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께 드립니다.
평상시에 전화로 할 수 있음에도 전화도 하지 않던 제가 갑자기 편지를 쓰니 당황하실 수도 있지만 감사하고도 송구스러운 마음에 글을 씁니다.
아버님!
가끔은 아버님을 생각하면서 이제는 정말 잘 해드려야지 하면서도 그 생각의 여운도 사라지기 전에 다른 일에 묻혀 저의 생각도 묻혀 버리곤 합니다. 그러면서도 진얼이가 저에게 잘하지 못하는 것만 서운해 하고 괘씸하게 생각하는 부족한 아들입니다.
25년 전 제가 대학에 합격하여 대학등록금 납부하러 아버님과 함께 버스를 타고 갈 때 옆자리에 앉아서 주무시는 아버님의 모습을 보면서 듬성듬성 들어 난 아버님의 흰 머리를 보며 “아버님도 연세가 드셨구나”하는 생각을 하였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진얼이가 자라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세월이 흘렀음에도 저는 아직 덜 자라 아버님께 안정감을 주지 못하고 걱정을 하게하는 모습으로 살고 있어 더욱 송구스럽습니다. 그렇지만 가능한 빨리 아버님이 걱정하지 않는 아들이 되겠습니다.
아버님은 제가 자랄 때 다른 아버지와는 다르게 편안함과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렇지만 때때로 저는 아버지를 무능하고 뭔가 부족한 아버지, 그리고 자식들에게 관심이 덜 한 아버지로 생각한 적이 많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앞에 있기를 피하는 때도 있었고 나는 아버지와 같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아버지가 되고 진얼이를 키우면서 아버지가 제게 하였던 것 이상으로 하지 못하고 오히려 부끄럽고 부족한 아버지임을 깨달으면서 저에게 좋은 아버지가 계시다는 것에 감사드립니다.
저를 위해 늘 기도하여 주셔서 저를 하나님 전에 인도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 속에 살도록 주신 것 또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어머님을 사랑해 주시는 좋은 남편의 모습을 보여 주시는 것 또한 감사드립니다. 이외에도 아버님께 감사드릴 일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제가 다 말씀드리지 못해도 하나님께서 헤아려 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제가 이 글을 쓰면서 아버님께 정말 잘 해드려야지 하는 마음이 있지만 또 바쁘다는 핑계로 잊고 살 때가 더욱 많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용서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아버님! 존경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2002년 6월 9일 큰 아들 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