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메 이야기

젊음의 대학생활

송삿갓 2010. 5. 10. 21:41

아침에 일어나 운동하러 나가니

조금 길게 자란 잔디가 이슬을 한껏 머금고 혹여나 떨어질세라 잡고 있는 모습이

애처롭기보다는 어제 낮 더위를 잊으며 즐기려는 모습으로 보였습니다.

신록의 계절 연녹색의 나뭇잎이 짙어져 가는 모습이

암컷이 요염을 드러내며 노골적으로 유혹하는 30대의 여성같이

짙은 녹음의 자태를 마음껏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 사이사이에 이름을 알 수 없는 여러 가지 새들이

조금은 시끄럽다 할 정도로 아침 맞이 노래를 부르며

사람들의 기상을 재촉하는 것도 5월의 중준으로 향하는 날씨의 전경입니다.

 

하늘을 찌르는 듯한 소나무와

그 사이사이에 자리한 여러 가지 나무들이 있는 뒤뜰에 들어서면

환영의 노래를 부르는 새 소리는 더 커지고

잔잔히 부는 새벽바람에 부딪치는 나뭇잎들이 스스거리는 소리로 장단을 맞추고

발걸음에 밟히는 젖은 낙엽 부스러지는 소리에 맞춰 호흡을 하노라면

새벽 자연 오케스트라에 한 단원이 되어 교향곡을 연주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도 그렇게 음률을 타며 하루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감사의 기도를 하지요, 자연과 함께......

 

대학 2, 3, 4학년은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나도 내 인생에 있어 가장 큰 턴닝포인트 중 한 시기였습니다.

어렵고 길게 느껴진 1학년을 마치고 2학년이 되면서 전공과목을 시작하자

학교에 다니는 재미에 눈을 뜨기 시작 하였다고나 할까?

물론 대부분의 과목이 영어로 된 교재를 사용하여

영어실력이 모자랐던 나에게 큰 핸디캡 이기는 하지만

내용은 이미 대부분 알고 있었고 좋아하는 과목을 듣는다는 재미는

진정 대학생이 된 것 같은 기분으로 즐기기 시작했지요.

 

마음과 시간의 여유가 생겨 교내 써클에도 가입하여 활동하고

그것을 통해 여름과 겨울 농촌봉사활동에도 참여하며 젊음을 분출하기도 하였습니다.

성남을 통해 수원으로 버스 통학하는 학생들끼리 동그라미라는 모임을 만들었고

그 모임에서 내 생에 첫 회장이라는 타이틀을 갖게 되었습니다.

 

대학 1학년 때까지 내가 어떤 모임이나 조직에서 하였던 가장 큰 감투가

중학교 3학년 때 반에서 하였던 미화부장이 최고였는데

동그라미라는 모임에서 초대회장을 하고 지금의 내 아내가 부회장을 하였습니다.

 

사람이 자리를 만들기도 하고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도 있지만

내 경우는 회장이 되어 모임을 이끌어 가면서

회장역할에 맞는 사람으로 가꾸어져 가고 있었습니다.

또한 회장으로서 여러 가지를 위해 부회장을 별도로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많은 개인관계를 쌓아가는 부수적인 보너스였구요.

 

대학 2학년 2학기 중에 부마사태에 이어 10.26으로 대통령이 사망할 무렵

ROTC 모집을 보고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ROTC를 지원한 이유가 분명하지 않았지만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남자다운 몸매를 위해 군 입대를 고려하였던

내 로망을 이루기 위해 그랬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10.26으로 학교는 휴교가 되었고

동그라미 회원들과 완행 밤 열차를 타고 의자사이 바닦에 누워 잠을 청하며

여행을 가고 등산을 다니면서 산을 좋아하는 계기가 되었고

학교의 농촌봉사활동을 통해 여러 사람들과 조직적인 일에 익숙해져 가고 있었습니다.

 

3학년이 되기 직전 ROTC 후보생이 되어 2월에 훈련을 받고

3월 학기 시작과 함께 학교에서 줄 맞춰 절도 있는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학기 시작하자마자 교내써클에서 회장으로 선출되면서

생에 두 번째 회장을 시작하였지만 1주일 만에 반납하는 최단기 회장이 되었습니다.

 

이유인 즉 ROTC에서 3학년(우리는 이를 1년차라 함)에서 간부가 되면서

시대적 흐름으로 ROTC 간부가 교내 이념 써클의 회장직 수행은

불가능하다는 결정에 의해 ROTC 간부를 못하겠다고 하자

그러면 후보생도 그만 두어야 한다는 강압적 권고에 결국은 회장직을 반납하였습니다.

그렇게 ROTC 후보생으로 맞이한 5월의 축제 때

후보생 모두가 파트너를 동반한 축제참석이라는 것을 빌미로

지금의 아내에게 처음으로 공식적인 파트너 요청을 한 것이

개인적인 첫 데이트였습니다.

 

10.26, 12.12로 이어진 불안한 시국으로 많은 학생들이 데모를 하는 와중에

축제는 특별감시 행사였지만 매년 하던 교내행사라는 명목으로 강행되었지만

축제 마무리와 함께 5.17로 다시 휴교하여 3학년 1학기를 마쳐야 했습니다.

중간고사만 치룬 상태에서 학기는 종료되었고

ROTC인 우리는 여름 훈련에 입교하게 되었습니다.

 

일반학생들은 그 기간에 리포트로 잔여 수업일수와 기말고사를 대체하였고

우리는 훈련이 끝난 후에야 리포트를 쓸 수 있었는데

내가 주로 듣던 무선공학의 분야의 한 교수는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신청한 18학점 중 그 교수의 9학점에 대해 학점을 받지 못해

세 개의 F로 학사경고까지 받고 졸업 자체도 불투명해졌습니다.

 

우리 학교는 학사경고를 받으면 15학점이상 신청이 되지 않았고

2학기 15학점 이수를 하더라도 졸업에 필요한 141학점을 위해서는

41학점을 이수해야 하지만 한 학기 최대 가능 학점이 21학점의 제한으로

4학년 1, 2학기에 다른 학생들의 2배가 넘는 학점을 이수해야 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아 ROTC도 포기하고 휴학까지 고려하였습니다.

 

또 한 가지 어려움은 내가 전공하려했던 무선통신을 모두 포기해야 하는 것이

더욱 마음 아팠습니다.

그래서 컴퓨터분야로 방향을 틀었지만 과목이 많지 않아

졸업학점에는 턱 없이 부족하여 1년을 더 다닌다는 생각으로 휴학까지 고려 하였지만

당시에는 ROTC를 하다 그만 두면 하사로 군에 간다는 이야기가 있어

그러지도 못하고 하자는 데까지 해 보자는 결심으로 계속 다니기로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컴퓨터 분야는 과목이 너무 부족하였습니다.

그래서 다른 학년으로 가서 기초과목과 다른 학과의 과목을 이수하게 되었는데

그 것이 나중에 취업을 할 때 큰 제약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결정 후 3학년 2학기를 마치고 맞이한 4학년 1학기

다른 학생들은 9학점 정도로 여유 있게 생활하는데

ROTC 간부였기에 장학금도 타게 되어

후배들 훈련시키면서 21학점 즉, 1학년 때와 같은 양의 수업을

학년과 다른 학과를 전전하며 바쁘게 보냈습니다.

 

여기 저기 기웃거리며 41학점 수업 들으랴

남들 안 하는 논문 쓰랴(대부분의 학생들은 졸업시험으로 대체)

지금의 아내와 연애하랴

그리고 후배들 훈련시키랴 그리고 2학기 때는 장교임관고사 준비하랴

정말로 정신없이 바쁜 4학년을 보내고 대학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앞에서도 약간 언급하였듯이 대부분의 학생들은 학부이기 때문에

복잡한 논문을 택하지 않고 졸업시험으로 대체하였습니다.

그런데 3학년 2학기 때 컴퓨터분야로 방향을 선회하면서

15학점의 제한적 수업으로 시간이 많았고

같은 과 ROTC생의 제안으로 당시에 쉽지 않았던 PC를 디자인하는

논문을 쓰기로 결정하였습니다.

 

3학년 2학기와 4학년 1학기 때는 주로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며

기초 디자인을 하였지만 4학년 2학기 때 드디어

디자인을 기초로 지금 수준으로는 장난감 같은 PC를 만들기 위해

학교 실험실에서 1달을 넘게 밤새워가며 만들고 수십 번 실패를 하며 보완하여

실험을 하고 거의 데드라인에 논문을 완성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은 무모하였고 터무니없으며

무계획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자책을 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대학 이후에 복잡하고 많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리더십을 발휘하고 결국은 어려움을 이겨내는 밑바탕의 수련시간 이었던 것 같습니다.

 

작고 내성적이며 소심하던 내가

평생 반려자를 만나고

리더십을 배우며 키우는 계기가 되었고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용기와 끈질김을 배웠던

대학 2, 3, 4학년은 내 생에 있어 가장 큰 터닝포인트 중 하나임에

틀림없음을 정리하며 오늘도 여기서 줄입니다.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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