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 여행

천일여행 239일째, 2016년 2월 14일(일) 애틀랜타/맑음, 영하

송삿갓 2016. 2. 15. 10:16

천일여행 239일째, 2016214() 애틀랜타/맑음, 영하

 

생각해 보니 집 앞의 큰 도로가 어제 저녁이나 오늘 하루 종일 막힌 것이

오늘이 발렌타인데이라서 그랬던 것 같다.

나에게는 예년까지 어제나 오늘 같은 날 꽃집에 가서 배달을 돕느라

바쁘게 보냈을 텐데 올 해는 자체적으로 알아 한다기에 신경을 아예 끊고 있었던 거다.

2016년부터는 내가 거의 관여하지 않기로 하기로 했었고

꽃집 형수님은 늘 미안했다며 이제는 더 이상 신세 지고 싶지 않다고는 하였지만

내가 콘도에 혼자 나와 살면서 꽃집에 조금 소홀하게 한 것이 서운하셨던 것도 갔다.

내 컴퓨터회사를 통해 꽃집의 출렁이는 매출과 경비에 대한 버퍼링 역할을 했었는데

혼자가 되면서 얽히고설킨 비즈니스들 덕분에 곤욕을 치룬 터라

차일피일 미루며 흘렀던 과거를 정리하고자 그리고 앞으로도 가볍게 하고픈 마음에

궁리를 한다는 것이 형수님에게 소홀하게 보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고 부족한 손길에 돕겠다는 것을 일언지하에 거절하는 것에 어떻게 할 도리가 없어

뒤로 한 발 물러나 있겠다고 한 것이 발렌타인데이 인 것조차 잊게 만들어 조금은 미안하다.

큰 도로가 일요일임에도 하루 종일 막혀 있음에도 이유를 모르고 있다가

건너편 호텔 앞이 많은 차로 엉켜있는 모습이 어제에 이어 오늘도 계속되는 것을 보는

저녁때가 돼서야 눈치를 채다니 쯔쯔......

 

오늘도 날씨가 춥다며 10시 경에 코스 상황을 알려 준다는 메일을 보내고는

11시를 훌쩍 넘겨서도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12시를 조금 넘겨 아해와 서로 식사 잘 하라는 통화를 마치고 메일을 보니

어제와 같이 1시에 샷건이라 하여 가는 것을 포기하였다.

떡국으로 점심을 먹고는 동네 큰 도로를 따라 한 시간 조금 넘게 걸었다.

걸으러 나가니 옷 속을 파고드는 차가운 바람에 오늘 골프 안 간걸 잘 했어라는

내 자신에 대한 위로를 하며 걷는데 한 식당 앞의 조그만 분수대에 흘러내리는 물이

파이프 오르간 같이 길고 짧게 고드름이 되어 인위적으로 만든 얼음 조각같이 되었다.

추위를 달래보려는 의도도 있고 운동을 조금 더 하겠다는 생각으로

스마트폰을 셋업하고 지금까지 한 번도 걷지 않은 코스를 빠르게 걸으며 코스를 기록했다.

 

스마트폰의 음악을 듣는 헤드폰을 통해 1마일을 지날 때마다 거리와 속도를 알려주니

내가 원하는 운동량을 채우기 위해서는 얼마나 더 걸어야 하는 계산이 되어

속도와 코스를 생각하며 걸었고 마쳤을 때는 제법 빠른 속도였기에 제법 먼 거리를 걸었다.

샤워를 마치고 쉬려니 허벅지가 뻐근하고 몸도 나른해져 30분 정도 낮잠까지 즐겼다.

 

옥수수를 넣어 놓은 깡통식품 보관 서랍에 꽁치 통조림이 한 개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오래되어 먹을 수 없을 것으로 생각되어 찍혀있는 날짜를 보니 1년도 더 남았다.

묵은 김치에 졸여 먹었으면 더 좋았으련만 남은 게 없어 지난 번 새로 사서 익힌 김치에

꽁치만을 건져 지금까지 한 번도 해 먹어 보지 않은 꽁치김치조림을 만들었다.

김과 며칠 전 먹다 남은 어묵국을 다시 끓여 저녁을 먹었다.

후식을 생각한 게 있어 저녁밥을 아주 조금 먹고는 인절미 4조각을 굽듯이

프라이팬에 올리고 작은 불로 노릇노릇하게 익히니 차져서 훌륭한 디저트가 되었다.

지난 번 수리한 만년필 찾으러 갔다가 엉겁결에 산 에스프레소 기계 때문에

요즘 새로운 커피 맛을 즐기는 것에 푹 빠졌다.

지금까지 일반 커피머신을 통해 마시던 것과는 절차와 향내가 많이 다르다.

어차피 같은 그라인딩 기계를 사용하니까 내리기 전 향기는 다를 수가 없겠지만

종이 필터위에 툭툭 털어 넣던 것과는 다르게 쇠로 된 필터 컵에 갈아진 커피를 넣고

파이프 담배에 꾹꾹 눌러 다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Tamper로 커피를 누르는 멋이며

손잡이가 길게 달린 필터 홀더를 보일러 아울렛에 걸쳐 오른쪽으로 힘 있게 돌려 조여져 가는

느낌은 클레식을 벗어나 품위가 있는 것 같은 착각?

이어져 기계가 부르르 떨며 기름을 짜듯 컵으로 떨어지는 소리와 커피향은

아직 잎에 대지도 않았음에도 코를 통해 폐 깊숙이 파고들며 커피 속으로 풍덩 빠진 것 같다.

오늘 저녁은 머신을 작동 시키고 설거지를 하느라 커피가 넘쳤는데

그 조차도 멋으로 느껴지니 얼마나 푹 빠져 버린 것인가?

원래 머신은 나 보다는 아해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앞뒤 재지 않고 샀던 것인데

덕분에 내가 멋와 여유를 부리고 있으니 고마우면서도 혼자 누리는 가슴이 먹먹해 진다.

나중에 아해를 위해 갈고 내려 예쁜 컵에 담아 줄 날이 기다려진다.

조금 모자란 듯하게 먹었던 저녁에 인절미와 에스프레소로 채우고 나니 늘어진다.

이렇게 오늘도 하루가 간다.

 

오늘도 무지 좋은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