처럼 만들어 지는 것이지만

그것 모두가 진실이 아니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 넷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평생의 우정을 약속했고,

토니 웹스터는 브리틀 대학,

에이드리언은 케임브리지 대학에 장학금을 받고 진학,

콜린은 서식스 대학에 진학,

앨릭스는 아버지의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후에 간간히 편지를 주고받기는 하지만

길이 다른 이들은 나이가 들면서 뜸해지다가

약속한 대로 평생 이어지지는 않는다.


나로 지칭되는 토니 웹스터는 같은 대학의 스페인어를 전공하며

시를 좋아하는 베로니카 메리 일리저버서 포드(줄여서 베로니카)와

연인관계가 된다.

사귄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방학의 어느 주말,

켄트라는 도시의 베로니카 집을 방문한다.

약간 수다스러우면서 과장되게 설명하는 베로니카의 아버지,

에이드리언과 같은 학교인 캠브리지에 다니는

베로니카의 오빠 잭은 심드렁 내지는 약간 무시하는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베로니카의 엄마 포드 부인은

토니에게 조금은 지나친 관심과 함께

“베로니카에게 너무 많은 것을 내주지 마”라는 말로 조언을 하지만

토니는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흘린다.

토니는 연인 베로니카를 세 친구에게 소개한다.

그날 베로니카는 에이드리언에게 관심을 보인다.

그 후 토니는 베로니카와 헤어지게 되고

베로니카의 어머니에게 위로의 편지를 받는다.

토니가 졸업반학년 중반을 넘겼을 무렵

에이드리언에게 베로니카과 사귀어도 되냐는 편지를 받고

친구 에이리언과 절교를 다짐한다.


졸업 후 영국을 떠나 집과 연락을 끊고

몇 년을 떠돌이 같은 생활을 하다 집으로 돌아 온 후

어머니 레게로부터 몇 통의 편지를 건네받는다.

‘토니에게’로 시작된 친구 앨릭스의 편지에는

‘에이드리언이 죽었다. 자살했어. 어머니께 전화 드렸더니

네 행방을 모르신다더라. 앨릭스’

그리고 앨릭스로부터 에이리언이 욕조에서 손목을 그었다는 소식을 접한다.

에이드리언은 대학원생 두 명과 함께 사는 집에서 화장실 문의 쪽지에

‘들어오지 말고 경찰에 전화할 것, 에이드리어’이라고 써서

욕실 문 밖에 붙인 후, 욕조에 물을 받았다.

문을 잠그고 뜨거운 물에 담근 채로 손목을 끊었고 피를 흘리다 죽었다.

죽은 그를 발견한 건 그로부터 하루하고도 반나절이 지나서였다.


토니는 에이드리언의 자살에 대해 이런 주장을 한다.

“우리는 충동적으로 결정 한 다음,

그 결정을 정당화할 노거의 하부구조를 세운다.

그런 후,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를 상식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친구 셋은 에이드리언의 첫 번째 기일에 만나 술을 하면서

해마다 기념식을 치를 것을 맹세하였지만 각자 다른 인생길로 향하기 시작한다.


토니는 마거릿이라는 여자와 만나 결혼하여

딸(수지)를 낳아 기르다 이혼을 하고

수지는 의사와 결혼하여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둔 엄마가 된다.

마거릿은 열 살 젊은 남자와 재혼을 하였지만 토니와 친분은 계속 유지한다.

하루 비닐창이 달려 있는 흰 편지 봉투를 받는다.

내용은 토니 앞으로 오백 파운드와 두 개의 ‘문서’가 남겨 졌다고 하는 편지다.


두 개의 문서 중 한 개는 베로니카의 엄마가 토니에게 쓴 편지다.

“토니, 나는 토니가 이 편지에 첨부한 것을 꼭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

에드리언은 토니 애기 할 땐 늘 애정을 담아 말했었지.

토니가 보면 재미있을지도 몰라.

옛날 일 때문에 가슴이 아플 수도 있고,

그리고 얼마 안 되는 액수이지만 토니 앞으로 남겼어.

토니는 이상하다고 생각할 법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어쨌건 그때 그 시절, 나와 우리 가족들이

토니에게 잘못 대했던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어.

앞으로 토니가 하는 모든 일이 잘되기를 저세상에 가서도 기원할게.

사라 포드 씀.


추신.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세상을 떠나기 전에 보낸

마지막 몇 달 동안 에이드리언은 행복했다고 생각해 ..“


그리고 두 번째 것은 포드 부인의 딸 그러니까 베로니카 소유로 돼 있었다.

그런 바로 친구 에이드리언의 일기장이었다.

베로니카의 연락처를 모르는 토니는

베로니카의 오빠인 잭을 통해 겨우 이메일 주소를 얻어

에이드리언의 일기장을 돌려 달라는 요청을 하지만 ‘피 묻은 돈?’이라는

딱 한 구절의 답신을 받는다.


그러다 결국 둘은 만난다.

만났을 때 에이리언의 일기장을 줄 수 있느냐는 토니의 질문에

태워버렸기에 줄 수 없다고 하자 이유를 물으니

다른 사람의 일기장을 읽는 것은 옳지 않다며 거부한다.

그리곤 편지봉투를 건네주고 떠난다.


편지는 토니가 에이드리언에게 보낸 것으로 이런 내용이다.

에이드리언에게, 아니, 에이드리언과 베로니카에게.

서로에게 한없이 빠져든 나머지 서로에게 해가 되는 일도

영원히 지속되길, 내가 너희를 소개해준 날을 저주하게 되길....

각자의 인간관계에 독처럼 작용하는 고통이 평생 이어지길,

사실 마음 한켠으론 너희 둘 사이에 아이가 생기길 바라고 있어.

이유인즉 내가 시간이 대대손손 이어지며 복수를 가한다는 걸

굳건히 믿는 인간이라 그래.

그 여자 어머니까지도 나에게 자기 딸을 경계하라 주의를 줬었지.

내가 너라면, ‘모친’에게 이런 사실들을 확인해볼걸?

······

중략

······

너희에게 계절 인사를 보낸다.

그리고 기원컨대 함께 기름 부음 받은 너희의 머리통에 산성비가 쏟아지기를.

토니


에드리언이 베로니카와 사귀어도 좋으냐는 편지에 대한

토니의 저주의 편지다.


토니는 어떻게 베로니카가 이 편지를 아직도 가지고 있을까하는 의문을 갖는다.

이후 토니와 베로니카는 다시 만나고 베로니카는 토니를 어디론가 데려간다.

거기에서 한 그룹의 사람을 만나고 한 트위드 차림의 남자가

베로니카에게 모자를 벗어 가슴에 얹고 인사를 하고 머리를 기대는 모습을 본다.

그들은 베로니카를 메리라 호칭한다.

“왜? 그 아이들이 당신을 메리라 부르는 거냐?”는 질문에

베로니카는 토니를 내리라 하고 혼자 떠나버린다.

그리고 일주일 토니는 고독과 혼란 속에 산다.

그 과정을 소설에서는 이렇게 쓰여있다.

‘그 후 일주일은 내 삶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고독했다.

더 이상 가슴 설레어 기다릴 만한 어떤 것도 남지 않은 듯 했다.

나는 머릿속에서 뚜렷하게 들려오는 두 사람의 목소리를 홀로 견뎠다.

‘토니 당신은 이제 혼자야’라는 마거릿의 목소리,

그리고 ‘아직도 전혀 감을 못 잡는구나. 그렇지?

넌 늘 그랬어. 앞으로도 그럴 거고’라는 베로니카의 목소리······

누가 말했던가? 살면 살수록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점점 사라져만 간다고.‘


그리고 토니는 베로니카에게 에이드리언을 일기를 찾겠다고 한 것이

베로니카를 자신이 괴롭힌 것으로 이해하고 사과한다.


베로니카가 뭔가 중요한 것을 보여주려고 했지만

자신의 이해와 목적만을 위해 이해하지 못했다고 하며

베로니카를 메리로 부르며 인사를 하던 소년을

에이드리언과 베로니카 사이에 낳은 아이로 생각하고

“너희 모자가 평온한 삶을 누리기를 바라며 도울 길이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 달라”는

편지를 보낸다.

하지만 베로니카는 의외의 답장을 보내며 답답해한다.

‘아직도 전혀 감을 못 잡는 구나. 그렇지? 넌 늘 그랬어.

앞으로도 그럴 거고, 그러니 그냥 포기하고 살지그래.‘

삶에서 인성의 깊이와 세월의 흐름은 비례하는 걸까? 이 책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인성의 깊이와 세월의 흐름은 비례하는 걸까?

소설에선 물론 그렇다.

그렇지 않다면, 스토리라고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실제 인생에선 어떨지 가금 궁금해질 때가 있다.


우리의 태도와 견해가 바뀌고,

새로운 습성과 기벽이 생기긴 하겠지만,

그건 뭔가 다른 것,

이를테면 장식에 가까운 것이다.

어쩌면 인성이란 다소 시간이 지나서,

즉 이십대에서 삼십대 사이에 정점에 이른다는 점만 빼면,

지성과 비슷할 지도 모른다.


결국은 실제 인생에서는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든다고 인성이 깊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또한, 삶에 있어서 내가 행한 행동이나 말이

다른 사람에 어떤 영향과 결과를 주는지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말이나 행동 내지는

하찮은 것 같은 편지 한 통이 한 사람,

아니 그 주변의 사람들에게까지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소설이다.


에이드리언은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선생의 질문에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입니다.”

하는 파파트리크 라그랑주의 말로 대답했던 것처럼

우리의 기억이 얼마나 정확하고 사실적이며

같은 것에 대한 다른 사람의 기억도 나와 같은 것일까?

우리는 내 자신의 기억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사람도 같은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에이드리언이 역사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이라는 말,

그 결과가 우리가 생각하지도 못하는 방향으로

한 사람의 삶의 바뀌는지를 예언하는 것이다.


베로니카의 엄마가

“베로니카에게 너무 많은 것을 내주지 마”라며 토니에게 했던 말,

토니는 에이드리언에 보냈던 저주의 편지에 그것을 언급하고

소설의 많은 부분에 그 말이 지배한다.

하지만 토니는 그것을 까맣게 잊고 산다.

하지만 소설의 결말은 그 말이 재앙의 근원이 되었음을 거부할 수 없다.


소설의 읽기를 끝내고 왜 소설의

제목이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였는지 의문을 가졌다.

하지만 원제가 《Sense of an End》,

즉 한글로는 ‘결말의 느낌’ 혹은 ‘예감’이라는 번역자의 글을 읽고서야

저자가 주려는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나를 비롯하여 많은 남자들,

자신의 삶과 행동, 말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도 모르고

이후에 그 영향에 대해서 감을 못 잡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게 많은 실수를 하고 실수인지조차도 모르고 산다.

신이 남성을 그렇게 만들었다고 변명하고 실을 정도로······

하지만 그 변명으로 모든 것이 용서될 수 있을까?

나쁜 말 보다는 좋은 말로,

많은 약속을 하기 보다는 꼭 실천할 수 있는 몇 가지의 약속으로

내 주장과 생각이 옳고 나만 바르기 보다는

나와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마음으로

늦었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지금부터라도······

June 5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