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는 십리라 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십 오리라 하기도 하였다. 길게 잡는 사람은 이 십리하고도 하였지만 그건 조금 과한 듯하다. 시간도 어떤 이는 한 시간 거리라 하고 어떤 이는 40분 거리라 하기도 하였다. 사람마다 걸음의 속도가 다르고 장에 가는 마음에 따라 달랐을 것이기에 당연 하겠지만 시계가 흔치 않던 시절이기에 누구의 말이 정확했는지 알 길이 없었다.
어른들은 오일 마다 열리는 장날이 오기를 기다렸다. 산나물이며 농산물 혹은 달걀을 짚으로 한 개씩 살짝 감싸 꾸러미를 만드는 등 팔 수 있는 것은 여러 꾸러미를 만들어 지게에 지고 혹은 머리에 이고 장으로 향한다. 어떤 어른은 구멍 나고 찢어진 고무신을 때우기 위해 꾸러미 사이에 넣고 가기도 하였다.
찢어지고 구멍 난 고무신은 주변을 샌드페이퍼나 오톨도톨한 줄로 갈아 내고 쓰지 못하는 고무신에서 잘라낸 조그만 조각을 바깥쪽을 경사지게 잘라 안쪽은 줄로 갈고 양쪽에 본드를 발라 조금 마른 뒤 붙이고 열이 가해진 압착기로 꾹 누르면 얼마만은 다시 사용할 수 있게 수리가 된다.
집에서 가지고 온 꾸러미를 바닥에 펼쳐 팔거나 구면인 사람에게 넘기고 돈을 받던가 물물교환을 한다. 그리곤 산골마을에서는 구할 수 없는 생선이나 미역이며 생일이나 잔치가 있는 집은 돼지고기나 소고기 한두 근 준비한다. 물론 장터에서 먹는 국시나 여름의 콩국수는 장날의 또 다른 묘미이기도 하다.
여인네들은 일을 마치면 갈 길을 재촉하여 집으로 향하지만 남정네들은 솔매가 하늘에서 먹이를 찾아 빙빙 돌듯 여기 저기 기웃대며 술친구를 찾는다.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서 딱 한잔만 하겠다며 동무와 마주 앉아 작황이며 듣기 어려운 큰 도시이야기에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뉘엿뉘엿 어둠이 들기 시작하면 “다음 장날 또 봐유~”하고는 아침과는 무게가 다른 지게를 비스듬이 지고 주체하기 어려운 술기운에 갈지자의 걸음으로 집으로 향한다. 흡사 장사익의 노래 시골장 같은 풍경이다.
시골을 떠나 여름·겨울 방학이면 그곳을 찾았다. 덜컹 거리는 기차를 타고 어머니가 알려주신 역 이름을 하나씩 지워가며 도착하는 시골 역, 도시의 역과는 다르게 기차에서 내리면 역사를 거치지 않고 바로 건너편 들길을 따라 시골길로 향한다. 역 주변이 확 트여져 있어 기차에서 내리면 겨울에는 찬바람이 얼굴을 스치며 몸을 움츠리게 하고 여름에는 작열하는 태양이 눈을 부시게 하여 얼굴을 찡그려야 한다. 뜨거운 열기에 몸을 추스르기도 전에 조그만 바구니를 든 할머니들이 “방금 삶아낸 옥수수 사유~”하며 다가오면 시골에 도착한 것을 실감하기도 하였다.
십리든 십 오리든 시골길은 포장되지 않았지만 그런대로 잘 다듬어져 평평한 편이다. 흙바닥에 흩뿌려진 굻은 모래알 같은 것들을 밟을 때 조금씩 미끄러지며 나는 소리가 도시의 아스파트 위를 걷는 것과는 사뭇 달라 시골에 도착했음에, 그러다 흔치 않은 자동차라도 지나칠 때 흩날리는 흙먼지가 흡사 희뿌연 연기를 내뿜는 소독차와 같아 고개를 돌리고 손으로 입을 가리는 것 또한 시골길을 걷는 정취다. 들에서 한 참 일하고 있을 외할머니와 외갓집 가족을 만나는 들뜬 마음에 걸음을 재촉한다. 그래봐야 어린 잰걸음에 멀게만 느껴지던 길이다.
어른이 되었다. 걷는 것을 외면하고 문명에 동참하듯 하루에 몇 번 다니는 버스 시간에 맞춰 다니다가 어느 순간부터 내 차로 그 길을 달리며 내가 일으키는 뿌연 흙먼지에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는 했지만 포장이 되고 나서는 그 조차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역을 지났다 싶으면 10여분도 되지 않아 시골집에 도착하게 되어 회상이고 뭐고 할 틈도 없었다. 언젠가는 일부러 그 길을 걸은 적이 있었다. 코 흘리게 어린 소년이 아니라 다 자란 어른이 되어 늘어질 대로 늘어진 셔츠가 아니라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고무신 대신 구두를 신고 걸었다. 흙먼지가 날 리도 없고 한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다. 하지만 차를 타고 휙휙 지나가며 회상할 겨를도 없었던 초가지붕에서 슬레이트로 변한 시골 마을과 시멘트로 포장한 길과 하늘에 거미줄처럼 이어진 전선줄로 변하기는 하였지만 어렴풋이 남은 흔적을 따라 어린 시절을 회상하였다.
서울로 전학 가던 날, 내 나이 열 살, 설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은 찬바람이 불었지만 따스한 햇살이 추위를 달래는 2월의 어느 날이었다. 외할머니와는 마을 어귀에서 이별을 고했지만 나의 우상이며 세상에서 제일 예뻤지만 손도 못 잡게 하던 막내이모가 그 날은 아쉬운 듯 내 손을 꼭 잡고 그 시골길을 걸었다. 열 살의 철부지 나는 서울로 이사 간다는 것과 아버지와 함께 살 수 있다는 들뜬 마음에 폴짝폴짝 뛰듯이 걸었지만 이모는 꼭 잡은 내 손을 놓지 않았다.
나는 기차를 타고 서울로 향했지만 막내 이모는 그 시골길을 다시 걸어갔으리라. 어른이 되어 생각해 보니 “그 길이 얼마나 멀었을까? 그리고 허전한 마음에 불어오는 바람은 얼마나 차가웠을까?”
세월이 흘렀다. 근 50여년이 지났다. 내 나이 50대 중반을 넘겼고 시골길에 나를 설레게 했던 외할머니가 세상을 뜨신지 40년도 더 지났다. 그리고 내 손을 잡고 그 길을 걸었던 이모는 환갑을 지나 이제는 여럿의 손자를 둔 할머니가 되었다. 나는 그 나라를 떠나 몇 만리 길에 산다. 십리도 아니고 십 오리도 아닌 먼 길에서 말이다.
가을비가 내린다. 감기 기운이 있는지 자꾸 훌쩍거려진다. 그 훌쩍거림에 코흘리게 어린 시절이, 시골길이 새침하기는 했지만 예쁘기만 했던 10대의 막내 이모 얼굴을 그린다.
그리곤... 그리곤......
Oct 13,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