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메 이야기

목련의 추억

송삿갓 2010. 4. 5. 22:38

형님!

아틀란타 날씨는 갑자기 더워졌습니다.

낮 최고 온도가 80도를 넘으니

평년의 4월말 날씨가 한 달 빨리 왔다고 합니다.

지난 겨울이 춥고 길더니 봄을 느낄 여유도 없이

그냥 여름으로 직행하는 것은 아닌가 할 정도가 아닌가 할 정도입니다.

 

그리고 조지아는 이번 주 술렁입니다.

바고 어거스타에서 있는 마스터즈 골프 때문인데

골프장이 아틀란타에서 2시간 거리에 있는데도

대부분 여기 공항을 통해 가야하고

어거스타에 숙박비가 비싼 관계로 아틀란타에서 숙박을 하고

어거스타에 가는 사람이 많아서 그렇다고 합니다.

 

따스해진 날씨 덕분에

꽃들이 자태를 마음껏 뿜어내고 있습니다.

여기저기에 피어 있는 자목련을 보며

한국에 많이 있는 목련을 떠 올리곤 합니다.

 

중학교 때 나에게 쪽지로 응원을 하며

마음 한 쪽에 크게 자리 하였던 작은 옥영이라는 이름의 여학생이

고등학교 내내 연락이 없다가

고3 크리스마스 때 카드를 보내 왔씁니다.

물론 고등학교를 어디로 진학하였는지 알고 있었고

같은 동네 살던 친구를 통해 간간히 소식은 전해 듣기도 하였지만

만나거나 연락은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 해 보면 왜 그랬는지 이해가 잘 가지 않았지만

아마도 성장한 이후에 만나야 한다는 다짐이었던 것 같습니다.

크리스마스 카드에는 짧은 인사와 대학 진학에 대해 물었고

당시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전기공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던 나는

즉각 답장을 보냈습니다.

 

예비고사는 이미 치루었고

성적에 따라 결정은 하겠지만 희망하는 학교와 장래에 대해 보냈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꼭 원하는 대학에 가라고 하며

자신은 가정 형편 때문에 대학을 진학할 수 없을 것 같고

동생들 학업을 위해 일을 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몇 번 더 주고 받았는데

4월 초에 있는 편지에 자신의 집 앞에 핀 목련에 대해 이야기 하였습니다.

어느 날 일어났더니 백목련이 활짝 피어

4월이 왔음을 알게 되었다며

애틋하다는 표현으로 만나고 싶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하였습니다.

내가 대학에 입학하였고 당연히 만날 수 있었지만

대학 1학년 초에 나는 인문계 고등학생들에게 뒤진 학업을 쫓아가느라

학교 근처에서 하숙을 하면서 정신 차릴 겨를도 없었기에 시간을 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백목련이 피어 기분은 좋지만

얼마 지나지 않으면 꽃이 지기 시작하면 추하게 되고

작열하는 태양이 오는 여름이 오는데

자신은 그 여름을 가장 좋아 한다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그 편지 이후 목련이 피고 지는 모습을 보면 문득 그녀가 떠오르곤 합니다.

그게 내가 간직하고 있는 목련과 이어져 있는 제대로 연애도 해 보지 못한

첫사랑의 아련한 추억입니다.

 

그녀와는 딱 한 번더 만났습니다.

1학년 기말 고사가 끝나고

이미 장마가 시작되어 비가 억수같이 오던 1978년 6월 25일 일요일,

작정을 하고 그녀의 주소를 가지고 무작정 찾아 나섰습니다.

주소도 잊어 버리지 않는 역삼동 706번지,

지금은 아파트와 건물들로 꽊 차있는 그동네

당시에는 여기저기 밭과 논, 도랑이 있는 허허 벌판이었습니다.

 

듬성듬성 있는 집들 중 어느 집이 706번지 인지 몰라

비오는 벌판길을 빠져가며 이리저리 헤매다

밭 일을 하고 지나가시는 아주머니에게 물으니

한 곳을 가리키며 그 집일 거라고 알려 주었답니다.

방향을 잡고 가까이 가는데 밭 한 가운데

덩그라니 있는 조그만 집 앞에

문지기처럼 있는 목련 나무가 그녀의 집이라는 것을 생각하며 걸었습니다.

 

집 가까이 가는데 한 숙녀가 뛰어 나오더군요.

비가 오는 벌판을 무심코 바라보고 있는데

다가오는 사람이 있어 나 인 것으로 직감이 오더라더군요.

 

중학교 졸업식날 철가방을 들로 길거리에서 만남 이후

거의 3년 4개월 만에 만남 이었습니다.

할 말을 잊고 한 참을 걸어서야

홀딱 젖은 상태로 자장면 집에 둘이 앉을 수 있었습니다.

몇 시간을 점심도 먹지 못하고 빗길을 헤메였더니

배가 몹시 고파 밥 좀 먹자고 부탁했더니 그리로 인도하였습니다.

 

같이 늦은 점심을 먹으며 이야기를 하고

뉘엿뉘엿 해가 지는 저녁에 집에 데려다 주는 것으로 그날의 만남을 끝냈습니다.

집에 돌아온 나는 지치고 힘든 몸에 며칠 동안 열병을 앓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다시 그녀를 찾아갔지만

집에는 누나는 일 하러 갔다며 중학생 쯤 되는 동생 혼자 있었습니다.

그래서 준비한 선물을 전달해 달라며

“공부 열심히 하라”고 하였더니

“형이 뭔데 공부하라”느냐며 반감을 보였습니다.

 

그리곤 이후 만나지 못했습니다.

편지로 더 찾아오지 말라는 부탁을 받았고

나중에 더 어른이 되면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였지만

그 약속은 이루어 지지 않았답니다.

 

다른 친구를 통해 전문대학에 진학을 하였고

그래서 그 학교를 찾아가 볼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고 30년도 더 지난 지금도

목련이 피면 그 때 추억장이 살짝 열렸다 닫히곤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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