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 김열규 외
최근에 ‘참 좋은 친구’가 독서를 좋아하는 나에게 읽어보라고 빌려준 책이 있다.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한 가지 사족을 설명하고 넘어가야 하겠다. ‘친구’하면 거기에는 많은 것이 내포되어 있다. 그냥 지나가는 사람이나 잘 모르는 사람을 ‘친구’라고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 때의 친구는 별다른 호칭을 할 수가 없어 그냥 3인칭을 말하는 것이고 일반적으로 ‘친구’하면 나와 특별한 관계를 지칭하는 말로 별도로 ‘좋은’ 혹은 ‘참 좋은’이라는 말을 덧붙이지 않아도 될 법 하다.그럼에도 나에게 책을 빌려준 친구를 ‘참 좋은 친구’라고 하면 다른 침구들이 서운해 할지도 모르지만 그 친구는 사업, 종교, 개인, 모임 등의 많은 분야에 연결되었고 오랫동안 유지하고 싶은 열망이 있어 ‘참 좋은 친구’라고 표현 된 것이다.
암튼 그 친구가 빌려준 책의 제목이 ‘읽어버린 것에 대하여“다. 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 최백호의 노래 ’낭만에 대하여‘가 생각이 나면서 마음속에서 절로 노래가 흥얼거려진다.
궂은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도라지 위스키 한잔에다 짙은 섹스폰 소릴 들어보렴
새빨간 립스틱에 나름대로 멋을 부린 마담에게
실없이 던지는 농담사이로 짙은 섹스폰 소릴 들어보렴
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실연의 달콤함이야 있겠냐만은
왠지 한곳이 비어있는
내 가슴이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밤늦은 항구에서 그야말로 연락선 선창가에서
돌아올 사람은 없을지라도 슬픈 뱃고동 소릴 들어보렴
첫사랑 그 소녀는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갈까
가버린 세월이 서글퍼지는 슬픈 뱃고동 소릴 들어보렴
이제와 새삼 이나이에 청춘의 미련이야 있겠냐만은
왠지 한 곳이 비어있는
내~가슴이 다시 못올 것에 대하여 낭만에 대하여
단지 한 줄도 안 되는 문장이 있음에도 이 노래가 흥얼거려지는 것은
표지에 있는 낙엽이 수북이 쌓여있는 뿌리를 들어낸 나무의 흑백사진이
순식간에 나를 과거의 여행으로 이끌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펄럭펄럭 책장을 넘겨보니 도종환의 산문집같이 글과 사진이 곁들어진
‘모퉁이를 돌아 조금 넓다싶은 길가, 최고의 놀이터였던 구멍가게 앞에는 아이들이 조막만한 머리를 맞대고 서서 군침을 삼키거나 호기심 어린 눈알을 굴리며 주인아저씨의 지청구에도 끄떡 않고 들추고 만지다가 슬쩍 제 주머니에 넣고 줄행랑을 치기도 했지요.’라는 머리말은 40, 50대의 남성들 거의 모두가 가지고 있는 추억일 것이다.
‘사람을 닮아 우리들의 집과 온마을 사람들이 들고나며 정을 나누던 구멍가게와 이발소, 아이들의 입가를 형형색색의 빛깔로 물들이던 불량식품과 이제는 찾아보기 힘들어진 검붉은 흙, 두고 온 그 시간의 흔적들과 시간의 흐름을 이겨내지 못해 푸석푸석해진 자연과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들입니다.’라며 소개한 이에는 2002년부터 2년간 원간 [지오(GE))]에 실렸던 여덟 편의 글과 사진을 모아 책을 펴냈다고 한다.
여덟 편의 책과 글은 이렇다.
비 혹은 물에 관한 이야기 : 최성각
휴(休) : 이현주
구멍가게라는 이름의 그 작은 세계 : 김열규
이발소, 이발고 그림 : 박영택
사람살이를 담는 집 : 임석재
불량식품 연대기 : 이동원
흙에 대한 아홉가지 단상 : 최성각
세월의 흔적 : 조병준
글의 제목을 보면 대도시의 한 복판 보다는 중소도시의 조그만 동네 혹은 시골 동네의 풍경을 그리고 시끌벅적하기 보다는 조용하여 눈을 감고 가만히 들어야 들리는 소리 같기도 하다.
‘비 혹은 물에 관한 이야기’에는 물을 아껴야 한다는 내영이 주를 이루면서 이런 대목이 나온다. ‘지구는 존재하는 모든 인간의 필요를 충분히 만족시킬 만큼은 자원을 제공하지만 탐욕을 만족시킬 만큼 자원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나는 비가 내릴 때 어떤 생각을 하는가? 굳은 날씨에 짜증이 나는가, 아니면 가뭄에 단비로 생각하는가? 이 글에서는 ‘비가 내릴 때, 우리는 살아 있다는 일에 감사하고 기뻐할 필요가 있다. 감다하기 벅찬 많은 비가 내릴 때, 우리는 겸손해질 필요가 있다.’라며 자신을 돌이켜보며 생각하고 그럴 수 있음에 감사하면서도 자연의 현상 앞에 자숙하며 겸손하라고 이야기한다.
‘휴(休)’는 휴식을 뜻하는 것으로 멈춤은 곧 활동을 재개하는 말임에도 정신없이 뛰고 자신을 내몰아 치는 것이 삶이 최선이고 그럴 수 밖에 없음을 한탄하며 사는 우리를 돌이켜보자고 주장한다. 힘에 부칠 때 그것은 멈추라는 신호임에도 자신의 부족함을 탓하고 다른 사람과의 경쟁에 뒤떨어지지 않게 사는 것이 최선이라는 착각에 산다는 것이다. 법륜 스님의 저서 [휴식]에서 ‘진정한 휴식이란 휴식하는지조차 모르고 쉬는 것’이라 적고 있다고 한다. 최근에 혜민 스님의 베스트셀러 [멈춰서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의 제목에서 보는 것과 같이 멈춤의 신호가 있을 때 멈추고 쉬는 것 이 또한 삶의 지혜라는 생각이 든다.
추억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과거가 미화되고 승화되어서는 새로이 몸단장하는 것이 추억이다.‘라는 설명을 한다. 그러면서 구멍하게를 그 같은 추억이 되게 하여야 한다고 하지만 나는 구멍가게나 불량식품에 대한 추억이 별로 없다. 구멍가게나 불량식품이라는 것이 어린 시절의 군것질을 의미한다. 나에게 구멍가게나 불량식품에 대한 추억이 많지 않은 것은 군것질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불량식품의 군것질이 내 몸에 적응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 집 형편이 군것질을 할 정도의 여유가 있지 못하였다. 학교를 입학하기 전 혹은 1, 2학년 때 시골에 살면서 설에 세배를 하면 사탕이나 과자를 받는 경우가 있었는데 나는 그것을 먹으면 배탈이 나서 설사를 하곤 하였다. 아주 가끔 어쩌다 돼지고기를 넣은 국이나 찌개를 끓이면 고기라는 것에 숟가락을 깊이 담가 고기 낚시질을 하며 욕심을 부리면 눈을 찡그리며 야단을 하는 어머니의 행동보다는 그 이후에 거의 100% 찾아오는 배탈에 설사는 나를 괴롭혔다. 하지만 고기를 먹고 싶은 마음에 눈치를 보며 낚시를 하여 돼지고기 한 첨이라도 떠지면 가운데 살코기는 내가 먹고 나머지는 바로 동생을 주지만 그럼에도 배탈이나 설사를 피할 길이 없었다.
대학을 다닐 때 데이트를 하면서 커피를 마실 때에도 인스탄트 커피임에도 불랙으로 마시곤 하였다. 그렇지만 그것은 커피 맛을 아는 멋 부림에 때문이 아니었다. 설탕을 넣으면 커피를 마시고 난 뒷맛이 개운치 않았고 커피프림을 넣으면 후에 젖비린내 같은 것이 올라오면서 속이 거북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설탕과 프림을 잔뜩 넣은 일명 다방커피도 잘 마시고 여전히 조금은 가리지만 밀가루로 만든 과자를 먹기도 한다. 성인이 되어 불량스런 세상에서 불량스럽게 살면서 몸과 마음이 불량스러워져 불량식품을 먹어도 탈이 덜 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발소에 대해서는 아련한 추억이 있다. 큰 도시는 아니었지만 개발이 한참 진행되고 있던 동네에 길보다 약간 낮은 위치에 오래된 이발소가 있었다. 이발소 주인 할아버지는 가끔 우리 식당에 와서 볶음밥을 즐겨 먹는 경우가 있었는데 “남는 짜장 있으면 조금만 줘요”라며 얄미운 부탁을 하곤 하였다. 짜장밥은 볶음밥 보다 조금 비쌌는데 그 차액을 아끼려는 수작에 일하는 사람들이 입을 삐죽거릴라 치면 아버지는 아무 말없이 짜장을 듬쁙 주시곤 하였다.
우리가 다방구라는 놀이를 하면 꼭 술래가 머무는 기둥이 이발소 건물의 한 귀퉁이가 술래집 이었는데 놀면서 뛰는 것을 보고 이발소 주인아저씨는 우리를 불러 “너희들 우리 면도하는 아가씨에게 시앗가시 하려 들락날락 하는 거지?”라며 훈계를 하곤 하였다. 당시 이발소에는 20 전후의 아가씨가 손님들에게 면도를 해 주곤 하였는데 우리가 그 아가씨를 훔쳐보려고 했던 것으로 착각? 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절대 그러지 않았는데...
그 아가씨와 이해할 수 없지만 고마운 추억이 있다. X자로 방범철망이 있는 내방의 창문 밖이 사람들이 통행하는 길이었는데 중학교 3학년 때 고등학교 입시준비로 정신이 없던 어느 날부터인가 그 방범 망에 저녁마다 우유 한 팩과 빵 한 개가 놓여져 있었다. 빵과 우유를 잘 먹지 못하는 나는 좋아하지 않는 것을 놓는 것에 어머니가 공부 잘 하라고 놓는가 하는 생각을 하였지만 ‘만일 어머니라면 방으로 들어와서 주시지 왜 창틀의 방범망에?‘’라는 의구심과 어머니는 내가 빵과 우유를 잘 먹지 않는 사실을 아시는데 그럴리 없다며 밖에서 숨어 누가 그러는지 지켜봤다. 그랬더니 그 이발소에서 면도를 하는 아가씨가 놓고 가는 것을 목격하였다.
용기를 내 쫒아가서 물었다. “그걸 왜 저에게 주는 거예요?” 그랬더니 자기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 고등학교를 다니지 못했는데 고등학교에 간다고 공부하는 내가 동생 같고 열심히 하라는 의미에서 그러는 것이라는 설명을 듣고 “나는 빵과 우유 좋아하지 않으니까 그러지 않으셔도 되요.”라고 매정하게 말했지만 그 누나의 열성은 얼마동안 더 이어갔다. 언제까지 인지 아님 왜 그만 두었는지 지금은 기억에 없지만 이번 책에서 ‘이발소, 이발소 그림’을 읽으면서 그 추억이 떠올랐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오래된 사진첩의 사진과 ‘좀더 소중하고 좀더 아까운 기억들에 대해 사람들은 추억이라는 이름을 덧붙인다. 세월이 흘러간 자국, 세월의 흔적들, 그것이 바로 기억이다.’라는 글이 나온다. 사람이 살면서 추억이라는 것에 얽매여 ‘아! 옛날이여!’하면서 지나치게 과거에 집착해서는 안 되지만 추억을 그리며 나를 그려본 다는 것은 생각과 마음의 여유를 가져 본다는 의미에서 삶에 적지 않은 활력소를 제공할 것이다.
책에 거의 끝부분에 있는 글로 이 책의 소개를 마무리한다.
언제부턴가 인간은 생물학적 유전자를 후대에게 남기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게 되었다. 이른바 문화적 진화가 시작되면서부터다. 그때부터 인간은 영생을 꿈꾸기 시작했다. 세상의 모든 민족이 다 영생을 약속하는 종교를 발생시켰음을 기억하면 된다. 세상에 죽음을 원하는 생명은 없다. 그러나 영생을 꿈꾸는 생명이 인간 외에 또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생물학적으로는 불가능한 영생이지만, 인간은 기억을 통해 영생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달처럼 힘없고 그믐밤처럼 어차피 한 번은 죽어야 하는 인간은 시간에 비해 턱없이 짧은 세월 속에서 부지런히 기억을 쌓아 두면 영생, 또는 최소한 생을 연장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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