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여행 105일째, 2015년 10월 3(토) 애틀랜타 흐림/비
어제부터 일요일인 내일까지 애틀랜타에 비가 많이 온다고
홍수와 허리케인 주의보가 내렸다고 했잖아
그래서 오늘 토요일은 골프를 할 수 있을지 말지
아침에 일어나 날씨보고 결정해야겠다고 하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이상하리만치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다른 날보다 두 시간 정도 늦게 일어나도 된다는 것 때문인지
아니면 한동안 있었던 휴일전날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습성 때문인지
모르지만 암튼 잠을 많이 설쳤다
아침에 일어나니 비가 오더라고
‘골프는 글렀구나’ 하고 같이하는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보내니
11시까지 비가 온다는 이야기야, 기다려 보자는 이야기지
기다렸지, 그런데 내가 보는 일기예보에는 하루 종일 비
9시 가까이 돼서 ‘오늘은 쉬겠습니다’라는 메시지로 집에서 있기로 했어
그리고 간단한 아침을 먹고 운동을 하는데
정말 10시 30분 쯤 되니까 비가 그치는 거야
그리곤 운동이 끝나는 12시가 되어서도 비가내리지 않아
몸이 근질근질, 하지만 내가 아는 일기예보를 믿었어
2시부터 다시 큰 비가 내린다고 했거든
점심으로 오믈랫을 만들어 먹고 목욕을 마쳤는데도
그런데 비가 오지 않는 거야
보슬비가 조금씩 내리기는 하지만 골프를 못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
하지만 어쩌겠어 이미 늦었는 걸
덕분에 책은 말이 읽은 편이라 것으로 위안을 삼고 있는데
며칠 전부터 시작된 여기 지역 ‘ROTC 장학기금마련골프대회’의
소식이 쉬지 않고 카톡을 통해 들어온다
ROTC는 내 인생진로를 가장 많이 바꾸게 된 것 중의 하나다
내가 ROTC가 된 해는 어쩌면 한국 근대사의 몇 안 되는 사건인
5.18 광주민주항쟁(내가 대학 다닐 때는 다른 명칭이 있었는데)이 일어난
대학 3학년, 1980년이지
원래 3월에 학기가 시작이잖아
그런데 ROTC 합격생들은 한 달 전인 2월 1일부터 훈련을 시작한다
한국의 육·해·공 등의 3군 사관학교도 입학식 한 달 전에 입교해서
훈련을 받는데 ROTC도 마찬가지야
그 때 호칭이 있었는데 잊어버렸다
그 훈련이 끝나고 3월 2일 입단식을 마친 후 ROTC 단복에 명찰을 단다
정식 대한민국 장교후보생이 되는 거지
내가 학교의 이념서클 회원이었는데
ROTC가 된 시점에 회장선출에서 내가 회장이 된 거야
그런데 공교롭게도 첫 주에 ROTC 내에서 동기를 대표할 간부를 뽑는데
거기서도 우리말로 S4(꼭 무슨 F4 같다), 그러니까 물자담당 간부가 되었다
그러면서 이념서클 회장은 그만 두어야 한다는 거야
당연히 그렇다면 ROTC 간부를 못하겠다고 했지
하지만 명령이라고 안 되고 서클 회장을 그만두라는 거야
그래서 서클창립이래 가장 단명인 7일 회장이었지
그렇게 ROTC를 하면서 무슨 직책이 떠나질 않았어
물론 그 이전에 내가 회장이라는 것을 해 본 것은
학교 밖에서 있었던 독서모임의 회장이었는데
그것은 설립할 당시 2학년이었는데 나와 한 친구 빼고 전부 1학년
그래서 내가 회장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거지
ROTC를 하다가 졸업하면서 육군 장교인 소위로 임관하는데
바로 부대로 가는 것이 아니라 병과학교라는 곳을 가서 4개월 훈련받거든
거기서도 6명의 간부가 있었는데 또 간부를 맡았지
군을 마치고 회사에 들어가 1년 반 정도 일하다 다른 회사로 갔는데
거기서도 회사 내 ROTC 모임을 만들면서 회장이 되서
회사를 그만 둘 무렵까지 10년을 훨씬 넘게 하는 바람에
다른 사람들이 “독재 장기집권”이라며 놀리기도 했단다
물론 ROTC 전체 모임에서 또 뭔가 간부를 계속 했어
그러다 지치고 힘들어 도피하듯 미국으로 오면서
거의 은둔생활을 하다시피 하면서 ROTC와 거리를 두었지
애틀랜타에 ROTC모임이 있음에도 나타나지 않은거야
그렇게 8년을 살았다
그러다 꼭 7년 전 이맘 때 쯤 "ROTC장학기금골프대회“에 참석했어
참 어이없다고 해야 하는 건지 아님 운명이라 해야하는 건지
골프대회 참석 후 2달 뒤 회장선출에서 또 회장이 된 거야
여기 모임도 모르고 또 누가 된다며 거절했지만
모르면 모르는 대로 누가 되면 누가 되는 대로 하라며
선배들이 떠맡기는 데 빠져나갈 방법이 없더라고
회장하는 2년은 두 말 할 것도 없이 골프대회는 참석해야 하고
회장을 마친 뒤에도 일정금액의 장학금을 내기도 하고
해마다 빠지지 않고 대회에 참석했다
ROTCian으로 살면서 나름대로 지켜온 하나의 원칙이 있다
선배와 개인적으로 식사할 때는 내가 먼저 식대를 낸다 하지 않고
후배와 식사할 때는 비즈니스를 아닌 경우 절대 후배가 내지 않게 한다
‘선배에게 존경을!, 동기에게 우정을, 후배에게 사랑을!’이
전 세계 ROTCian들의 모토다
일반사람들이 ROTC를 지칭할 때 그냥 'RT'라고도 하는데
그것을 싫어 것도 나름 ROTC의 자부심이라는 것이
학창시절에 세뇌되어 있기 때문에
내 나름의 선·후배 간의 원칙이나 모토, 일반사람들의 지칭에 대한
기준을 지키는 것이 당연시 되어 있다
하지만 그 기준이 처음으로 올 해 무너졌다
선배의 집을 공사해 주고 아주 작은 금액이지만
이러 저러한 이유로 부부가 같이 공사비 잔금을 지불하지 않는다
이건 선배에게 존경을 후배에게 사랑이 아니라는
조금은 고집스러우리만치 우직한 내 생각이 지배하면서
만일 그 선배부부를 만나면 다툴 것 같아
여기 ROTC 모임에 나가지 않은 것도 몇 개월이 되었고
올 장학기금마련골프대회는 아예 생각지도 않았다
사정을 모르는 후배나 선배들은 “얼굴 한 번 보자”고 하지만
참석은 물론 기부도 하지 않는 해가 되었다
때로는 ‘내가 지나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지만
쉽게 바뀌지가 않는다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난 절대 그렇지 않겠다’고
내일을 비가 덜 와서 걸을 수 있으면 좋겠다
오늘도 무지 좋은 하루······
'천일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천일여행 108일째, 2015년 10월 6(화) 애틀랜타 흐림/맑음 (0) | 2015.10.07 |
---|---|
천일여행 107일째, 2015년 10월 5(월) 애틀랜타 흐림 (0) | 2015.10.06 |
천일여행 104일째, 2015년 10월 2(금) 애틀랜타 흐림/비 (0) | 2015.10.03 |
천일여행 103일째, 2015년 10월 1(목) 애틀랜타 흐림 (0) | 2015.10.02 |
천일여행 102일째, 2015년 9월 30일(수) 애틀랜타 맑음 (0) | 2015.10.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