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 여행

천일여행 103일째, 2015년 10월 1(목) 애틀랜타 흐림

송삿갓 2015. 10. 2. 08:58

천일여행 103일째, 2015101() 애틀랜타 흐림

 

오늘이 며칠 이래유~?”

? 8월 열아흐레, 대보름 나흘 지났잖어~”그거 말구유~, 양력으로

? 시월초하루

벌써 그렇게 되었유~?”

그랴, 세월 빠르지~”

나이가 드는가뷰, 날짜 가는 게 가물가물 해유~”

그렇지?”올은 가을이 빨리 가겄네유~?”

? 그렇지? 그나저나 첫서리 내리기 전에 고추밭 엎어야 하는디~”

 

50대 중반인 내 나이 여덟에

지금의 내 나이보다 적었을 것 같은

두 노인부부의 대화는 이랬었다

 

오늘이 101일 그러니까 시골의 노인 식으로 하면 시월 초하루

내가 태어난 시골

내가 학교에 들어간 시골

충청도 산골에서는 어른들이 날짜를 그렇게 세었다

초하루, 초이틀, 초사흘, 초나흘, 초닷새

초엿새, 초이레, 초여드레, 초아흐레, 열흘

2, 7일장 하면서 닷새마다 돌아오는 장은

월말이 31일까지 있으면

27일 장 다음이 초이틀에 있으니 6일 만에 돌아오는 거고

월말이 28일인 2월은 사흘 만에 장이 돌아오는 거다

옛 어른들은 주로 음력으로 날짜를 세면서

양력은 장날을 기준으로 세었던 것 같다

 

어제까지 9월이던 달력을 한 장 넘긴다

시월초하루니까

 

요즘 자꾸 부주의하고 조그만 일에도 날카로워진다

심하게 짜증이 나거나 분노 하는 것은 아닌데

예전에는 그냥 참거나 삵일 수 있었던 것에

날카로운 반응을 일으킨다

그래서 조심하고 가능한 마음을 편히 먹자고 다짐하면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고 하는데

가장 큰 피해가 커피 머그컵으로 간다

자주 떨어뜨려 여기 저기 찌그러지는 것은 예사고

커피가 들어있는 상태로 가방에 넣어 쏟아져 적시는 일이 다반사다

가방에 넣을 때는 꼭 ‘Close'를 하면서 주의 함에도

도시락을 넣어 다니는 가방은 안 쪽이 커피로 얼룩져있다

오늘 아침만 해도 출근할 때 가방에 넣으면서 ‘Close'로 한 것 같았다

주차장까지 걸어가 가방을 차에 넣는데

다른 날에 비해 유난히 커피냄새가 많이 나기에

오늘은 커피향이 참 좋네하는 순간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가방 안을 들여다보는 데 아뿔사!’ 커피가 모두 쏟아져

머그컵이 조각배가 된 것이 아닌가?

순간적으로 나 자신에 대해 짜증이 나려 했지만 그러면 뭐하랴

가방 미안해, 머그컵이 항해하고 싶은가보다

난 커피를 못 마시게 되었잖아

웃는 것이 상책 아닌가?

 

출발하면서 읊조리는 나의 사명선언서

나는 나를 사랑하고

나를 행복하고 즐거운 하루가 되도록 한다···“

 

아침부터 날씨가 흐리다

일기예보에는 오후부터 토요일까지 바가 온다고 하는데

그러면 야외운동도 물 건너 간 건가?

이번 주는 햇빛목욕을 많이 못하네

그래도 다행인 것이 어제 하루라도 한 것이 어디냐

 

이렇게 자꾸 긍정적으로 그리고 편안하게 생각하려

무단 애를 쓰는 것 같다

아직도 갈 길이 멀기는 하지만 벌써 103일이 되었잖아

 

산악인이 산행을 하다보면 자신과 싸워야 하는 순간이 온다고 하잖아

내가 끝까지 잘 갈 수 있을까?’하는 생각말이야

난 그런 것은 아니지만 뭔가 부족한 것이 있어

그 부족을 채우지 못해 밀려오는 몸이 울부짖는 것은 아닐까?

 

오늘은 오랜만에 일해야 하는 현장에 견적을 내러 가야 한다

원래는 파트너가 가야하는데 두 가지 이유로 인해 내가 가게 되었다

첫 번째는 파트너가 무진장 바쁜 척을 한다

물론 바쁘기는 하지만 한 군데 견적을 못하러 갈 정도는 아닌데 그런다

그것은 바로 두 번째 이유이기도 한 손님이 한국인이라는 거다

우리 손님에 한국인은 1%도 되지 않는다

고작해야 1년에 몇 건 정도니 극소수에 불과한데

한국인 손님과 일을 잘 마무리한 적이 거의 드물다

한국인들은 믿고 맡기는 것이 아니고

다른 여러 곳 견적을 받아보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우리에게 요청한다

 

한국인 손님들은 누구의 소개로 일을 하게 되니까

자신에게 특별한 대접을 바란다

물론 소개한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특별한 대접은 한다

우리가 하는 특별한 대접이란 공사를 하는 동안

나 혹은 파트너가 현장에 있는거다

그러면 일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지고 결과가 다르다

물론 그러면 안 되는 거지만 일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

하지만 한국인 손님이 원하는 특별한 대접이란

질 좋은 것을 싼 가격이다

우리가 지키는 원칙 하나가

개인 손님에게 빌더들과 절대 비슷한 가격을 주지 않는 것과

안면이 있다고 마구 덤핑하지 않는거다

그래서 한국인 손님은 다른 곳을 소개하려는 편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일을 시작하면 거기서부터 문제가 생긴다

원하는 것을 수시로 바꿔가며 일을 여러 번 하게 하는 것은 물론

일을 마치고 나면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가격을 깍으려한다

그러니 내 파트너는 어글리 코리언이라는 말을 서슴치 않고 한다

그러면 내가 나도 코리언하면, 파트너는 넌 아메리칸하며 응수한다

 

파트너가 가지 않으려 하는 두 번째 숨은 이유가 바로

어글리 코리언을 상대하고 싶지 않은 거다

만일 소개하는 모든 것을 거절하면 이상한 뒷말들을 한다

쉽게 하는 말 배가 불렀다

정말 내가 듣기 싫어하는 말이고 들어야할 이유가 없는 말이다

모두 거절할 수 없어 최소한의 일을 하는데 늘 걱정이 앞선다

이번 일은 어떤 문제가 있으려나

아무런 문제가 없으면 참 좋겠다

 

오전에 견적을 위한 측정

점심 모임, 그리고 이후에 운동에 이어

오후 늦게 잔디를 깍았더니 몸에 조금 무리가 온 것 같다

저녁을 먹는데 자꾸 몸이 처진다

오늘은 조금 더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할 것 같다

 

그렇게 시월초하루 천일여행의 103일째를 보낸다

오늘도 무지 좋은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