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 여행

천일여행 238일째, 2016년 2월 13일(토) 애틀랜타/맑음, 영하

송삿갓 2016. 2. 14. 11:40

천일여행 238일째, 2016213() 애틀랜타/맑음, 영하

 

올해는 주말에 날씨가 추워 티타임이 늦어지는 바람에

뜻하지 않게 주말 아침 집에서 늦장부리는 날이 많아졌다.

오늘도 아침 최저는 30도 이하로 영하의 날씨고 최고도 40에 머문다는 예보와 함께

티타임도 1시 샷건으로 바뀌어 이래저래 12시 가까이 집에서 보내야 했다.

늦어짐에 따라 침대에서 뒹구는 시간도 길어지기는 하지만

8시만 넘기면 옆구리가 쑤셔 더 누워있지 못하고 활동을 시작한다.

아침에 토스트한 빵에 에스프레소 한 잔 타서 햇살이 강하게 드는 식탁에 앉아

늘어짐을 즐기며 먹고 마시고 음악을 듣는다.

오늘 같이 더 늦어지고 햇살이 좋은 날은 덜 닦인 창의 물 흐른 자국이나

로봇 청소기가 닫지 않는 구석에 쌓인 먼지

화장실 바닥에 구르는 잔털이 유난히 거슬리게 보인다.

게을러 진 것 같은 내가 마땅치 않다는 투로 이것저것 하기 시작한다.

색깔 있는 빨래를 돌려 건조대에 널고 하얀 빨래는 내일이나 해야지 하며

운동을 마치고 화장실에서 씻는데 바깥쪽 샤워커튼의 아래쪽에 물 자국이 보인다.

미루려고 했던 하얀 빨래와 물 자국 있는 샤워커튼까지 세탁기에 넣고 빤다.

 

오늘은 5시에 매월 한 번씩 있는 북클럽모임이 있는 날이다.

하지만 1시 샷건으로 시작하는 골프가 빨리 끝나도 5시 이전엔 끝날 수가 없다.

내가 발표하는 날이라 늦으면 안 되지만 식사를 먼저 하기에

30분 정도 늦겠다는 메시지를 보내지만 그도 확실하지가 않다.

 

집안일을 끝내고 11시를 조금 넘겨 집을 나선다.

오늘 저녁에 ROTC 모임이 있어 모임 장소에 시집을 전달하기 위해

조금 일찍 집을 나서게 된 것이다.

식당에 책을 Drop 했는데 시간적 여유가 있어 기다리는 사람이 없으면

머리를 자르고 가겠다는 마음으로 이발소로 방향을 잡았다.

다행이 마무리를 하고 있는 사람이 있어 조금 기다리다 이발을 마치고

골프장에 도착하니 거의 예정했던 시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원래는 점심으로 핫도그를 먹기로 하였지만 사람이 없을 것 이라는 예상으로

준비를 하지 못했다 하여 바나나와 오렌지 한 개씩 들고 연습장으로 향한다.

우리는 샷건의 가장 선두 팀이라 앞에서 지연되는 사람이 없고

뒤에서 따라 오는 팀이 워나 빠르게 진행하여 쫓기듯 서둘러야 했다.

덕분에 18홀을 마치는데 3시간 30분 조금 넘어 끝낼 수 있었고

샤워를 마쳤는데도 모임에 10분밖에 늦지 않아 함께 식사하고 모임을 시작하였다.

내가 쓴 단편 극한상황을 가지고 발표를 하고 소감과 토론을 하였다.

 

대부분의 회원들이 왜 불행의 연속으로 소설을 마쳤냐?’는 질문이다.

세상은 상대적 불행만 겪다가 죽는 사람이 많은데

그렇게 소외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고

내가 주장하는 파이의 법칙에 세상에는 행복총량의 법칙이 있는데

우리가 현재 누리는 행복이 그런 사람들이 겪는 불행의 대가라는 주장을 펼쳤다.

처절한 불행의 연속을 겪지 않았거나 이유도 없이 갑자기 덥지는 불행이 없었던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나락의 끝을 이야기 하고 싶었고

내가 쓴 단편에 대해 평가나 소감을 듣고 싶었는데 여러 가지 좋은 조언을 받았다.

특히 내가 남성이기에 여자의 심리묘사 같은 것이 부족했다는 이야기에 느끼는 것이 많았다.

 

교수 출신의 한 분이 저자에게 강의를 듣는 것을 직강이라 하여 영광으로 생각하는데

그동안 다른 사람들의 장·단편 만으로 하다 회원이 쓴 단편으로 저자가 직접참여

이야기하여 큰 영광이라는 찬사를 들었을 때 우쭐해지는 마음까지 들었다.

 

저녁 모임을 마치고 출발하면서 자고 있을 아해에게

나 모임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이라는 메시지를 보내니 바로 전화가 왔다.

자는 것을 내가 깨운 것 같은 미안함과 놀라움이 있기도 하였지만 반가움이 훨씬 컸다.

그리 먼 길은 아니지만 밤길에 Highway을 혼자 달리지 않아서 좋고

특히 아해의 목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들뜨면서 직접 만난 것 같은 기쁨

잠을 못 자게 해서 미안해야 하는데 미안하지 못하는 이기적인 내 마음은 어쩔 수 없는 건가?

친절하게도 집에 도착하는 순간까지 내 푸념과 한탄, 심술을 들어주는 마음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집에서 내려다보이는 큰 도로는 늦은 토요일 저녁인데도 꽉 막혀서 더디게 움직이고

건너편 호텔의 입구에는 차들이 줄지어 있고 안내원의 손 신호에 따라 멈춘 차에선

끊임없이 사람들이 내리고 발렛 파킹을 위해서 유니폼을 입은 젊은 친구들이 바쁘게 뛴다.

저 많은 차들, 사람들은 이 밤중에 무엇 때문에 저리 많을까?

각자 뭔가 일이 있겠지?

나는 자야 하는데······

아해도 잘 자, Good night!


오늘도 무지 좋은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