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메의 컬럼과 글

나 죽거들랑

송삿갓 2021. 4. 17. 10:40

나 죽거들랑

 

묘비에

즐겁고 행복하게

잘 살다 죽었노라.‘라는

흔적을 남기고 싶지만

말아주오

 

누군가

만들고 보살피는

수고가

부질없음이요

 

능력이나

노력에 비해

넘치게 많이 가졌고

마음껏 누린 것에

한없는 감사함이

그것으로 만족하오

 

나 죽거들랑

이 사람 저 사람

부르지 말아주오

몸일랑

필요한 곳에

넘겨주고

내 가졌던 모든 것은

원하는 곳에

이름 없이 그냥주소

 

그래도 남은 것은

말끔히 태워

내 흔적을 지워주소

 

그럼에도

꼭 한 가지 부탁이 있다면

[살풀이] 한 자락 틀어주오

 

많이 아팠고

많이 힘들었던

이 세상살이

대물림을

피할까 해서요

 

피리소리에

삶의 한 날리고

장구 꽹과리 장단에

너울너울 춤추면서

사라지려 함이라오

 

나 죽거들랑

그리 해 주시오

 

April 16 2021

자동차에서 살풀이를 듣다가

이런 생각을 했다

그리곤

글로 남겨야겠다며

이리저리 다듬는 데

울컥하며 눈물이 나려했다.

슬픔이었을까

아님 삶이 덧없어 그랬을까

유서를 만들 때도

이와 비슷한 마음이 들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안도하며

잘했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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