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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엄마를 찾는 길도착 30분 전에 전화를 걸었다엄마 저 밥좀 주세요꼭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내가 감을 알릴 겸그냥 가면밥 차린다 허둥대지 마시라무슨 반찬이 이리도 많아요응 너 많이 먹으라고그런데 이것 하고 이건어제 네 할머니와네 아버지가 와서밥 달라기에 만든거다두 분 다녀가셨어요?응 갑자기 와서 밥 달라곤차렸더니훌쩍 갔어말도 없이그냥 갔어아버지 17년할머니 10년넋이 되신 햇수그럼에도 불구하고엄만 그 넋을 맞이한다내 엄마 어떻하냐파도에 아스러지는 모래성처럼내 맘이 무너진다April 23 2025

흰-한강

흰-한강 “딸은 낳아 보지도 못했어요.” 나는 1959년 11월생이다. 그리고 이 글은 2025년 4월 23일에 쓴다. 그러니까 내 나이 65세다. 1963년 우리 가족이 소사에 살고 있던 때의 일이다.11월의 하루 새벽 내 엄마는 자고 있던 나와 내 동생을 흔들어 깨우고는 윗목의 구석진 곳에 이불을 개서 “거기서 꼼짝 말고 있어”라는 엄포를 놓고는 애를 낳았다. 아들과 딸 두 동생을 낳은 거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동네 할머니가 와서는 물을 끓여 두 아기를 씻기고 흰 천으로 감쌌다. 내 나이 네 살, 가장 오래된 기억이다. 그러니까 거의 62년 가까이 된 일이다. 기억은 갑자기 아버지의 고향 할머니 집이다. 엄마는 두 아기가 울 때면 번갈아 젖을 물렸다. 그러던 어느 날 아기 하나가 세상을 떠났다. 엄마..

책을 읽고 2025.04.23

친구가 떠났다

친구가 떠났다 입관 직전 조심을 다해 얼굴을 감쌌다떨리는 손바닥에 차가움이 전해왔다팔로 몸으로 밀리는 싸늘함은 발끝을 시리게 했고마음은 감당하기 버거운 슬픔이 넘쳤다 권식씨 만나는 날이면 아침부터 부산을 떨었어요만나고 집에 들어설 때 상기되어 있었고대화가 되는 친구라고 그래서 좋다고 했어요 고인의 신원 확인을 위해 안치실로 가는 길에친구의 와이프가 했던 말이다 나이 오십줄에 사는 곳의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있을 즈음한두 달에 한 번씩 거의 정기적으로 만나 삶을 나누던 베프는 홀연히 떠났다 권식이형, Y형이 죽었어요농담인 줄 알았다친구와 나나에게 연락을 준 후배 등 셋 우리는 애틀랜타에 산다두어 달 전 만나 저녁을 먹으며비슷한 시기에 한국방문을 알게 되어한국 가서도 만나 맛있는 거 먹자했었다그런데 한국에 ..

채식주의자 -한강-

채식주의자 -한강- 이러는 경우가 드물지만 책의 후기 2번째, 혹은 Version2를 쓰지 않을 수가 없었기에, 아니 어쩌면 책을 읽은 후유증이 너무도 크기에 토해내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아서 다시 시도를 한다. 물론 이번에도 어둠속을 허우적거리는 것 같은 마음을 다 표현할 수 없을지라도, 그래서 또 후유증에 열병을 앓는 한이 있을지라도 주절거려 보고자 한다. 책을 엄청 좋아하는 내가 소설을 가능한 외면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이야기에 몰입이 되어 방황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특히 조조 모예스의 [미 비포 유]를 읽고는 거의 2달을 열병을 앓았고 그로 인해 거의 2년여 소설과 거리를 두었었다. [채식주의자]는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등 세 편의 단편 소설 같음을 모은 한 편의 장편이다. 인간..

책을 읽고 2025.04.06

채식주의자 -한강-

채식주의자 -한강- 어제 어머님을 만나러 오기위해 버스를 타고 강화 초입의 정거장에서 내려 들길을 걸었다. 8개월 만이고 지난 번 왔을 때는 한 여름, 어제는 찬기가 덜 가신 햇살 좋은 봄의 날씨였다. 그런데 어제 걸었던 느낌이 들었다. ‘지금 걷고 있음이 꿈인가? 생시인가?’ 나이가 들수록 삶이 그렇다. 지금이 꿈인지 아닌지를 곱씹게 한다. 지금까지 살아 온 무수히 많은 날들, 일들, 거쳤던 환경이 내가 진짜로 살았던 건지, 아님 꿈의 연속인지를 말이다. 물론 이 책 [채식주의자]를 읽으면서도 그러한 헷갈림의 한 단편이다. 봄날 오후의 국철 승강장에서 서서 죽음이 몇 달 뒤로 다가와 있다고 느꼈을 때, 몸에서 끝없이 새어나오는 선혈이 그것을 증거한다고 믿었을 때 그녀는 이미 깨달았었다. 자신이 오래전부..

책을 읽고 2025.04.05

참 묘해

참 묘해 걷다가멈칫 할 때가 있어바람에 흔들리는 꽃을 볼 때쇼 윈도우에 예쁜 옷을 걸치고 있는 마네킹을 볼 때하늘에 몽글몽글한 구름을 볼 때울컥하며마음에 그리움이 차올라 책을 읽다가멈출 때가 있어같이 여행을 했던 지명이 있을 때네가 했던 말과 같은 문장을 대할 때내가 네게 품었던 마음과 같은 글일 때스미는추억에 먹먹해져 영화를 보다가숨이 멎는 것 같을 때가 있어속삭임이 네가 하는 것처럼 느낄 때네게 하고픈 말이 저거다 할 때달콤한 풍경에 너와 함께이고 플 때담에 네게, 너와 하고프다며눈물이 맺히곤 해 March 8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