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잉크를 넣어야 하는 만년필을 사용하고
깍아서 써야하는 나무연필을 사용한다.
가방 속에 넣고 다니는 만년필은
더운 여름에 차 안에 두면 달궈져서 잉크가 새고
그래서 아침에 무심코 사용할라 치면
잉크가 손에 묻는 참사가 일어나기도 하고
몸체와 뚜껑에 묻어 있는 잉크를 제거해야 하는 수고가 있음에도
만년필을 사용한다.
그것도 만년필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쓰면 쓸수록 굵어져 안 그래도 악필인 글씨는 더욱 악필이 되고
어쩌다 떨어뜨리면 부러져 다시 깍아야 하는 불편함에도
그리고 가끔은 중요한 서류에 실수로 긁혀져
원치 않는 낙서가 만들어 짐에도 연필을 사용한다.
연필을 깍는 것이나 원치않는 낙서를 지우는 것도
연필에 대한 사랑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불편하게 왜 그것을 사용하냐?”고 묻기도 하고
“멋있다, 혹은 클래식하다”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내가 사용하는 만년필과 연필이 주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 첫째는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잉크 한 병을 사면 1년도 넘게 사용할 수 있어 저렴하고
연필 한 더즌으로 몇 년을 사용할 수 있어
일반 펜이나 샤프를 사용하는 것에 비해 훨씬 저렴하다.
가끔은 사무실의 다른 사람이 가져가 사용을 해도
연필은 모두가 내 것이기에
말없이 그냥 가져와도 아무런 저항이 없고
사용하는 것을 그냥 놓아두면 큰 인심을 쓴 것 같아
덤으로 얻는 관용이다.
두 번째는 색상이 좋다.
만년필의 잉크 색은 Royal Blue를 사용하는데
그 어떤 좋은 펜도 그런 색상을 내지 못한다.
구름한 점 없는 짙푸른 하늘을 연상하게 하고
수심이 깊어 그래서 많은 이야기를 담은 바다의 색상과 같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흑백이라고 표현을 하지만
연필의 글씨는 데생을 해 놓은 듯 한 수많은 검정색이다.
기분에 따라 종이에 따라 그리고 내용에 따라
조금씩 다른 검정으로 표현되어 그것을 보면
나만의 신호를 새긴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글씨 쓸 때의 마음과 심정이 읽혀 지기도 한다.
세 번째는 글씨를 쓸 때 소리가 좋다.
펜들의 대부분은 볼이 들어 있어
볼이 구르면서 미끄러지듯이 소리가 나지 않고 글씨가 써 진다.
그렇지만 만년필은 펜촉이 종이와 마찰을 하며 긁히는 소리가 난다.
조용함 속에서 슥~슥~슥~ 하는 소리를 들으면
나와 펜, 둘이서 대화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연필로 쓰는 글씨는 어떤가?
깍아서 처음 쓸 때는 날카로운 소리가
사용을 해서 끝이 뭉퉁 해 질 때는 조금은 부드럽게
그 나름대로 건반의 옥타브와 같이 조금은 거칠고 일정치 않은 리듬의
음악을 듣는 듯 하기도 하다.
네 번째는 나의 Identity다.
나 송권식은 만년필과 나무연필을 쓴다.
어떤 사람은 “까칠한 성격이 드러낸다”라며
특이함을 이야기 하기도 하지만
음악을 들으며 독서를 하고 사색을 하기도 하고
만년필과 연필을 사용하는 사람, “송권식”
그렇게 Identity를 만들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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