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니 밤사이 비가 냈렸는지 잔디가 촉촉이 젖어 있었습니다.
어제는 오랜만에 집 앞 나무들을 손질하였습니다.
자라면서 영화나 TV에서 보아왔던 높은 담장이 있는 2층집에
아래로 갈수록 조금씩 큰 원을 만들며 잘 가꾸어진 향나무에
잘 깎아 융단처럼 깔려진 잔디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징검다리처럼 놓여져있는 육각형의 돌판과
그 중간에 금붕어 몇 마리가 한가로이 노니는 연못,
조금 더 내려가면 다정한 연인을 기다리는 듯 다소곳이 자리 잡은 조그만 그네...
그런 정원을 보며 나는 언제나 저런 집에 살아 보려나 했던 것이
먼 타국까지 옮겨와 담장이 없고 연못이나 그네도 없는
그냥 평평한 잔디에 뒤뜰의 조그만 크릭이있고
집 주위를 돌아가며 있는 몇 그루의 정원수가 있는
예전의 TV에서 보던 집과 많이 다른 집이지만
그런대로 만족하고 감사해 하며 살고 있는 집...
오랜만에 더벅머리처럼 자란 나무들을 손질하고 있는 사이
잔디 깍는 사람들이 전쟁터를 진군하듯 후딱 잔디를 깍고 지나갔고
오늘 아침 촉촉한 물을 머금은 잔디와 손질 된 나무들을 보며
단정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였습니다.
아침에 출근하여 하루일 대충 정리하고 나자
마음은 타임머신을 타고 25년 전으로 돌아 날아갑니다.
고등학교 1학년을 다니면서 대학 진학은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내 자신이 대학에 대한 막연한 동경은 있었지만
학교 커리큘럼이 대학진학과 동 떨어져 있었고
대학진학이 많지 않았기에 그냥 강 건너 물 보듯
그리고 크게 의욕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말 경 국가에서 기술의 발달이 필요하다 하여
공대에서 의무적으로 몇 %는 공고의 동일계 학과 졸업생을 받아들여야 하는
동일계 전형 대학진학 제도를 만들었고 제 1년 선배들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 제도에 대해서도 별로 관심이 없다가 3학년 초
고대에 진학한 1년 선배 한 분이 대학진학을 고려해 보라는 충고에
갑자기 대학에 대한 관심과 욕심이 생겼습니다.
1학년 3월말 고사를 제외하곤 2학년 말까지
반장을 하던 친구가 늘 1등을 하고 저는 만년 2등을 하였습니다.
전자과 전공과목과 수학, 과학은 거의 만점에 가까웠지만
국어, 영어나 다른 일반 과목의 성적에서 많이 뒤 떨어져
대학진학에 더욱 관심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동일계 진학을 위해서는 내 전공과 관련 된 문교부 자격증만 인정되는데
공고 3학년이 되어야 응시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에
문교부자격 시험과 예비고사준비를 동시에 시작하였습니다.
기능사 자격증이라는 것이 이론은 간단하고 실습에 비중에 크기 때문에
시간을 많이 할애 할 필요는 없었지만 무시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5월경 자격증 이론 시험을 보았는데 놀랄만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전국 고3 전자과 응시생 중 8명만 이론에 합격하였고
내가 그 중 한명이 된 것에 기쁘기는 하였지만
많은 학생 들 너무 적은 수의 합격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그래서 예정에 없던 가을 시험일정을 만드는 사태가 있었습니다.
나는 그렇게 1학기에 자격증을 취득하고 예비고사에 전념하기 위해
아버지가 잘 아시는 분 회사에 현장실습 나가는 것으로 하여
학원과 독서실을 오가며 본격적인 수험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수학과 과학을 제외한 일반 과목에 워낙 처져 있던 나에게
6개월여의 기간은 너무 짧아 어느 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더군요.
동일계 전형은 본 고사가 없고 자격증, 고등학교 3년 성적, 예비고사 성적으로
입학이 결정되기 때문에 자신 없는 영어를 제외한 점수 많은 과목을 골라
집중하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잠은 자리에 눕지 않고 의자에 앉아서 혹은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해결하고
먹는 것은 간단하게 해결하는 우유와 빵이 주식이었습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새벽녘에 창틀에 우유와 빵 한 개씩 놓여져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좋아해서 그랬는지 공부하는 게 기특해서 그랬는지
집 근처에 있는 이발소에서 면도해 주는
내 나이또래의 아가씨가 그랬다는 것을 누군가 알려 주었습니다.
고맙다는 인사는커녕 말 한마디도 못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수험생활을 마치고 드디어 예비고사를 치루었습니다.
본 고사가 없었기 때문에 학교로 복귀하여
고등학교 마지막 학년말 고사를 끝내고 나니
만년 2등이 처음으로 1등을 하며 전교 3등으로 졸업을 하면서
생에 처음으로 학교성적에 의한 상을 받았답니다.
11월 중순 예비고사와 11월말 학년말 고사를 끝내고 나니
학과장께서 추천하여 아파트 공사현장에 전기공으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장소가 잠실 주공 5단지 고층아파트였습니다.
공사현장에 가니 흔히 이야기 하는 노가다였는데
기존의 전기엔지니어들을 보조해 주는 역할로
자신들을 전기노가다라고 하고 우리를 시다라고 하더군요.
사람들이 많이 거칠었습니다.
오전일 끝나면 함박집에서 수북히 쌓은 밥과 함께 소주 한 병은 기본이고
또 하루 일과를 끝내면 다시 거기모여 쨍그랑 거리는 소주잔과 함께
돼지 비개를 많이 넣은 찌개를 곁들여 취하곤 했는데
그 때 고등학생 신분이었지만 그들과 어울리며 술을 배웠습니다.
추운 겨울이었지만 험한 노동으로 배어있는 땀 냄새와
거친 세상을 살아가는 노동자들 사이에 난무하는 욕설과
쉴 줄 모르게 주고받는 소주잔 속에서 세상을 다 아는 어른이 되었다는 착각도 하였지요.
그 사이 중학교 졸업일 이후에 한 번도 보지 못한
마음속 추억의 한 켠에 숨어있던 여학생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받고
답장을 보내며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습니다.
한 달 동안 일한 노동의 대가로 받은 해의 마지막 날
첫 봉투를 받았으니 같이 한 잔 하자는 전기공의 제의에
함박집에서 4홉들이 소주와 돼지 찌개가 어우러져 자축 하였습니다.
“첫 월급으로 부모님의 빨간 내복을 사야한다”는 전기공의 충고에
술에 몸도 가누기 힘들 정도로 만취한 상태로 시장에 들러 빨간 내복을 사들고
집에 가서 아버지 어머니 모아 놓고 자랑스럽게 내복을 건네주며
쓰러져 버려 아침을 맞이한 기억도 있습니다.
10여일 뒤 졸업식을 끝내고 편하게 술 먹을 곳을 찾는 다는 것이
친하게 학교생활을 했던 여러 명이 한 아름 술 사들고 아파트 현장을 다시 찾아
입주가 얼마 남지 않아 꾸미기를 거의 끝낸 아파트에 들어
술 마시고 노래하며 만취가 되는 객기를 부리는 것으로 고등학교 생활을 마무리하였습니다.
당시에 유행하던 솔향기 나는 진 토닉이라는 술을 너무 많이 마셔
그 날 이후로 진 토닉은 냄새도 싫어하는 술이 된 것은
고등학교 졸업식 날의 또 다른 추억의 한 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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