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미국 다우존스가 1만포인트 밑으로 떨어지며
패닉상태에 빠졌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7월 주택거래가 전달보다 큰 폭으로 줄어들어
15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는 소식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전문가들은 "주택시장에는 이미 더블딥이 왔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금융위기로 폭락했던 집값이 지난해부터
조금씩 회복되는 모양새를 보이다
최근 다시 하염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라 합니다.
어제 아침에 파트너와 8월의 영업실적 전망과
향후 6개월 전망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였는데
예측할 수 없으며 큰 대안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무너져 내리는 주택시장에 그래도 살아 남은 사람이 있으므로
조금 더 적극적인 세일즈와 비용을 줄이자는 이야기 였는데
세일즈는 파트너, 경영은 제가 담당하기 때문에
각자가 세부적인 계획을 세워 점검하고 실행하자는
아주 평범한 결론에 도달 하였습니다.
그리고 7월 주택거래가 최악이었으며
재고는 늘어난다는 뉴스에 이어 주식이 폭락하였습니다.
회사는 2009년 최악의 해를 보냈고
올 해는 조금 낳아져 이대로 좋아 지는가 했는데
더블딥이 올지도 모른다는 우려 속에
5월을 정점으로 매출어 떨어지고 있어
추운 겨울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초 제가 다니던 회사는 지칠 줄 모르는 성장을 하였습니다.
회사나 직원들 모두 일이 너무 많아 비명을 지르고
급여인상이나 보너스로 가계를 튼튼하게 해 주었습니다.
회사 규모가 커지면서
회사의 운영이나 미래를 점검하는 조직이 필요해
기획조정실이 생겼고 우리 부서는
기조실 내에 기술기획으로 소속되어
현 개발업무나 미래의 기술발전에 대비한
투자업무까지 담당하게 되어 모두가 열심히 일 하였습니다.
많은 자료를 수집하여 분석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일 이외에
회사 절차의 매뉴얼화 하는 일까지 담당하며
회사의 성장과 함께 지칠 줄 모르는 기관차의 핵심이라는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90년대 중반을 들어선 한 해 11월
회사 성장에 브레이크가 걸렸고
그래서 조직과 규모의 재정비를 해야 한다는 방향이 설정 되었습니다.
물론 같은 기조실 내의 경영기획 쪽 판단에 의한 것이었고
기술기획 쪽에서는 기술투자는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
대립하기도 하였습니다.
회사의 결정은 조직과 회사 규모의 재정비였고
그에 따라 감원이 결정되었고 방법은 부서별 할당제로
저희 팀에도 할당이 되었습니다.
그 때 내 직급이 과장이었고 직책이 팀장이었는데
20 여명의 팀원 중 2명이 할당 되었지만
지속적인 기술투자 점검을 위해서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버텼습니다.
기술기획 담당 이사는 끊임없이 명단 제출을 원했고
나는 그럴 수 없노라며 버티니까
인사부서에서 2명의 이름까지 적힌 명단을 통보하며
서명하라고 재촉하였습니다.
그 와중에 불면증이 왔습니다.
잠을 청해도 받은 명단의 직원들 생각에 잠이 오지 않았고
깨어 있자니 몸이 피곤하여 무기력증에 빠졌습니다.
그렇게 12월 한 달을 보내니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 했던 내 자신이 미웠고
직원들을 독려하며 밝은 미래를 이야기 하였던 내 자신이
원망스러웠고 직원들을 똑바로 볼 수가 없었습니다.
경영기획이나 인사부서에 쫒아가
“우리가 일 해온 과정이나 결과를 보아라.
조금이라도 문제나 실수를 찾아내면 내가 수긍하고 따르겠다.
우리는 열심히 일 했는데 지금의 어려움에
왜 우리까지 피해를 봐야 하냐?
지금의 상황을 만든 부서에 그 책임을 물어라“라고 항변하였지만
중역회의에서 결정한 사항이고
모든 부서나 직원은 그 결정을 따라야 한다는 대답 뿐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한 명으로 줄여 줄 테니 결정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일은 계속해야 하고
직원들은 내 눈치 살살 보며 불안해 하고
보스인 이사와는 서로 얼굴도 보려 하지 않고
잠자는 시간은 점점 줄어 하루에 1시간도 잘 수 없는 상황에서
입에서는 단내가 나며 모든 음식이 싫고
겨우 먹은 음식도 소화가 되지 않아
체중은 급격히 줄면서 몰골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년말 길거리에서 흥겹게 들려야 하는 크리스마스 캐롤은
웽웽 거리는 잡음으로 들리고
들뜬 년말 분위기는 나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그야말로 외롭고 고독한 나날이었습니다.
“죽고싶다”
이런 생각이 하루에서 수십 번......
기한이 말일 이었는데 하루 전 담당이사에게 사표를 제출하였습니다.
기구 축소와 인건비 절약이 목표라면 과장인 내가 급여도 더 많고
후배들에게 길도 열어 주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사표 쓰는 것이 제일이라며 사표를 제출하였습니다.
담당이사는 이건 큰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고
항명이라며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는 협박을 하며 말렸지만
소공동에 있었던 사무실을 나와
약간은 쌀쌀하지만 햇살 좋은 거리를 방황하였습니다.
그 사이 회사는 발칵 뒤집혀 찾고 난리였지만
전화기도 회사에 두고 갔기 때문에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
저녁에 집에 가니 아내가
자신과 상의도 안 하고 대책 없이 사표를 쓰냐면 어떻게 하냐는 핀잔과 함께
회사에서 찾는 전화가 여러 번 왔었고
내일 아침 사장실로 오라는 연락도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회사의 종무식이 있는 12월 마지막 날
사무실에 가니 담당 이사가
“당신만 의리 있냐?”며 핀잔을 주면서
당신 사표는 사장실에 있으니 거기로 가라고 하더군요.
정말로 마지막 인사차 사장실로 갔습니다.
사장께서는 “왜 그런 결정을 했느냐?”며
이것은 조직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야단을 하시더군요.
“그 잘못에 대한 책임은 제가 모두 지겠습니다“는 대답과 함께
사표수리를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조직에서 잘못된 결과는 그 원인을 찾아
잘못을 한 개인이나 조직을 찾아내어 그 책임을 묻는 것이지
좋지 않으니 할당하는 것은 억울한 피해자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회사가 어렵다면 경영의 책임을 물어
중역들도 포함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이건 조직사회에 있을 수 있는 일이냐며 따졌습니다.“
그리고 돌아서 나오려는데
“당신은 이 회사의 사장이 목표가 아니었냐?”
“당신도 사장을 해 보면 내 마음 잘 알것”이라며
내년에도 함께 잘 해보자는 이야기와 함께
사표를 돌려주시더군요.
그런 결과를 기대하고 사표를 제출하였던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하여 내가 태어나서 가장 길게 겪었던 불면증과의 싸움은
해를 넘기지 않고 종결하였습니다.
그날 종무식으로 조금 일찍 집으로 향하는
눈이 부실 정도의 햇살에 도로 위 많은 차들을 보며
“저 많은 차들 중 어떤 차는 행복이 있고
어떤 차는 불행이 있겠지“라는 생각을 하였답니다.
오늘 암울한 경기 때문에 몸과 마음이 무겁지만
어떤 이는 행복할 것이고
어떤 이는 나 보다 더 마음이 무겁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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