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메 이야기

고등학교 생활의 시작

송삿갓 2010. 4. 22. 21:51

아틀란타는 많이는 아니지만 비가내렸습니다.

지난 10 여일동안 대지를 달구며 그 열기에 거침없이 자라던 잔디와

갓 돋아난 연녹색의 나무 잎이 물을 머금고 그 색깔을 더욱 선명하게 합니다.

아마도 조금씩 잦아들던 꽃가루도 흐르는 빗물에 섞여 자신의 존재가 묻혀감에

아쉬워 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지난 토요일과 일요일 연 이틀

아버지학교에서 봉사를 하였더니

어제 또 다시 몸과 마음이 붕 뜬듯 약간의 고통을 수반한 하루를 보냈습니다.

다행이 어제 저녁을 잘 잔 덕분인지 오늘 아침에 하품이 나면서

흐린 날씨와 함께 찾아 온 찌뿌등함에 사지를 비틀게 합니다.

 

아내에서 사랑표현을 하고 아이들과 많은 대화를 하며

축복기도를 매일 해 주면서 가정의 평화를 하나님께 간구하라고 하면서

과연 내가 그런가 하는 자조 섞인 한 숨과 함께

여기서 더 어쩌지 말고 이대로라도 열심히 살자는 다짐도 하며 아버지학교를 끝냈습니다.

 

다시 타임머신을 타고 고등학교로 돌아가 보도록 하지요.

공고에 야간......

중학교와는 분위기가 땀판 이었습니다.

“예전에는 우리 학교학생들이 다른 학교학생들을 때리고 사고를 쳤지만

지금은 오히려 맞고 다니며 사고를 수습하는 학교가 되었으니

학부모님들은 걱정하지 말라“는 학교장의 입학식 훈시로 첫 학기를 시작한 2일째 인가

수업 전에 하는 담임 조회시간에 “어제 몇 번 버스타고 오면서 뒷자리에 앉았다

어느 고등학생들하고 시비한 학생 나와”라는 것을 필두로 살벌 그 자체 였습니다.

 

그도 당연한 것이 정상적인 학년 과정을 거친 학생이 절반 조금 넘고

나머지는 사회생활과 함께 5살도 더 넘는 학생들이 많았으니

중학교 다닐 때 무서운 고등학생들보다 더 난폭함이 교실에 흘렀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그래도 조금 더 엘리트라고 자부하는 전자과 이었기에

다른 반에 비해 덜 하다는 것이 위안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중학교 다닐 때 만년 2번을 하던 키가 중학교 3학년 2학기부터

고등학교 입학 때까지 대나무처럼 자란 탓에 거의 중간 정도가 되어

자리도 맨 앞자리가 아닌 중간 정도에 자리하게 된 것도 위안의 하나였을 겁니다.

 

첫 월말고사 후 성적을 받아들고 답답하였습니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가서 대학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기를 바랐던 내 자신의 성적이

중학교 때와 별반 다르지 않게 나온 석차에 내 스스로 실망하였다고 하는 게 옳을 겁니다.

학과목의 대부분은 내가 좋아 했던 수학과 과학 그리고 기술과 관련 되었는데

그래서 수업 듣는 것도 그런대로 재미가 있었는데 성적의 결과에 많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부탁을 하여 지금의 컴퓨터학원처럼 많던

R-TV학원에 등록하고 시립도서실에 드나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 나이에 기특한 생각을 스스로 하였는지 모르지만

새벽에 도시락 싸 들고 학원에 가고 끝나면 도서실에 가서

콩나물 몇 개 빠져 있는 국 하나 시켜 도시락 먹고

공부하다 시간 되면 학교로 가서 수업 끝나 집에 가면 10시 넘는 생활......

 

그 루트를 매일 돌며 생활하다 같은 반 학생이 넣어 준 편지 사건으로

몇 명이 친하게 지내게 되며 친구가 되었습니다.

내 생활의 패턴에는 크게 변화가 없었지만 6명의 친구 중 한 명의 생일이라도 있는 날에는

아침부터 모여 떠들고 샴페인을 곁들여 파티를 하면서 보내다 향수를 뿌리고

학교로 가는 소극적인 탈선도 경험하였습니다.

 

가끔 주말에 배낭과 악기를 들러 메고 들에 나가

우리 스스로 제작한 앰프와 함께

각자 좋아하는 악기를 연주하며 보내며 6명이 끈끈한 관계를 맺었습니다.

그 중 한 명이 중학교 때부터 같은 반에 짝도 했었던 친구인데

친 형제처럼 지내는 요즘 단어의 베프였습니다.

 

우리는 덩치가 그리 크지도 않았고 또한 무섭게 생기지도 않았지만

워낙 끈끈하게 보내는 데에다

한 사람이라도 어려움이 생기거나 혹여나 시비 거리가 생기도

6명 모두가 합심하는 덕분에 다른 학생들과 큰 마찰이 없었고

나름대로의 영역을 확보하게 되어 저는 편안하게 고등학교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공고이다 보니 과목의 70% 가까이 전공이고

거기에 체육이나 교련을 빼면 일반과목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기에

대학 갈 생각 보다는 어디 좋은 공장에 취업하는 진로를 잡았습니다.

조금이라도 환경이 좋은 취업을 위해 자격증 취득은 필수 조건이 있었지만

자격증이라 하면 무엇이던 욕심내서 도전하였습니다.

 

내 전공과 관련 있는 분야는 물론 관련이 없어도 응시 할 수 있는 자격만 되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달려들었습니다.

자격증을 강조한 아버지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목표를 삼고 도전하는 것을

매우 즐겼던 것 같았습니다.

 

수학과 과학을 좋아하고 기술 과목을 즐기던 저에게는

그야말로 적성에 딱 맞아 떨어져 자격증에 도전한다는 것은

당시에 최고의 즐거움이었답니다.

 

오늘도 여기에서 마치려 합니다.

조석의 온도차가 심한 계절입니다.

건강에 조심하시기 바라며 이만 줄입니다.

'그리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 형제들  (0) 2010.04.30
고등학교 졸업  (0) 2010.04.27
오금동에서의 6평의 작은집  (0) 2010.04.09
어머니  (0) 2010.04.05
목련의 추억  (0) 2010.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