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각사 -미시마 유키오 지음-
책을 읽고는 많이 느끼는 것이 어떠한 사물이나 환경을 보고 느낀 것을 글로 표현한 것에
‘어떻게 저렇게 아름답고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지?’라는 감동이다. 나 역시 어떠한 것에
감성을 느껴 글로 써보려고 하면 적절한 단어와 문장으로 표현할 수 없어 답답함을 느끼거나
때론 아주 좋다며 썼던 글이 며칠 지나고 나면 유치하고 엉성하기 이를 데 없어 실망을
하기도 하는 경우가 많은 데 [금각사]를 읽으며 ‘아! 이렇게 표현 할 수 있구나.’하는 감탄을
한 곳이 많았다. 그 중 한 부분 주인공 미조구치가 절에서 출분(出奔)하여 고향으로 갔을 때 바다를 표현한 내용이다.
그것은 그야말로 우아니혼의 바다였다! 나의 모든 불행과 어두운 사상의 원천, 나의 모든
추악함과 함의 원천이었다. 바다는 거칠었다. 파도는 잇달아 쉬지 않고 밀려와, 지금 밀려오는
파도와 그 다음의 파도와의 사이에, 매끄러운 잿빛 심연이 엿보였다. 어두운 바다 위에
층층이 쌓인 구름은, 중량감과 섬세함을 동시에 지지고 있었다. 왜냐 하면, 경계도 없는
구름의 누적이, 아주 가볍고 차가운 깃털과도 같은 테두리로 이어져, 그 복판에 보일 듯
말 듯 희미한 푸른 하늘을 에워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납빛 바다는 또한, 검보라빛 곶의 산들
사이에 위치하고 있었다. 모든 것들에 동요와 부동과, 끊임없이 움직이는 어두운 힘과,
광물처럼 응결된 느낌이 있었다. -본문에서-
‘파도와 그 다음의 파도와의 사이에, 매끄러운 잿빛의 심연이 엿보였다.’나
‘경계도 없는 구름의 누적이, 아주 가볍고 차가운 깃털과도 같은 테두리로 이어져’ 등의
표현이 큰 감동을 받았다.
예전에 알베르트 카뮈의 글에서 지중해의 파도를 ‘철갑’이라는 표현에서 느꼈던
비슷한 감동처럼 책 읽기를 멈추고 한 참을 마음속에 바다와 그 위 하늘을 그렸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소설 [금각사]에 대한 논문이나 비평이 많다고 한다.
사람이 살면서 수 없이 하는 삶의 고뇌와 번뇌, 그리고 갈등의 표출 등에 대해
사실적이라는 내용이 많은 것 같다.
전쟁 중에 태어나 청소년기를 보내는 주인공 미조구치는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절에 들어가 살며 경험하는 갈등과 방황의 행동으로 결국은 금각사를 불태우는
과정을 이야기하는 내용인데 나는 자신의 열등감을 안고 살면서 좋아했던 한 여인
‘우이코’라는 여자와 이루지 못한 짝사랑의 한을 풀어내고자 하는 행동으로
금각사를 불태운 것이라는 것으로 요약한다. 하지만 미조구치는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 하기위해 금각사를 불태워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들었다.
중세의 동화 [부상신기]의 서두에 이렇게 씌어 있다. “음양잡기에 말하길, 기물(器物)의
100년을 지나, 변하여 정령을 얻고 나서, 사람의 마음을 기만한다. 이것을 부상신이라
칭한다고 한다. 이것에 의하여 세속에서는, 매년 입춘에 앞서서, 가정집의 낡은 구족(具足)을
처분하여, 길가에 버리게 되었는 바, 이를 매불(煤拂)이라 한다. 이것이 곧, 100년에서
1년 모자라는 부상신의 재난을 대신하게 된다.“
내 행위는 그처럼 부상신의 재앙으로부터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하여, 이 재앙에서 그들을
구하게 되리라. 나는 이 행위에 의하여, 금각이 존재하는 세계를, 금각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로 뒤바꾸게 되리라. -본문 중에서 주인공 미조구치가 금각사에 불을 질러야 하는 타당성을 설명하는 내용-
말더듬이라는 놀림과 왕따를 당하는 등의 열등감이 많은 주인공이 처음 알게 되는 이성인
우이코에게 고백을 하지만 거절당하고, 미군과 절에 놀러온 몸 파는 여자의 배를 발로 밟는
행위나 안짱다리인 친구는 당당하게(적어도 주인공의 눈에는) 여자를 사귀며 누리는 것에
대한 동경심, 집성촌 근처에서 본 주지의 탈선 등은 주인공을 더욱 열등감에 빠지게 했다.
그러한 것이 옮긴이가 표현하는 <인지>라고 한다면 안짱다리 친구에게 돈을 빌려 출분하여
고향으로 떠나는 것이나 금각사를 불태우는 행동에 옮기기 전 주지가 준 학비로
창녀촌을 찾아 여인의 몸을 탐하는 것, 아름답고 웅장한 보물 금각사를 불태우는 것은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실화에선 주인공이 자살을 했지만 소설에선 자살하려던 마음을
마지막 순간에 바꾸어 삶을 택한다. 이 모든 과정이 이루지 못한 우이코를 짝사랑이
대한 열등감의 표출이 금각사를 불태우는 결론에 도달한 게 내 후기의 결말이다.
책의 겉표지에 ‘탐미문학의 거봉, 마시마 유키오의 대표작 [금각사]’라는 문구가 있는데
주인공이 미를 탐하는 순서는 금각사에서 우이코로 이어지기에 어쩌면 내 추론이
반대일 수도 있다는 것으로 후기를 마친다.
June 15 2020
'책을 읽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린왕자 - 생텍쥐페리 (0) | 2021.01.17 |
---|---|
화첩기행 5 - 김병종 지음 (0) | 2020.11.24 |
총, 균, 쇠 -재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0) | 2020.05.28 |
또 이따위 레시피라니 -줄리언 반스- (0) | 2020.03.31 |
아가씨와 밤 -기욤 뮈소- (0) | 2020.03.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