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 있어도 웃는 눈 - 이미옥 장편동화
아빠, 엄마, 새록, 초록
IMF를 겪었던 생각이 난다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고
많은 사람들이 집을 잃었다
환율은 갑자기 거의 세 배로 뛰어
어렵다고 아우성치는 상황에서도
국가를 위한다며 집집마다 장롱에 넣어 두었던
아이들 돌 반지며, 회사에서 받은 근속 기념품 등
모을 수 있는 금붙이는 모두 들고 나와
은행에서 줄을 서며 값싸게 팔았다
여기서 새록, 초록 두 형제는
서울의 남쪽, 강변의 고층아파트에서 살던 집을 팔고
서울의 북쪽, 변두리에 있는
길이 Y자 모양의 두 갈래로 갈라지는 곳에
삼각형으로 지어진 3층짜리 연립주택의 반 지하에 이사를 한다
아이들은 이를 ‘누가 우리 집을 땅 속에서 묻어 놔지?“라는 표현을 하였다.
창피하고 갑갑해 하면서 예전에 살던 아파트로
다시 이사를 가자고 하는 아이들에게 엄마는 이렇게 타이른다.
“세상은 한 권의 책이라는 말이 있어,
누가 이 말을 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엄마는 이 말이 참 좋아.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우린 지금 아파트가 아닌,
새롭고 낯선 동네라는 책을 읽고 있는 거야,
아빠는 뉴질랜드라는 책을 만들고 있는 거구,
늘 넓은 아파트와 좋은 환경만 읽으면 재미없잖아,
편식하면 안 되는 것처럼 세상을 골고루 읽어 보렴,
엄마 말 알아듣겠니?“
어쩌면 이 책의 전부를 알려주는 엄마의 타이름이다.
엄마의 이런 타이름에 새록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런 생각을 한다.
‘엄마 말을 듣고 보이 세상을 넓게 보는 방법 중 하나가
세상을 골고루 읽어 보는 것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뽀족이 피자 연립에서의
책장이 빨리 넘어가길 바라는 마음만 간절하다.‘
은행을 다니던 아빠는 명예퇴직을 당하고
어릴절부터 꿈이라는 양치기가 되기 위해 뉴질랜드로 공부하러 떠났고
IMF로 달러가 비싸져 아빠의 학비를 돕기 위해 아파트를 팔고
변두리 반지하로 이사를 한 가족의 이야기,
두 가지가 공존한다.
하나는 늦었지만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과감한 결단을 내린 아빠,
하지만 한 편으로는 어려운 환경에서 무책임하게 가족을 외면하는 아빠 등이다.
두 아이의 엄마 직업은 카피라이터다.
이 직업도 자신이 하고 싶어 하던 꿈의 직업이라 선택했다.
그래서 밤낮없이 열심히 뛰며 자신의 꿈을 이루듯 열심히 일을 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불만이 많다.
다른 엄마들처럼 자신들이 학교에서 돌아 왔을 때
엄마가 집에서 맛있는 거 해 놓고 기다려 주기를 바라고
저녁에는 엄마가 해 주는 따스한 밥을 먹고
무섭지 않게 저녁을 맞이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엄마는 자신의 일로 휴일조차고 일을 해야 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서울 변두리의 소박한 인심이 오히려 아이들을 따스하게 만든다.
아주 작은 양철로 만든 건물에 옛날 종을 갖춘 보잘 것 없는 교회지만
목사는 교인들과 함께 뚝방에서 직접 키운 콩과 땅콩으로
두부를 만들어 교인은 물론 실직자나 어려운 사람들에게 공짜로 제공하고
아이들이 사는 연립의 3층에 사는 아이스크림 회사의
빙설 대마왕으로 불리는 손이 파란 트럭운전사는
한 달에 한 번씩 동네에서 아이들은 물론 주변사람들에게
아이스크림을 공짜로 준다.
아마도 ‘가만 있어도 웃는 눈’의 제목은
소박하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 목사와 트럭운전사를
보고 지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훈훈한 마음의 소유자들이다.
아빠는 행복하다고 하지만 아이들과 가족이 함께 하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하고
엄마는 열심히 일해서 승진까지 하지만 회사가 부도나는 바람에 실직자가 된다.
그래서 광고촬영차 뉴질랜드로 가려했던 계획은 취소되고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가족은 재회하지 못하고 만다.
마지막은 수술한 남편을 위해 뉴질랜드로 떠나는 엄마,
아이들이 함께 갈 수 없어 제주도에 있는 할아버지·할머니 집으로 보내지는 아이들,
어쩌면 IMF시절 흔히 볼 수 있었던 가정이다.
소설이 나온 시점도 IMF에서 막 탈출하는 시기 였던 것을 감안하면
당시에는 많은 아이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당시 새록이·초록이 나이인 초등학교 3, 5학년 아이들이
이런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을까?
이야기의 전개나 표현 또한 아이들의 눈높이라기보다는
어른이 아이 같은 눈으로 바라보며 표현한 것이 많다고 하면
내가 아이들의 수준과 실력을 너무 무시하는 것이 될까?
책을 읽는 내내 많은 생각을 하였다.
내가 직접 겪었던 사실적인 이야기였기에 그랬을 것이다.
내가 어린 아이가 된 것 같은 마음으로
또 기억의 한 켠을 차지하고 있던 옛 이야기의 회상을 하며
재미있게 참 잘 읽었다.
August 12,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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