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죽거들랑
묘비에
‘즐겁고 행복하게
잘 살다 죽었노라.‘라는
흔적을 남기고 싶지만
말아주오
누군가
만들고 보살피는
수고가
부질없음이요
내
능력이나
노력에 비해
넘치게 많이 가졌고
마음껏 누린 것에
한없는 감사함이
그것으로 만족하오
나 죽거들랑
이 사람 저 사람
부르지 말아주오
몸일랑
필요한 곳에
넘겨주고
내 가졌던 모든 것은
원하는 곳에
이름 없이 그냥주소
그래도 남은 것은
말끔히 태워
내 흔적을 지워주소
그럼에도
꼭 한 가지 부탁이 있다면
[살풀이] 한 자락 틀어주오
많이 아팠고
많이 힘들었던
이 세상살이
대물림을
피할까 해서요
피리소리에
삶의 한 날리고
장구 꽹과리 장단에
너울너울 춤추면서
사라지려 함이라오
나 죽거들랑
그리 해 주시오
April 16 2021
자동차에서 살풀이를 듣다가
이런 생각을 했다
그리곤
글로 남겨야겠다며
이리저리 다듬는 데
울컥하며 눈물이 나려했다.
슬픔이었을까
아님 삶이 덧없어 그랬을까
유서를 만들 때도
이와 비슷한 마음이 들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안도하며
‘잘했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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