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반딧불이 - 무라카미 하루키

송삿갓 2019. 12. 19. 00:54

반딧불이 - 무라카미 하루키

 

무념무상(無念無想)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모든 생각을 떠나 마음이 빈 상태라고 한다.

그런데 그런 감정이나 상태를 글로 표현하자면 쉽지가 않다.

바람이 거의 없는 햇빛이 강한 밖을 바라보며 어떤 생각에 집중해 있다가

햇살의 눈부심에 생각이 떠나가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도 느끼지 못할 때

달리 말하면 멍 때리는 순간이 하나의 무념무상이 아닐까?

 

삶에서 이런 것을 찾아내 글로 표현하자면 끝도 없을 것 같지만

막상 써보자고 시작하면 몇 줄 지나지 않아 고장 난 열차 정지하듯 멈추고 만다.

머릿속에 혹은 마음에 줄줄이 이어지는 듯하지만 한 단어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게 사실.

 

단편소설이라는 게 그래서 힘든 것으로 생각된다.

짧음 속에서 많은 걸 풀어내야 하니 더욱 그런데

또 다른 한 편으론 쉽게 할 수도 있다는 게 내 주장이다.

 

열심히 달린 하루,

모든 걸 마치고 와인 혹은 향 좋은 차 한 잔 마시며 아침부터 저녁까지 했던 일을 정리하면,

내가 좋아하는 한 사람,

만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지내온 일들을 정리하면,

기억에 남는 여행을 마치고,

출발해서부터 도착까지 일어났던 일들을 정리하면 되지 않을까?

 

시골에서 살던 어린 시절, 여름밤이면 집 주변에서도 쉽게 보이는 반딧불이가 참 많았다.

도시로 이사해선 숲이 없어 그랬는지 아님 전기로 밤을 밝히는 불빛 때문인지

그도 아님 여유가 없어 그랬는지 모르지만 반딧불을 보기가 쉽지 않았다.

어른이 되어 시골로 휴가를 가서도 거의 보지 못했던 것으로 보아

농약이나 자동차매연 등의 공해고 반딧불이가 없어져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쉽게 다시 보게 된 기억은 미국으로 이사를 해서다.

공해가 덜해서 아님 빛이 덜해서인지 모르지만 신기하게도 집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었다.

풋풋하고 순수함을 느끼며 어린 시절을 회상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또 한 참을 잊고 있었는데 이 책의 첫 번째 단편이자 책의 메인 제목인

반딧불이를 읽으며 다시 그려졌다.

풋풋함, 순수함

한 참을 잊고 지내던 단어들이 끄집어내어졌고 삶으로 어지럽혀진 마음이 보였다.

 

생뚱맞고 불가사의한 상황의 꿈을 꾼다.

시대와 관계를 무시한 사람들이 한 자리에 있고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기도 한다.

일어나면 대부분 잊어지지만 때로는 현실인 것처럼 마음의 떨림이나 혼동이 이어지기도 한다.

때로는 꿈이 현실인지 현실이 꿈인지 헷갈리는 경우도 있는데 <춤추는 난쟁이>가 그렇다.

꿈에서 만난 난쟁이가 현실에서 내 몸속에 들어와 날 춤 잘 추는 사람으로 만든다는 이야기,

전부 꿈일까, 아님 상상일까?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우습다고 할지 모르지만 책을 읽고 잠시 음미하다보면

내 스스로 상상의 나래를 즐기는데 현실 삶을 떠나 잠시 쉼을 갖는 의미로 생각하면 어떨까?

 

다시 무념무상으로 돌아가 보자.

내 삶에서 시간에 쫓기며, 아님 정해진 시간대로 움직이려는 일이 많다.

누가 정해 놓거나 바라는 것이 아님에도 그런다.

혼자 골프장을 걸으면 혼자 걸으니 4시간을 넘기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나

아침에 일어나면 7시까지 사무실에 도착하려는 것 등이 그런 예다.

누군가 앞에서 느리게 가면 4시간을 넘길 것 같아 자꾸 Push를 한다거나

도로가 막히면 7시까지 사무실에 도착하지 못할까 전전긍긍하는 모습 등이 그렇다.

어느 순간에 시간의 여유가 있어 바라보다 멍하게 되는 순간

저녁을 먹고 차를 한 잔 마시며 밖의 불빛을 바라보다 아무 생각이 없어지는 순간

잠시 쉼을 갖는 것 같아 행복하고 즐거움을 느낀다.

그런 걸 조금 고급 진 표현으로 한다면 무념무상이 아닐까?

 

이 책의 단편을 한 편 읽고는 음악에 간주 흐르듯 잠시 멈추고 음미하다가

멍 때리기를 반복하였다.

물론 책 내용도 함께 연기처럼 지워지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러다 정신 차리면 남는 느낌, 풋풋함과 순수함 같은 거다.

 

, 맑다, 내 마음이......

 

December 18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